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생애(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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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5 | == 성장기 == |
| 6 | 본관은 경주이며,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에서 이경희 | |
| 6 | 본관은 경주이며,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에서 이경희와 능성 구씨 구두회의 딸인 구호명 사이의 7남매 중 다섯째로 1963년 12월 8일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출생신고를 늦게 하여 호적상의 출생일은 1964년 12월 22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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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8 | 이재명 본인이 공개한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고집이 세고, 성적은 미미했지만 동무들과 잘 놀며 씩씩했다고 한다. 학교가 집에서 5km 정도 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어 비 많이 오면 징검다리가 넘친다고, 눈이 많이 오면 미끄럽다고, 덥다고, 춥다고 학교를 땡땡이치느라 잘 안 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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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14 | 소년공 이재명은 동마고무를 나와 다음 직장인 '대양 실업'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프레스에 손목이 눌려 관절이 으스러지는 두 번째 산업 재해를 당했다. 당시 공장은 사고가 빈번해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다독였다. 그 말에 병원도 찾지 않고 아픈 팔로 계속 일을 했다. 하지만 열 여섯살 무렵 키가 15cm 자라면서, 손목과 팔의 뼈도 자라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부러진 뼈가 다른 뼈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팔이 비틀어졌고, 관절이 으스러진 부분의 성장판이 깨지고 만 것이다. 결국 이후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아 병역 면제 판정을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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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대양실업에 다니던 중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여자아이들 무리와 마주친 이후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검정고시 학원 선생님의 배려를 받았다. 이재명이 돈이 없어 더 이상 학원에 나오지 못한다고 말하자 선생님이 무료로 단과반에 들게 해준 것이다. 이후 1978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자격을 얻었다. | |
| 16 | 대양실업에 다니던 중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여자아이들 무리와 마주친 이후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검정고시 학원 선생님의 배려를 받았다. 이재명이 돈이 없어 더 이상 학원에 나오지 못한다고 말하자 선생님이 무료로 단과반에 들게 해준 것이다. 이후 1978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자격을 얻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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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대양실업에서 당한 산업 재해로, 팔의 통증은 계속 심해졌다. 더불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동네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도 생겼다. 방황 끝에 1980년 2번의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후 1980년 4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자격을 얻었다. | |
| 18 | 대양실업에서 당한 산업 재해로, 팔의 통증은 계속 심해졌다. 더불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동네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도 생겼다. 방황 끝에 1980년 2번의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후 1980년 4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자격을 얻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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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20 | 1981년 대입 제도가 개편되면서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생 과외가 전면 금지되는 대신 장학생 제도가 확대됐다.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시험만 잘 보면 장학금을 받고 다닐 기회가 열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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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1981년 7월 공장까지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결국 학비 지원에 생활비 20만 원을 받는 중앙대학교 법학과 82학번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 |
| 22 | 1981년 7월 공장까지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결국 학비 지원에 생활비 20만 원을 받는 [[중앙대학교]] 법학과 82학번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 |
| 23 | 23 | == 변호사 활동 == |
| 24 | 24 | 1986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입학했다. 사법연수원 재학 당시 훗날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기 전에는 연수원 수료 이후 전관예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판사와 또는 검사를 선택하려고 하였으나 노무현의 말에 감명을 받아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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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같은 18기 출신으로는 김재형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문무일 전 검찰총장, 이석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김진태 강원도지사,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있다. | |
| 26 |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같은 18기 출신으로는 김재형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문무일 전 검찰총장, 이석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김진태 강원도지사,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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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28 |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후 인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했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도 시작했다. 이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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