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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몽주는 결코 회유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결론을 내린 이방원은 무사를 보내 제거할 것을 지시하였고, 결국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타살하였다. 정몽주가 죽은 후에 이 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았다고 하여 선죽교라 부르게 되었다.[4] 이어 그는 이색과 그의 두 아들 및 그의 제자인 이숭인, 길재 등을 축출하여 반대파를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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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훗날 방원은 1398년 정도전을 숙청한 뒤에 정몽주를 충절(忠節)의 상징으로 현창시켜 익양부원군에 추증하고 영의정부사를 추서했다. 이는 삼봉 정도전을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기도 했다는 일부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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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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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등을 제거함으로써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의 기반을 굳건하게 하여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92년 이성계가 태조로 등극함에 따라 이방원은 정안군(靖安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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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장자로 왕세자를 세워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조선 개국의 중요한 논리 중 하나였던 우창비왕설에 연관된 태조의 장남인 진안대군 방우를 제치고, 신하들은 나이와 공로를 감안해 신의왕후 소생 실질적 장남 영안군 이방과 또는 이방원을 세자로 세우라고 주청을 올렸다. 개국의 공로를 따지면 이방원이 태조의 아들 중 가장 많은 공을 세웠으나, 당시 "왕권(王權)보다 신권(臣權)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국정이 안정된다"라는 신권을 주창하던 정도전은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면 신권을 주장하는 자기들을 제거할까 봐 두려워 결국 왕세자로 태조의 막내아들이자 계비 신덕왕후 강씨 소생인 의안대군 방석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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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그는 전직 몽골 관료였으며 조선의 외교관이었던 조반 등을 따라 연경과 남경을 방문하여 주원장을 대면하였고, 후의 영락제와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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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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