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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세종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등용하여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를 펼쳐 나갔다. 그러면서도 인사와 군사에 관한 일은 세종 자신이 직접 처리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다. 아울러 국가의 행사를 오례에 따라 유교식으로 거행하였으며, 사대부에게도 주자가례의 시행을 장려하여 유교 윤리가 사회 윤리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또한 사대사고를 정비하고, 《삼강행실도》, 《효행록》 등을 간행하여 유교를 장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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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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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세종대왕/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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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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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한 데다가, 학문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 아버지 태종에게 걱정을 샀던 세종은 젊은 시절 무리하게 국정을 돌본 탓에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다. 각종 질병에 자주 시달려서 병석에 누워 정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질병으로 인해 여러 번 세자의 섭정을 하려고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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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육식을 즐겼기 때문에 젊은 시절 비만하여 몸집이 거대하였으나 노년에는 질병을 앓아 비쩍 말랐을 것으로 추측한다.[19] 이러한 이유로 1948년 그려진 국가표준영정이나 이당 김은호의 영정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세종이 사냥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적었기 때문에 종기(背浮腫)와 소갈증(消渴症, 당뇨병), 풍질(風疾)과 성병의 일종인 임질 등을 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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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시각 장애를 앓아 괴로워하는 기록이 있다.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아파서 봄부터 어두운 곳에서는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걷기가 어려웠다." 등의 내용으로 세종이 시각에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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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 말년에 이르러 병세가 악화되어 제대로 집무를 할 수 없게 되자 세자 향(문종)이 대리청정을 하였다. 집권 후반부에는 이런 각종 질병을 다스리기 위하여 자주 온천에 행차하였고 불교 사원을 방문하여 불교의 힘을 빌렸다. 1446년(세종 26년) 소헌왕후가 죽은 이후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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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세종 32년) 2월 4일, 병세가 악화되어 영응대군의 집으로 이어하였고 2월 17일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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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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