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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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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 시즌 : 2009-10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은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시즌 첫 골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널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 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터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1 승리에 기여하였다.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경기에서는 시즌 2번째 골이자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통산 3호골을 터트렸고 팀은 4-0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터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 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3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시즌 4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팀은 첼시에 밀려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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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 시즌 : 2011년 8월 1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과의 계약을 2013년 6월까지 연장했다고 밝혔다.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박지성은 한화로 81억 4,300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게 되었으며, 이는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낸드에 이어 팀 내 세 번째로 많은 것이다. 2011-12 시즌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애슐리 영의 패스를 받아 시즌 1호골을 기록했다. 팀은 8-2 대승을 거두었다. 노리치 시티와의 7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3분 대니 웰벡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리그 1호 도움을 기록했다. 2011년 12월 27일 위건과의 18라운드 경기에서 선발 출장을 하여 전반 8분 파트리스 에브라의 패스를 받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으며 페널티킥도 얻어내어 리그 2호 도움을 기록하였다. 리버풀과의 FA컵 32강전에서 시즌 3호골을 기록하였지만, 팀은 1-2로 패배하였다. 2012년 2월 6일, 첼시와의 리그 23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0분경 대니 웰벡과 교체 투입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통산 200경기 출전을 하였는데,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92번째 기록이며,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2012년 2월 24일, AFC 아약스와의 UEFA 유로파리그 32강전에서는 맨유 입단 후 최초로 선발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7시즌 동안 총 205경기 출전해 통산 27골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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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즈 파크 레인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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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 2012년 7월 9일, 박지성은 이적료 500만 영국 파운드 (약 88억원)로 2년 계약을 하며,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QPR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지성의 번호는 아델 타랍이 사용하던 등번호 7번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원래 박지성은 QPR의 비어있는 5, 8, 14번 중 8번을 선택했으나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결정 하에 7번을 달게 됐다. 7번은 박지성이 선호하는 백넘버이며, 팀내 에이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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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3 시즌 : 박지성은 2012-13 시즌 팀의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QPR은 프리미어리그 시즌 개막전에서 선수들 간 팀웍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원정팀인 스완지 시티에게 0-5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2R에서는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2012년 9월 26일 캐피털 원 컵 3라운드 레딩과 경기에서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팀은 2-3으로 패배했다. 박지성은 2012년 10월 22일 리그 8라운드 에버튼 FC 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여 한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고, 그 사이에도 소속팀 QPR은 계속해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시즌 개막 3개월이 지나도록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구단 측에서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마크 휴즈 감독을 경질하고, 새 사령탑으로 해리 레드냅 감독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감독 교체 후 박지성은 11월 27일 선덜랜드 AFC, 12월 1일 아스톤 빌라 FC와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잠시 출전하였으나, 부상이 재발하여 2012년의 잔여 경기엔 모두 결장하였다. 또한 그가 장기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동안 팀의 주장직은 수비수 라이언 넬슨이 대신 수행하다가, 넬슨이 시즌 중반 미국 MLS 토론토 FC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을 떠나자, 박지성 대신에 베테랑 수비수인 클린트 힐이 새롭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써 박지성은 공식적으로 주장 완장을 반납하였다. 2013년 1월 3일 첼시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 투입되어 부상 회복을 알렸고, 1월 6일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의 FA컵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하며 복귀했다. 그리고 1월 27일 MK 돈스와의 FA컵 32강 경기에서 박지성은 오랜만에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하였으나, QPR은 3부 리그 소속인 MK 돈스에 연달아 4골을 내주며 2-4로 참패하였다. 2013년 2월 24일에 QPR의 홈구장 로프터스 로드에서 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가 있었는데, 경기 시작 전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QPR의 벤치로 다가가 박지성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경기에서 박지성은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 못했고, QPR은 맨유에 0-2로 완패했다. 또한 원정으로 응원 온 맨유 서포터들은 박지성의 응원가를 부르며 박지성을 위로하였다. 3월 2일 사우샘프턴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모처럼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박지성은, 1-1 동점 상황이던 후반 32분 상대 수비수 요시다 마야를 제치고 결정적인 어시스트로 제이 보스로이드의 결승골을 만들어내었고, 이어진 선덜랜드 AFC와의 홈 경기에서는 다시 중앙 미드필더로 풀타임 출장하여 3-1 승리에 일조하였다. 또한 박지성은 이 경기를 통해 프리미어리그 통산 150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수립하였으며, QPR은 시즌 첫 연승 행진을 달렸다. 그러나 QPR은 3월 17일 아스톤 빌라 FC와의 경기에서 다시 2-3으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하위권 팀들과의 중요한 경기들에서 2무 3패를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팀은 리그 종료까지 3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스토크 시티 FC에 2-0으로 패하며 챔피언십리그로의 강등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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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V 에인트호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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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V 에인트호번 임대 : 2013년 8월 6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계약 절차를 마무리하고 8년 만의 네덜란드 복귀를 확정했다. 계약 조건은 1년 임대 이적으로 연봉 및 지급 방법 등의 세부 사항은 양 구단의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2004-05 시즌을 끝으로 PSV 에인트호번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건너간 지 8년 만에 네덜란드 무대로 복귀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함께하였고,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필립 코퀴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백넘버는 33번으로 정했다.