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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 (새 문서) | 1 | [[분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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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 | 3 | 5월 5일이다. |
r6 | 4 | 소파 방정환이 만든 날이며, 어린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정한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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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 6 | 어린이날 노래는 다음과 같다.[*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 |
r6 | 7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8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
9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
10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
11 | > | |
12 |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 |
13 |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 |
14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
r8 | 15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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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 | 17 | 어린이날 전에는 어린이라는 단어가 없었고 애, 애새끼, 어린것 등으로 불렸었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의무 교육도 아니고 밭에 나가 대부분 농사일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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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 | 19 | 하지만 방정환은 어린이는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어놀고 걱정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일제강점기였고, 어린이가 방정환이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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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5 | 21 | [[3·1절]] 후, 각 지역에 소년회가 설립되고 방정환은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했다. 이때부터 어린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5월 1일을 어린이날이라고 선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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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6 | 23 | 이후 소년회의 세력은 점점 커지며 방정환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인 《어린이》를 출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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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7 | 25 | 10년이 지난 1934년에는 일제가 소년회가 점점 커져 민족 의식을 높인 것을 염려해 《어린이》를 폐간시키고 어린이날 행사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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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8 | 27 | 광복 후, 다시 《어린이》가 발행되기 시작했고, 어린이날도 부활되었다. 이 때, 어린이날을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5월 5일로 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