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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류:김대건 안드레아]]
2[include(틀:상위 문서, 문서명1=김대건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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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요 ==
6[[김대건 안드레아]]의 [[순교]]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7== [[순교]] ==
8교세 확장 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외국 선교사의 입국과 주청 선교부와의 통신연락에 필요한 항로 개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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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김대건은 1845년 10월에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선교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항로를 알아보았다. 김대건은 경기도 연평도 앞바다에 선교사가 들어와서 전도할 수 있는 항로가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1846년 6월 5일 천주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전도할 수 있는 항로를 그린 지도를 중국으로 가는 중국 어선에 넘겨주려다가 연평도 부근에서 순찰하던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중국어선을 관헌에서 징발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신분이 드러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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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식이 출중하여 옥중에서 몇몇 대신의 부탁으로 세계 지리에 관한 책을 만들었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 지도를 라틴어 실력을 발휘하여 우리말로 옮김과 함께 색칠하기도 했다. 김대건이 옮긴 지도는 헌종에게 바쳐졌다. 일부 대신들은 김대건의 박학다식함을 아깝게 생각하여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김대건이 신학공부와 사목을 위해 외국인들과 접촉한 사실로 처벌해야 한다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에 따라 그해 9월 15일 조선에서 금하던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로 참수형을 선고받았고, 이튿날 새남터에서 천주교 사제로 참수되어 순교의 길을 걸었다. 양심수의 시체는 3일이내 가족이 찾아갈 수 있는데, 김대건의 시체는 새남터 모래밭에 가매장되었다. 이민식이라는 천주교 신자가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하여 경기도 안성에서 장례를 치렀다. 프랑스 해군의 장 밥티스트 세실 제독은 김대건을 구하기 위해 조선으로 항해해 왔으나, 김대건이 순교하기 전까지 조선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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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당시 그의 유언은 "주교님, 어머니를 부탁드립니다."였다. 당시 천주교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어머니의 안위를 부탁한 것이었다. 또한 순교하기 전 하느님을 경외하고 죄를 짓지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박해받는 신자들을 격려하였다.
15=== 장례 ===
16신봉승 사극작가에 따르면 김대건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현재 서울 노량진)에서 12명의 사형집행인에 의해 참수되었으며, 목이 군문에 걸려 효수되었다. 본래 양심수의 시체는 3일이내 가족이 찾아가도록 되어 있지만 김대건의 시체는 가매장되었다. 비밀리에 천주교 신자인 이민식이 김대건의 시신을 미리내 성지(경기도 안성)로 옮겼다. 1960년 7월 5일 김대건의 시신은 혜화동의 가톨릭대학교안의 성당에 이장되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 쿠펠라대교구의 '성요셉성당' 제대에 안치될 예정이다. 필리핀 교황대사관 1등 참사관 까보레 몬시뇰은 과거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한국교회의 순교 역사와 순교 성인 공경에 감명을 받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돌 희년’을 맞아 유해를 부르키나파소의 성당에 봉안하고 싶다고 염 추기경에게 요청했다.
17=== 시성 ===
181857년 교황 비오 9세가 김대건을 가경자로 선포하였으며,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복자로 선포하였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지고 있다.
19=== 순교비 ===
20김대건(안드레아)신부 순교비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나바위성당에 있는 비석이다. 2017년 12월 29일 익산시의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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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지정 사유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비는 익산 나바위 성지 내 화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나바위에 김대건신부가 상륙한지 110년, 본당 건축 50주년을 기념하고자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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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순교비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첫발을 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신부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로호를 연상해 같은 크기(길이 4.5m,, 넓이 2.7m,, 깊이 2.1m)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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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은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신부(를 비롯하여 김대건신부의 증조할아버지(김진후),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아버지(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46호 김대건신부생가지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29호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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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사적 지정사유로는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신부가 태어난 장소로 전해지며,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발생한 천주교 전래 및 사상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박해과정 등을 집약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종교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