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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 | [[분류:세조(조선)]] [[분류:단종(조선)]] |
| r3 | 2 | [include(틀:사건사고)] |
| r1 (새 문서) | 3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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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2 | 5 | == 개요 == |
| 6 | 세조찬위는 [[조선]] [[단종(조선)|단종]] 3년 (1455년)에 일어난 정변으로, 조선의 왕족 [[세조(조선)|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조선)|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일이다. | |
| 7 | == 상세 == | |
| 8 |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한 [[세조(조선)|수양대군]] 및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은 단종을 폐위시킨 뒤 왕숙인 수양대군(세조)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관점에 따라서 세조반정, 단종 폐위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변이 일어난 해의 이름을 따 을해반정 또는 을해정사라고도 한다. | |
| 9 | == 배경 == | |
| 10 | [[세종(조선)|세종]]과 문종의 사후 어린 단종을 대신하여 관료들과 외척들이 발호하였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왕숙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이 두각을 드러냈으며, 계유정난을 빌미로 반정의 명분을 삼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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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단종이 즉위하였을 때는 나이 겨우 12세에 불과하여, 부왕이자 선왕인 문종의 유명에 따라 좌의정 김종서과 [[영의정]] 황보인, 우의정 정분 등이 그를 보필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또한 협찬하여 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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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그런데 단종의 조부인 세종에게는 왕자 18명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세종의 차남이자 양녕대군, 효령대군과 함께 종친들의 수장격인 수양대군은 야망과 수완이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때 모든 대군은 다투어 빈객을 맞아들여 세력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에게는 무인들이 모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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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안평대군의 주변에는 집현전 학사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수양대군 역시 집현전 학사들의 포섭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신숙주, 정창손, 김질, 정인지 등이 수양대군의 편에 서게 된다. | |
| 17 | == 본 문서 정보 == | |
| 18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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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C%A1%B0%EC%B0%AC%EC%9C%84#%EB%8B%A8%EC%A2%85_%EB%B3%B5%EC%9C%84_%EC%9A%B4%EB%8F%99|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