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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비교)

r171 vs r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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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
||<width=35%><bgcolor=#cd313a> {{{#fff '''국가명'''}}} ||<-2>대한민국 ||
1414
||<width=35%><bgcolor=#cd313a> {{{#fff '''수도'''}}} ||<-2>[[서울특별시]] ||
1515
||<width=35%><bgcolor=#cd313a> {{{#fff '''광복'''}}} ||<-2>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광복 ||
16
||<width=35%><bgcolor=#cd313a> {{{#fff '''정부 수립일'''}}} ||<-2>1948년 8월 15일 ||
1617
||<width=35%><bgcolor=#cd313a> {{{#fff '''언어'''}}} ||<-2>한국어 ||
1718
||<width=35%><bgcolor=#cd313a> {{{#fff '''면적'''}}} ||<-2>1,004만 1,259.87㏊ (108위) ||
1819
||<width=35%><bgcolor=#cd313a> {{{#fff '''인구'''}}} ||<-2>5,155만 8,034명 (29위) ||
......
3132
||<width=35%><bgcolor=#cd313a> {{{#fff '''헌법재판소장'''}}} ||<-2>유남석 ||
3233
||<width=35%><bgcolor=#cd313a> {{{#fff '''집권여당'''}}} ||<-2>[[국민의힘]] ||
3334
||<-3><bgcolor=#0047a0> {{{#fff '''외교'''}}} ||
35
||<width=35%><bgcolor=#cd313a> {{{#fff '''UN'''}}} ||<-2>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동시 가입 ||
3436
||<width=35%><bgcolor=#cd313a> {{{#fff '''가입 국제기구'''}}} ||<-2>[[OECD]], [[APEC]], [[G20]], [[유엔]],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럽안보협력기구]], [[남극 조약]],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 [[국제통화기금]] ||
3537
||<width=35%><bgcolor=#cd313a> {{{#fff '''수교국'''}}} ||<-2>192개국 ||
3638
||<-3><bgcolor=#0047a0> {{{#fff '''국가 코드'''}}} ||
......
6567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았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Archived 2016년 2월 18일 - 웨이백 머신〉 5월 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6668
6769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일본,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70
== 역사 ==
71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당파성과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정책, 한국 전쟁에서의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여로 인해,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은 아쉽게 후퇴해야 했으며, 미 공군이 북한에 대한 중공군의 지원을 끊기 위해 압록강철교를 폭파하였고, 남북이 분단되어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다. 특히,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고 기반시설은 거의 대부분 초토화되어 남북 사이의 상호 불신이 깊어 갔다.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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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복구하고 1960년대 이후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북한의 경제 수준을 추월하는 등 대한민국은 중진국으로 변모하였다. 광복 후에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으로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며,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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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1948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간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제1공화국으로부터 1987년 이후의 제6공화국 체제까지 총 여섯 대의 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구분된다. 공화국의 차수는 대체로 헌법의 개헌 횟수에 따라 결정된다. 다만 1987년부터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제6공화국 헌법이 30년 이상 유지되고 있기에 제6공화국부터는 각 정부별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노태우 정부 이후로는 모두 제6공화국에 속하지만, 제6공화국이라고 할 경우 대체로 노태우 정부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제6공화국의 각 행정부를 부르는 명칭은 대통령들의 결정에 따른다.
76
77
2017년 기준으로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책임 정치 구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대통령직의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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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
79
[[6.25 전쟁]](六二五戰爭, 6·25 전쟁) 또는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3시 30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폭풍 작전' 계획에 따라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침공(남침)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뻔 하였으나,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휴전 이후로도 현재까지 양측의 유무형적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반공 양강 진영으로 대립하게 된 세계의 냉전적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대표적 사례로, 냉전(冷戰)인 동시에 실전(實戰)이었으며, 국부전(局部戰)인 동시에 전면전(全面戰)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가졌다. 이는 국제연합군과 의료진을 비롯해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연방까지 관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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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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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
7082
서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황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일본]]과 동해를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북한과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
94106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원료인 석회암은 한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지에 대량 분포한다. 다른 자원은 양이 적거나 품질이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으므로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21세기에 와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재개장하는 광산이 있다. 석탄은 무연탄만이 있으며 삼척, 태백 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철광석은 양양, 충주 등지에서 주로 캤다. 텅스텐은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특히 영월에 대규모의 광산이 있다.
