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실업친목회(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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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대정실업친목회의 주요 구성원은 1921년 조직 개편 이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회원은 약 250명으로 늘어났고, 조선귀족·대지주·예속자본가 등 당시 친일 성향의 상층 인사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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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3 | 주요 구성원으로는 민영기, 조진태, 한상룡, [[이완용]], 민영휘, 이윤용, 예종석, 안상호 등이 있다. |
| 24 | == 성격 == | |
| 25 | 대정친목회의 중요한 성격은 내선융화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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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여기서 내선은 일본 본토와 조선을 의미합니다. 즉 조선인과 일본인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에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러한 ‘융화’는 평등한 민족 간 교류라기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조선인을 식민지 체제에 편입시키는 논리로 작용했다. 연구에 따르면 창립 당시부터 대정친목회는 내선융화를 목표로 했으며, 조선총독부 정책에 협력하는 방향을 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