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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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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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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의 기원은 구전 문학(口傳文學)에서 비롯하여 8세기 초에 최초의 기록 문학 형태를 갖추었다. 왕실에서 직접 주도하여 712년 신화와 전설에 관한 작품집인 고지키가, 720년에는 역사서인 니혼쇼키가 완성되었다. 또 759년 경에는 일본 최고(最古)의 시집으로 4,500편의 시가 수록된 만요슈가 등장하여 이 시기에 단가(短歌) 형태의 시가 문학이 나타났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 후 헤이안 시대의 귀족 문화에서 문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궁중의 여관(女官)으로, 이 시기에 세이 쇼나곤, 무라사키 시키부 등의 여성 시인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센고쿠 시대와 에도 시대를 거쳐서 17세기에는 마쓰오 바쇼가 17자의 단문 시 형식인 하이쿠를 만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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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일본 문학은 다양한 사조의 등장으로 문학 작품의 다양성이 강해져 일본 내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대표적인 작가로 미시마 유키오,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등이 있다. 지금도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현대에 형성된 염세주의 소설, 추리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증가와 왕성한 문학 창작력으로 일본 국내에서 일본 문학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한민국, 중국, 유럽 등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고정된 작품관에서 서브 컬처 문화 증가와 더불어 라이트 노벨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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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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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전통 음악에서부터 서양의 고전 음악, 팝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CD는 일본에서 연간 4억 5천여장, 테이프는 2,300만 여본이 제작되며 야마하와 같은 악기 제조 업체들이 발전하여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악기사 또한 다른 문화 분야의 역사처럼 오래되었는데, 중국의 《위지왜인전》에는 5~6세기에 한국으로부터 삼국시대 음악이 도래되기 전에도 일본 고유의 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5~9세기에 걸쳐서는 아시아의 주변 여러 나라로부터 대륙계 음악들이 유입되었고, 당나라의 당악과 불교 음악 등이 유입되기도 하였다. 사무라이들의 등장으로 궁정 귀족들이 몰락한 이후에는 향토 음악이 발전하였으며 16세기 후반에는 류큐 열도로부터 샤미센과 기독교 음악이 전래되었다. 메이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간에는 이전의 전통적 음악들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왔으나 양악이 다양한 분야에 유입되면서 잠시 뜸해졌다가 현대에 이르러서 전통 예능 부흥 운동이 일어나 다시 왕성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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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대중 음악으로는 엔카와 제이팝 등이 있는데 그 중 엔카는 대한민국의 트로트와 비슷한 장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엔카가 시장에서 위력이 약해지고 서양에서 들어온 팝 음악에 일본색에 의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음악 종류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제이팝(영어: J-pop 제이팝[*], 일본어: ジェイポップ 제이폿푸[*])이다. 제이팝은 일본의 라디오 방송국 J-WAVE에서 만들어진 용어로서 일본 대중가요에서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총칭한 장르이다. 제이팝은 1960년대에 활동한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었다. 제이팝이 가지는 일본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현재 제이팝을 중심으로한 일본 음반시장의 규모는 약 2조 5천억원으로 환산되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고 인구 대비 세계최고다. 하지만 여전히 기획상품인 10대 아이돌 스타는 제이팝의 큰 축을 떠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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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나 게임 OST, 뉴에이지 곡을 필두로 하는 음악 장르와 음악가들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히사이시조, 사카모토 류이치, 유키구라모토, 어쿠스틱 카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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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디오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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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게임이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보다 가정용 게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가정용 게임기의 보급률이 높은 것이다.[188] 그 이유는 아직 PC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1983년에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이 발매가 되었다. 그 전에도 가정용 게임기는 있었지만 패미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로 인해 게임 붐이 일어났다. 또한 ‘마리오’, ‘동키 콩’과 같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시리즈화하였다. 1995년, 윈도우 95의 발매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인터넷으로도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져도 이미 일본 게임 시장에는 가정용 게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의 집은 작고 좁아서 당시 데스크톱 컴퓨터가 보급되지 못하여서 가정용 PC는 거의 노트북 컴퓨터였다. 이 때문에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로’라는 인식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게임을 즐기는 연령층이 주로 어린이였지만 요즘에는 성인들도 많이 즐기고 있다. 