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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실업친목회(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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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통해 조선인의 독립 의지가 전국적으로 드러났지만, 대정친목회는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보다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내선융화 논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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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순한 친목·경제단체라기보다는 일제가 조선 사회의 유력자들을 이용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 친일 사회단체라는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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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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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친목회는 1920년대 이후에도 단순한 친목단체로 남지 않았다. 내선융화를 내세우면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했고, 1930년대에는 일본의 만주 침략을 옹호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쳤다. 또한 조선인의 일본식 성명 사용을 강요한 창씨개명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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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운동이나 민족주의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고 일제의 전쟁·동화 정책에 협력하는 친일 세력의 조직으로 성격이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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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실업친목회는 1920년대 중반까지 일제의 식민 통치를 지지하는 로비 및 협력 기구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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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월 25일에는 일제 총독 정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한민족의 독립 의식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관제 협력 단체인 각파유지연맹의 발기인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이후 일제의 지배 체제가 공고해지고 여타 전시 총동원 단체들이 난립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타 친일 단체들과 함께 흡수 및 해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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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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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실업친목회의 주요 구성원은 1921년 조직 개편 이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회원은 약 250명으로 늘어났고, 조선귀족·대지주·예속자본가 등 당시 친일 성향의 상층 인사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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