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 vs r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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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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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7월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1909년 봄, 가쓰라 다로 총리와 고무라 외상은 한국을 강제 합병할 방침을 정하고 이토와 상의했는데, 강제 합병 계획이 없다고 1907년 밝힌 이후 평소 강제 합병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온 이토는 이 자리에서 강제 합병에 아무런 이의 없이 동의했다. 강제 합병 방침이 결정된 이후 이토는 1909년 6월 14일에 통감직을 사임하면서 같은 날 추밀원 의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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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오전, 러시아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의 하얼빈 역에 내렸다가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 복무하고 있던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했다. 향년 69세. 장례는 1909년 11월 4일에 히비야 공원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근왕지사로서는 그는 동료들 보다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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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오전, 러시아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의 하얼빈 역에 내렸다가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 복무하고 있던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했다. 참고로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할 때, 까레야 우라(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향년 69세. 장례는 1909년 11월 4일에 히비야 공원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근왕지사로서는 그는 동료들 보다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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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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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바로 하얼빈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 출혈]]로 10월 26일 오전 11시 경 사망했다. 죽음이 확인된 뒤, 그의 시신은 열차편으로 오전 11시 40분 하얼빈역을 출발하여 오후 6시 장춘 역에서 쉬다가 다시 장춘을 떠나 1909년 10월 27일 밤 다롄에 도착, 만철 병원으로 옮겨졌다. 만철병원의 영안실에서는 방부제인 포르말린 액이 투입되고, 총탄에 뚫린 세 군데에는 반창고를 붙였다. 이어 시신은 일본 제국 천황이 보낸 회나무관에 들어갔다. 일본 제국 군함 아키쓰시마로 운구되었다. 시신은 동해를 출발, 현해탄을 건너 일본 시모노세키와 모지 사이의 관문해협으로 들어섰다. 이어 11월 1일 오전 11시 도쿄 근처 항구 요코스카 부두에 입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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