이처럼 성인을 타깃으로 한 휴대용 게임기가 보급되면서 인기있는 게임 소프트로 변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주로 어린이가 타깃이었기 때문에 롤플레잉 게임과 같은 어드벤처, 액션이 인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두뇌 훈련, 학습용 소프트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닌텐도의 닌텐도 DS는 간편한 휴대성때문에 각종 기업,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유입되는 온라인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나 휴대용 게임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나 인기가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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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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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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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일본/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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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유엔에 경제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나 그에 비해 지위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42] 독일, 브라질, 인도와 함께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속 시도하는 국가인 이른바 G4 국가에 속한다.[43] 군사적으로는 한국 전쟁 당시 자위대를 후방에 파병한 것이 첫 활동이었으며 2003년 이라크 침공 등을 계기로 자위대의 해외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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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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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고대부터 각종 문화의 전파와 무역을 비롯한 많은 교류를 이어왔다. 특히 백제는 고대 일본에 중국 문물을 많이 전파하였다.[47] 고려 시대 후반과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서는 쓰시마섬과 규슈를 근거지로 하는 왜구(倭寇)가 각종 약탈을 일삼았으며 이로 인해 조선 시대 중반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등 중세와 근세기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기도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통신사 파견으로 다시 한일 교류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한 일본 제국이 1910년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병합한 뒤 1945년까지 35년 동안 폭악한 식민 통치를 행하고 현대에도 일본의 여러 우익 인사들이 한국에 대한 정치적 도발을 주창하면서 양국의 국민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일본에서도 반한감정을 가진 일부 일본인들이 반한시위를 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은 일본에 의해 제기되는 독도 분쟁과 동해의 이름에 대한 분쟁 등의 이슈를 안고 있다. 2009년에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성립한 이후 이루어진 양국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더 악화된 한일 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 응답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위안부에 대한 역사왜곡으로 일본정부는 유엔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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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영유권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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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지도에 ‘독도’를 ‘죽도’로,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일본 외무성은 누리집을 통해 여러 나라의 말로 독도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있으며, 시마네 현은 2월 22일을 ‘죽도의 날’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개최하여 자신들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주장을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라고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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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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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당시 항복의 조건으로 제국군을 해체시켰다.따라서 일본국 헌법에 명시한 내용으로써 전쟁을 포기하고 육해공군의 전력을 가지지 않을 것임을 밝혀왔다. 그 때문에 패전 후 군비(軍備) 및 교전권(交戰權)이 부인되었으나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어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어, 미국의 명령으로 일본의 기초적인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한 경찰예비대를 설치하였으며 1952년 보안청으로 승격되고, 1954년 방위청이 설치되어 경찰예비대가 현재의 자위대가 됨으로써 사실상 군대로 변모하였다이후 일본은 3~5년 단위의 방위력 정비·증강 계획을 추진하여 1987년부터 방위비가 GNP 대비 1%를 초과하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 말 첨단 군사장비의 자급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와 함께 극우계에서는 방위 개념의 확대를 기도함으로써 1980년대 말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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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1947년 시행된 헌법에 따르면 국가 간의 교전권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자위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재해석하여 자위대를 강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자위대는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로 나뉘며 헌법에 따라 징병이 아닌 자원으로 충원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의 최고 지휘권은 내각을 대표하는 총리대신이 가지고 있지만 통상적 업무는 방위상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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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위대와 더불어 일본의 실질적인 군사적 방위를 담당하고 있는 주일 미군은 1945년 이후부터 일본에 계속 주둔하고 있다. 또한 주일 미군은 자위대에 지속적으로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고 공유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자위대의 지나친 주일 미군 의존이나 기노완 후텐마 기지 이전을 비롯한 주일 미군의 재편 문제, 주일 미군이 일으키는 범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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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견제라는 취지에서 발동된 명령으로 정비되기 시작한 일본의 자위대가 과연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가 유럽의 상황처럼 명령취소의 단계에 들어갔을 때 미국과 유엔의 명령으로 자진 해산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위대의 역행적 자진해산이 가능한지는 일본 자위대의 지속적인 권한확대 및 강화에 따른 정반대의 행보로 비춰지는 '신군국주의'의 우려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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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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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150
[[https://ko.m.wikipedia.org/wiki/%EC%9D%BC%EB%B3%B8|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