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8 vs r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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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
||<bgcolor=#f5f5f5,#2d2f34>조선 상왕 ||
1919
||1468년 10월 1일 ~ 10월 2일 ||
2020
||<-2> '''[[국적|{{{#f0ad73 국적}}}]]''' ||[[파일:조선 국기.png|width=20px]] [[조선]] ||
21
||<|5><width=9%> '''이름''' ||<width=70><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휘''' ||이유 ||
21
||<|6><width=9%> '''이름''' ||<width=70><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휘''' ||이유 ||
2222
|| '''자''' ||수지 ||
2323
|| '''전호''' ||영창전 ||
2424
|| '''봉호''' ||진평대군[br]함평대군[br]진양대군[br]수양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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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는 조카 단종을 내쫓다 못해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하여 불교에 귀의했다고도 한다. 왕위를 찬탈한 행위가 유교의 시각으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만큼, 세조의 불교 융성 정책은 유교적 입지가 약했던 세조 나름의 성리학자 견제수단이었다는 견해도 있다.[22] 그는 자신의 병을 일반적인 역창이나 종기 정도로 여겼지만 그의 병은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나병이었다. 악몽과 불면증, 신경쇠약 등으로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1468년 세조는 자신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고, 한명회 및 신숙주, 구치관 등을 불러 그들에게 왕세자를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했다. 음력 9월 7일에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음 날인 8일에 승하하였다. 바로 9월 10일 명나라에 고부사신 황중·김계박 등을 파견하여, 그해 12월 29일 혜장이라는 시호를 받아왔다. 당시 나이 향년 5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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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은 경기도 양주의 광릉이다. 후에 정희왕후가 안장될 때 동원이강형의 봉분으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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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는 세조이며 빈청에서 세조의 묘호로 신종, 예종, 성종을 추천했으나, 예종이 '나라를 중흥한 공'을 들어 세조를 제안하였고 이대로 정해졌다. 이는 세종과 문종의 치세를 부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당시 예종은 승천체도라는 시호를 뺀 사실을 신하들에게 추궁했고 공신인 좌의정 박원형은 뜻이 헛된거 같다고 했지만 예종은 듣지 않았다. 존호는 승천체도열문영무이고, 시호는 혜장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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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일부 무속인들에 의해 무속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여러 사찰에도 봉안되었다. 그를 모신 대표적인 신당으로는 1970년대까지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있던 복개당이 있다.[23] 이 당제는 조선시대에는 제관이 열 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일제 시대에 제관이 5~6명으로 줄었다. 1978년 노인정 공사로 철거되었다.복개당에 보관되오던 영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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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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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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