95107
96108
울산 앞바다에 천연가스층을 발견하고 개발중이며, 독도 부근 해저에서 메테인 하이드레이트 대규모 매장량을 발견했다. 석유는 제주도 남방 해역 대륙붕 제7광구에 천연가스와 함께 매장 가능성을 언급하나[31] 실제로 탐사하지 않았다. 이곳은 1974년에 체결한 한일 대륙붕 협정에 따라 2028년까지 한일이 공동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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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98
1919년 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당파성과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정책, 한국 전쟁에서의 중인민지원 참여로 인해, 압록강까지 진격했던군은 아쉽게 후퇴해야 했으며, 공군이 북한대한 중공군지원을 끊기  압록강철교폭파고, 남북분단 통일 국가를 못하였다. 특히, 6∙25 전쟁을 면서 분단은 고착화되고 기반시설은 거의 대부분 초토화되어 남북이의 상호 불신이 깊어 다.
109
== 인문환경 ==
110
[include(틀:세 내용, 문명=대한민국/인문환경)]
111
== 문화 ==
112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국/문화)]
113
== 경제 ==
114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국/경제)]
115
== ==
116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정치)]
117
== 국방 ==
118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국 국군)]
119
== 대외 관계 ==
120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국/대외 관계)]
121
== 인재 사고 ==
122
재난 안전관리 기본법서는 재난을 국민생명·신체·재산과 국가 전체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단, 피해 규모가 일정 수준 상으로 예상거나 이미 발생한 에만 재난으로 정의한다. 비슷한 의미로 재해라는 용어도 사용하나 일반적 재난에 의한 피해를 강조하며, 자연재해와 같이 자연 현상으로 인한 경우에 자주 쓰인다. 반면에 람으로 인한 재난은 인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99123
100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복구하고 1960년대 이후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북한의 경제 수준을 추월하는 등 대한민국은 중진국으로 변모하였다. 광복 후에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으로 독재정권이 종식되,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며,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124
* [[삼풍백 붕괴 사고]]
101125
102
1919년-1948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간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역가 시작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제1공화국으로부터 1987년 이후의 제6공화국 체제까지 총 여섯 대의 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구분된다. 공화국의 차수는 대체로 헌법의 개헌 횟수에 따라 결정된다. 다만 1987년부터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제6공화국 헌법이 30년 이상 유지되 있기에 제6공화국부터는 각 정부별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노태우 정부 이후로는 모두 제6공화국에 속하지만, 제6공화국이라고 할 경우 대체로 노태우 정부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제6공화국의 각 행정부를 부르는 명칭은 대통령들의 결정에 따른다.
126
* [[남영호 침몰 사고]]
103127
104
2017년 기준으로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책임 정치 구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대통령직의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105
=== [[6.25 전쟁]] ===
106
[[6.25 전쟁]](六二五戰爭, 6·25 전쟁) 또는 한국 전쟁은 1950년 625일 오전 3시 30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폭풍 작전' 계획에 따라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공(남침)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뻔 하였으나, 1953년 7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휴전 이후로도 현재까지 양측의 유무형적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반공 양강 진영으로 대립하게 된 세계의 냉전적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대표적 례로, 냉전(冷戰)인 동시에 실전(實戰)이었으며, 국부전(局部戰)인 동시에 전면전(全面戰)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가졌다. 이는 국제연합군과 의료진을 비롯해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연방까지 관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다.
107
== 경제 ==
108
대한민국의 경제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혼합 경제 체제를 채택하 있다.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통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고속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1,637 달러이다. 2020년 유엔 세계경제상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었으나 2021년 7월 2일 이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하였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넥스트 일레븐 경제에 이름을 올렸다.
