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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논란 및 사건 사고(비교)

r2 vs 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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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간의 이견이 지속되자 1970년 8월 철군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애그뉴 미 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여 박대통령과 장시간 회담을 갖게 된다. 부통령의 한국 방문 브리핑 문건에는 박정희가 주한미군 감군 시기와 71년 봄 선거 기간이 일치한다는 점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미국이 방위조약의 모든 의무를 지키되, 한국이 요구하고 있는 유사시 자동개입은 허락할 수 없음을 못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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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그뉴 회담에서 박대통령은 철군 이전 미국이 한국의 안보보장을 위해 외교적·군사적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즉 한국군 현대화 지원액 증액, 북한의 공격시 미국의 자동개입, 공동성명의 채택 등을 요구하였다. 애그뉴 부통령은「한·미 방위조약」에 입각한 한국 방위와 추가 군사원조를 약속하였다. 1971년 2월 6일 양국은 결국 미 7사단의 철수, 2사단의 후방 배치에 합의하였다.[[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770&pageFlag=&sitePage=&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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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미군 난동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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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19일 충무로 지하철 미군 난동 사건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와 충무로역에서 술에 취한 주한미군 및 가족 13명이 소란을 피우고 여성 승객을 성희롱하는 일이 벌어진 뒤, 이를 항의하던 시민 조정국 씨를 미군들이 따라가 집단 폭행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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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정국씨는 미군들의 행동에 항의했다가 충무로역에서 내려진 뒤 여러 미군에게 얼굴과 옆구리 등을 집중적으로 폭행당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사건을 지켜본 시민들도 미군들의 행동에 항의했으며, 이후 이 사건은 단순한 폭행 사건을 넘어 주한미군의 한국 내 범죄와 한미 SOFA의 형사재판권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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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92년 윤금이 씨 살해사건에 이어 1995년에도 미군 관련 범죄가 발생하자 시민사회에서는 SOFA가 한국의 사법권과 미군 범죄 피해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며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이후 미군 측은 이 사건에 유감을 표명했고, 가해자 가운데 프랭크 골리나 병장은 한국 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다른 관련자들도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결국 1995년 11월부터 시작된 한미 SOFA 개정 협상에 대한 국내 여론을 강화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