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4 vs 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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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릉을 조성할 당시에는 빈전(殯殿)·국장(國葬)·조묘(造墓)·재(齋)등 4가지의 도감과 상복(喪服), 옥책(玉冊), 복완(服玩), 관곽(棺槨), 제기(祭器), 유거(柳車), 법위의(法威儀), 상유소조(喪帷小造), 산소(山所), 영반(靈飯), 의장(儀仗), 묘소포진(墓所鋪陳), 반혼(返魂) 등 국장에 필요한 제구나 음식, 의식절차와 왕릉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일들을 담당하는 13개의 색이 설치되었다. 그러다 세종 때 와서는 원경왕후의 장례를 지낼 때 국장·빈전·산릉을 제외한 나머지 도감은 혁파하게 하였고, 이 후 국조오례의를 통해 3도감의 제도는 굳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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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즉위하는 해에 재궁(梓宮:시신을 넣을 관)을 만들고, 1년에 한 번씩 옻칠을 한다. 그 뒤 왕이 죽으면 붉은 비단을 사방에 붙이고, 네 모퉁이에 녹색 비단을 붙인다. 재궁 바닥에는 쌀을 태운 재를 깔고, 그 위에 칠성판(북두칠성의 모양으로 구멍을 뚫은 나무판)을 놓는다. 그 위에 붉은 비단 요를 깔고 시신을 모신다. 그 뒤 재궁을 찬궁(欑宮)에 모시게 되는데, 안에는 사방신이 각 방위에 따라 위치하고 있다. 머리가 남쪽으로 가도록 모신 후 도끼 모양이 그려진 붉은 비단으로 덮는다. 재궁을 찬궁에 모신 뒤 병풍을 설치하고 제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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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조성은 산릉도감에서 담당하였으며, 많은 시간과 인원을 필요로 하였는데, 태조의 건원릉을 조성할 때는 대략 3~5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대략 6000명~9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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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조성은 산릉도감에서 담당하였으며, 많은 시간과 인원을 필요로 하였는데, 태조의 건원릉을 조성할 때는 대략 3~5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대략 6000명~9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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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왕이 생전에 자신이 직접 묻힐 곳을 찾아 미리 무덤을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수릉(壽陵)이라고 한다. 거대한 무덤을 조성하는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왕릉을 미리 조성하는 경우는 공민왕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조선왕릉에서는 종종 수릉을 조성하였는데 이러한 대표적인 왕릉은 세종의 구영릉과 영조가 묻히려 했던 정성왕후의 홍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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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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