128
* [[청해진해운 사고|세월 침몰 사고]]
109129
110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국가적인 특수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중앙집중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모자라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고, 현재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 오스트아, [[몽골]], 싱가포르, 인도, [[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세계 규모 9위 및 대한민국 최대 그룹인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중공업, 백색가전 세계 1위인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
111
=== 농업 ===
112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정부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00년 12월 1일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4백3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8.6%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113
=== 공업 ===
114
한국 공업의 역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30
*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15131
116
1945년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현재는 하이테크 산업(IT, 첨단 전자부품 및 전자제품 등등), 자동차, 광학, 조선, 철강 등의 산업분야에서의 첨단기술이 전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32
* [[창 침몰 ]]
117133
118
현재 대한민국의 공업 생산은 국민 총생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119
=== 자동차 ===
120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2015년 현재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초기에는 거의 외국에서 수입한 부품의 조립으로 운영되었으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자동차 생산국 중의 하나이다. 1988년 연간 국내 생산량이 100만 대를 초과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디자인, 퍼포먼스, 기술 측면에서 그 능력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그 완숙함을 나타내는 모델을 생산하였다.
121
=== 서비스업 ===
122
대한민국에서 서비스업은 국민 총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29]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외국과의 무역 거래 확는 서비스업의 발달을 촉진했으며 금융업도 발달해 다국적 기업이 대한민국에 본사 및 지사를 두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투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123
=== 통신업 ===
124
1952년 1월 국제전기통신맹(ITU) 가입, 1966년 8월 별정우편제도 창설, 1968년 4월 1일 우편물 매일·당일배달제실시, 1965년 12월 가입전신(TELEX)업무 실시, 1967년 마이크 로 웨이브 통신회로 개통,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년 7월 1일 우편제도 실시, 1971년 3월 서울∼부산간 장거리자동전(DDD) 개통, 1977년 제2위성통신지구국 개통 등으로 이어진 한국의 통신사업은 이상과 같이 1970년대 초에야 현대화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1970년 대중에 계속된 통신망의 확대·현대화에 불구하고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추세는 통신사업의 후진성을 노정시켰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의 설비투자와 기술혁신·개발, 통신사업에 관한 정책 및 계획수립·실적평가의 전문성 확립이 요청되었고 독립적인 통신사업경영 기능의 운용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1979년 서울과 미국·홍콩·일본간의 국제속달 우편제도가 설치되어 특히 무역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국제 우편환제도 개선 5개년계획이 실시되었으며 비적성공산국가 5개국과 항공 및 선편에 의한 소포우편물 교환업무가 시작되었다. 전신·전화부문에서도 전자교환방식의 도입이 가속화되었고 광섬유 전화케이블의 개발로 광섬유통신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소련과의 국제전화선로가 개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 중 계속되어 온 전화적체현상을 해소하고 시설확장을 위한 원확보를 위해 '통신시설확장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공포되었고 동법에 따라 전신·전화공채가 발행되어 전화 신규가입자·승계·양수자는 의무적으로 인수하게 되었다. 1982년 1월1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어 체신부로부터 전기통신사업 경영·연구 및 실용화·시험 및 검사업무 등을 이관받아 업무에 들어갔으며 체신부는 우정사업과 전기통신의 기본정책, 유관산업의 육성, 안보통신, 공사의 지도감독 등 전기 통신 행정업무만을 관장하게 되었다. 1982년 4월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도래하고 있는 정보통신시대의 개막에 대비해 컴퓨터와 전화의 기능을 결합, 신속·정확하게 정보를 교환·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통신업무를 전담할 한국데이터통신 주식회사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민간기업의 공동출자로 설립, 데이터 통신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125
=== 건설업 ===
126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을 누비던 한국의 해외 건설 사업은 198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2차 석유파동의 위력이 소진되면서 중동 산유국의 건설 투자가 막을 내렸고, 이로 인해 중동에 진출해 있던 100여 개의 한국 건설사들은 마치 한순간에 빠지는 썰물처럼 해외 건설 무대에서 밀려났다. 1982년 133억 달러를 기록한 해외 건설 수주고는 1983년 들어 101억 달러로 감소했다.