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번에서 23경기를 출전하여 2골을 넣었고, 팀이 유로파리그 출전 티켓을 획득하는 데 일조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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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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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과 2006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 때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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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FIFA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골은 한국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2번째 키커로 나와 골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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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 박지성의 올림픽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와 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결국 박지성은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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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FIFA 월드컵에 참가,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 동점 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통산 2번째 골을 기록했다. 또한 프랑스를 상대로 2번째 A매치 골을 넣으며, 프랑스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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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대표팀의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국가대표 은퇴 직전까지 주장을 맡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한국이 4승 4무라는 무패의 성적으로 본선 직행하는데 기여하였다. 2010년 5월 24일, 사이타마에서 펼쳐진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6분 득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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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후반 7분 단독 드리블에 의한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에 이은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로, 아시아인 최초 본선 3회 연속 골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으며 안정환이 갖고 있던 아시아인 본선 최다 골(3골)과도 타이를 이루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대 2 무승부를 거두고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이 첫 활약상으로, 박지성은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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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2011년 AFC 아시안컵이 시작되기 전에 2011년 AFC 아시안컵이 끝나면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하였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대회 4강 일본전에서 박지성은 자신의 A매치 1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 대한민국 선수 중 역대 8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되었는데, 이 경기가 박지성의 마지막 A매치 경기가 되었다. 박지성은 우즈베키스탄과의 2011년 AFC 아시안컵 3, 4위전에는 뛰지 않았고, 2011년 AFC 아시안컵이 끝난 이후 그의 말대로 이영표와 함께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2011년 AFC 아시안컵은 박지성과 손흥민이 국가대표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한 대회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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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을 마감한 후 2011년 1월 31일 오전 11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 은퇴 선언을 하며 11년간 뛰었던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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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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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은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2014년 K리그 올스타전 경기에서 자신의 지인들을 모아 팀 박지성을 꾸리며 팀 K리그와 대결을 펼쳤다. 박지성은 선수 은퇴 이후 감독이 아닌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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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이전 소속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부임했다. 이로서 박지성은 비유럽권 인물로는 처음으로 맨유의 앰버서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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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1월, 대한축구협회의 유스전략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부임 1년만인 2018년에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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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SBS의 해설진으로 합류하였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해설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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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 모터스의 클럽 어드바이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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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시즌 중 전북과 계약 연장을 통해 어드바이저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직책을 변경하였고, 어드바이저 시절과 마찬가지로 비상근직으로 테크니컬 디렉터를 소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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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스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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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은 멀티플레이어이면서 박스 투 박스, 하드워커 유형의 선수이다. 그중에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은 윙어로, 공격과 수비를 오가는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이며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므로 양쪽 측면에서 모두 뛸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을 잘 활용하는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면도 보였다. 패싱력 또한 준수한 편이며 팀의 승리를 위해 항상 헌신적으로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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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의 중반이 지날 무렵에는 소속팀의 측면 자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그 시기부터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하여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 2차전에서 중원에 배치되어 상대 공격의 핵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그의 진가를 입증하였다. 특히 리오 퍼디난드, 라이언 긱스, 파트리스 에브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 경기를 그의 커리어 중 최고의 경기로 뽑기도 했다. 그리고 리그에서는 리버풀 FC과의 홈경기에서 다시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결승골을 넣는 등 뛰어난 전술적 이해력도 보였다. 그 후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 가며 기용되었다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 이적한 후에는 그의 전매특허인 뛰어난 활동량과 수비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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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