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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6 vs r11
1
[목차]
12
= 1.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1. 나라의 등장과 발전 =
23
34
== 고조선 ==
......
6768
발해 도읍지: 상경과 그 주변에서 불교 관련 문화유산 많이 발견->발해에서 불교문화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음.
6869
6970
== 불국사, 석굴암 ==
70
바람.
71
71
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2
석굴암: 본존불, 일제의 보수(?)를 가장한 파괴
7273
= 1.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 2.독창적 문화를 발전시킨 고려 =
7374
7475
==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
......
9495
9596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예상, 강감찬에게 물자 준비, 군사 훈련. 이후 거란 침입, 고려는 승리할 수 있었음. 거란은 패배하면서도 계속 개경을 향해 나아감. 고려는 성 밖에 식량이나 물자를 남기지 않았었고 이에 거란은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돌아가는 동안 강감찬을 비롯한 고려군은 거란군을 귀주에서 크게 물리침'''(귀주 대첩)'''
9697
98
== 몽골의 고려 침입 ==
99
칭기즈 칸이 부족을 통일하여 건국된 몽골은 세력이 강해지면서 주변 나라들을 침입하며 물자를 과도하게 바칠 것을 요구했고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 물자를 무리하게 바칠 것을 요구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사신이 죽자 몽골은 고려를 침입함.(몽골의 1차 침입)
100
이 이후 고려는 도읍을 개경->강화도로 옮기고 싸움. 산성이나 섬으로 들어가 몽골군가 싸웠고 귀주성, 처인성, 충주성 등에서 몽골군을 물리쳤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토 황폐화, 많은 사람들의 희생. 황룡사 9층 목탑 등 문화재가 불탐.
101
102
몽골의 6차 침입에서 국토는 거의 황폐화됨.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삼별초는 이에 반발. 전쟁에서 크게 패하였지만..
103
104
몽골의 침입을 받은 나라는 대부분 멸망되었지만 이에 비해 고려는 몽골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노력으로 나라 유지, 문화를 지킬 수 있었음.
105
106
== 고려청자 ==
107
추가바람.
108
109
== 팔만대장경, 금속 활자 ==
110
추가바람.
111
112
= 1-3 민족 문화를 지켜 나간 조선 =
113
== 조선의 건국 ==
114
* 고려 말의 상황은 혼란스러웠음.
115
* 신진 사대부의 일부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며 신흥 무인 세력과 손잡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함.
116
* 고려는 이성계로 하여금 요동 지역을 공격하게 했지만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반대 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잠잡음.(위화도 회군)
117
* 정몽주: 고려 유지, 개혁(고려 개혁파), 정도전: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왕조 세우려함.(조선 개국파)
118
* 갈등 심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고 조선 건국.
119
* 도읍을 개경(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김.
120
121
== 세종 대에 이루어 낸 발전 ==
122
세종 대에 과학 기술, 문화,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
123
124
* 집현전으로 연구 기관을 확대 개편->학자를 키우고 과학 기구 발명. 농사직설.
125
* 신분 관계없이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관리로 임명하여 과학 기술 개발, 연구하도록 함.(예시: 장영실)
126
* 신하들에게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와 같은 과학 기구를 만들게함.
127
* 달력. 칠정산
128
* 앙부일구, 자격루
129
* 훈민정음
130
* 인쇄술-더 정교해지고 읽기 쉬워진 금속 활자
131
* 국방-쓰시마섬(대마도)정벌, 북쪽으로는 4군6진 개척
132
* 세종실록지리지를 펴냄
133
134
== 유교 질서를 바탕으로 한 사회 모습 ==
135
* 백성은 나라에 충성, 부모와 어른 공경, 남녀, 아이-어른 예절
136
* 오늘날 혼인, 장례, 제사 문화도 영향받음.
137
* 신분. 생략함.
138
139
그냥 여기 파트 생략.
140
141
== 임진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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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간 평화, 전쟁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지만 일본은 전쟁을 지속하며 잘 훈련되어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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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정복하려 '''1592년''' 4월 13일 새벽 부산으로 쳐들어옴.(임진왜란)
144
부산진, 동래성 함락하며 한양으로 향하고 조선군은 패배,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란. 육지에서 조선군은 거듭 패배,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무찌르고''' 있었음.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이순신은 판옥선, 거북선 만들고 식량, 무기 준비하여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
145
계속해서 승리하여 조선 수군은 남해를 찾고 전라도와 충청도의 곡창 지대를 지킬 수 있었음.->일본군은 전략을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었음.
146
147
(이순신-학익진 전법)
148
149
이 때 육지에서는 '''의병''' 활약. 신분은 다양했음. 곽재우는 자신의 재산으로 의병을 모아 싸움. 명의 군대가 참전.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
150
일본군은 공격을 했으나 관군, 의병, 승병이 힘을 합쳐 승리를 거둠.(행주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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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강화 회담을 제안했지만 실패, 일본군 재침입(정유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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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강화 회담 중에도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하였지만 조정의 잘못된 판단으로 옥에 갖쳤고 대신한 원균은 일본군에 크게 패해 조선 수군은 거의 전멸함. 이순신은 풀려났고 수군과 판옥선 정비. 명량 해협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뛰어난 작전을 구사하여 큰 승리를 거둠.(명량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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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