134
* [[대연각호텔 화재]]
127135
128
KDI에서 발간한 2019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1월 현재 주택부문을 중심으로 한 건설투자 감소세가 큰 폭으로 지속되고 있다. 2020년 국내 건설투자는 토목부문이 건축부문의 감소세를 상쇄하면서 부진이 완화될 것으로 KDI는 전망하였다. 다만 토목부문 건설수주는 2019년 대규모 민자 철도 사업 수주에도 불구하고 도로, 교량, 발전, 송전 수주 부진으로 인해 2018년 3/4분기 대비 14.4% 감소하였다. 보고서는 2019년 SOC 예산이 2018년 대비 4.0% 증가하였고, 2020년 SOC 예산이 예산안 기준으로 2019년 대비 12.9% 증가될 예정이므로 토목부문의 기여도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 하였다.
136
* [[YTL30 침몰 사건]]
129137
130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2020년 5월 월간건설경제동향을 보면 국내건설수주액 2019년 5월 대비 37.4% 증가했다. 민간분야 건축공사 중 재개발이 281.6%, 재건축이 108.1%로 큰 증가폭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수주액이 상대적으로 낮아 기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협회는 보고서에서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줄어들면서 소비 등 비제조 분야 중심으로 경기회복세를 보여 건설관련 선행지표는 개선되었으나, 6.17 부동산 대책, 전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여전히 경기불확실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건설수주액은 총 15조 3019억 (2019년 5월 대비 37.4% 증가) 중 공공부문에서 2조 8120억 원(2019년 5월 대비 11.9% 증가), 민간부문에서 12조 4,899억원 (2019년 5월 대비 44.8% 증가)을 기록했다. 건설고용인구는 1,979 천명으로 2020년 4월 대비 3% 감소하였다. 경상 기준 국내건설 기성액은 2019년 5월 대비 4.9% 증가하였다. 공공부문이 5% 증가, 민간부문은 7% 감소했으며, 공종별로는 토목이 3.7% 증가, 건축이 7.8% 감소했다.
131
== 교통 ==
132
=== 도로 ===
133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국내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노선의 일부 이며 국도 제7호선은 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134
=== 도시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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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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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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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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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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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철도 및 광역전철의 총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 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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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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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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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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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버스는 중·장거리 지역을 운행하는 '간선버스(파란색)'와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을 연결하는 노선을 운행하는'지선버스(초록색)', 서울과 수도권을 직행으로 운행하는 '광역버스(붉은색)', 그리고 마을버스와 순환버스 등으로 나뉜다. 2004년 7월부터 도입된 이 시스템은 환승 제도와 함께 시행되었으며 서울과 경기도, 인천까지 환승할인을 받을 수 있다.[40] 버스와 버스 혹은 지하철과 버스간의 환승시에 추가로 요금이 지불되지는 않으며 하차시 버스카드리더기에 인식시키면 거리에 따라 요금이 정산되어 최초 10km까지는 기본요금, 5 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요금이 지불된다. 광역버스의 기본요금은 1800원에 버스카드 이용시 1700원이며, 환승시 최초 30km까지 기본요금을 적용하고 이후 5km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간선버스의 노선은 108개, 지선버스 292개, 광역버스 43개, 순환버스 5개 노선 등 총 420개 노선, 7967대 버스가 모두 민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의 버스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500만명으로 대교통중에 지하철 다음으로 많으며, 전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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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점으로는 일반 버스들의 출입문이 높고 폭이 좁아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3년부터 저상버스를 도입, 현재 751대가 운행 중이며, 2012년까지 전체 시내버스 중 절반을 저상버스로 바꿀 계획에 있다. 이 외에도 버스도착 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시는 모든 버스정류장에 '안내단말기'를 설치하고, 대기오염을 예방하기 위하여 천연가스버스로 모두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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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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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에는 8개의 국과 7개의 국내항이 국내외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1948년 대한민국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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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국제항공 129 추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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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도 제주항, 이스타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 많은 저가항공들이 속속 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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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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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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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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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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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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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한민국/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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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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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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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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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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