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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조선 시대의 한성부의 구역은 오늘날의 서울보다 훨씬 협소하였다. 동쪽은 낙타산, 서쪽은 인왕산, 남쪽은 목멱산, 북쪽은 백악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그 터전으로서, 성 밖의 일부 지역도 관할하였지만, 조선 건국 당시에는 원칙적으로 성 안의 구역만을 ‘한양’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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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그러나 도성 안에 거주하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여, 성내에 모든 인구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즈음부터 성곽으로부터 십 리 바깥까지의 지역을 ‘성저십리’라 칭하게 되었으며, 성저십리로의 인구 이동도 일어났다. 결국 1461년 2월 27일 성저십리는 공식적으로 한성부에 속하게 되어, 한성부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
| 30 | == [[대한제국]] == | |
| 31 |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전기, 전차, 수도, 전화, 전신 체계를 모두 동시에 갖춘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근대적인 병원·학교·교회·신문사 등이 세워졌고, 1898년에는 서대문과 홍릉 사이에 전차가 부설되고, 1899년에는 경인선의 개통과 전화의 가설, 1900년에는 한강가교가 준공되었다. 그러나 계속하여 근대적인 상공업 발달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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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1895년 5월 26일 고종이 전국을 23부로 나누면서 한성부를 하나의 지방행정구역으로 개편하였으나 1년만에 13도제가 시행되면서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1910년 총독부령에 따라 경성부로 개칭되고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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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3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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