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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bf1400><bgcolor=#bf14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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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時, 上薨于大造殿, 春秋三十八。''' 上聰明英斷, 寬仁恭儉, 天性孝友。 好學忘倦淹貫經史, 射藝書畫亦極其妙。 尊敬大臣禮遇臺諫, 重惜名器明愼刑罰。 崇儒術、闢異端, 子惠黎庶褒奬節義, 事大以誠交隣以信。 勵精圖治愼終如始, 文武竝用內外交修, 南北賓服四境按堵, 民樂生生之業者二十有六年。 聖德至治, 雖三代聖王, 蔑以尙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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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 [[午]][[時]], 오전 11시 경.] 에 임금이 대조전(大造殿)에서 훙[* 薨, 사망함.]하였는데, 춘추(春秋)는 38세이다.''' 임금은 총명 영단(聰明英斷)하시고, 관인 공검(寬仁恭儉)하셨으며, 천성(天性)이 효우(孝友)하시었다. 학문을 좋아해서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였고, 사예(射藝)와 서화(書畫)에도 지극히 정묘(精妙)하시었다. 대신(大臣)을 존경(尊敬)하고 대간(臺諫)을 예우(禮遇)하셨고, 명기(名器)를 중하게 여겨 아끼셨으며, 형벌을 명확하고 신중하게 하시었다. 유술(儒術)을 숭상하여 이단(異端)을 물리치셨고, 백성을 사랑하여 절의(節義)를 포장(褒奬)하셨고, 대국을 정성으로 섬기셨으며, 신의로써 교린(交隣)하시었다. 그리고 힘써 다스리기를 도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삼가기를 한결같이 하였다. 문무(文武)를 아울러 쓰고 내외(內外)를 함께 다스리니, 남북(南北)이 빈복(賓服)하고, 사경(四境)이 안도(按堵)하여 백성들이 생업(生業)을 편안히 여긴 지 26년이 되었다. 성덕(聖德)과 지치(至治)는 비록 삼대(三代) 의 성왕(聖王)이라도 더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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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왕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2512024_004|성종실록 297권, 성종 25년 12월 24일 기묘 4번째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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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4년]](성종 25년) [[12월 24일]] 낮 오시에 대조전에서 [[사망]]하니, 그의 나이 38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