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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gcolor=#00529c><tablebordercolor=#000000><bgcolor=#000> {{{#fff {{{+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fff 淸海鎭海運 歲月號 沈沒 事故[br]Sinking of MV ''Sewol''}}} ||
3## https://namu.wiki/thread/ASoreAndStraightDrop 토론합의에 의거해 주년을 주기로 바꾸는 행위를 삼갑니다. 이는 명백한 편집권 남용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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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ff0 발생}}}''' ||<bgcolor=#fff,#1f2023>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경[* [[https://news.v.daum.net/v/20140417170707014|<여객선침몰> 세월호, 막판에 항로 급히 바뀌어(종합)]].][br]사고일로부터 '''[dday(2014-04-16)]일, [age(2014-04-16)]주년'''[br]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동거차도리 인근 해상[br](위도#북위 34°13'5.16"[br]동경 125°57'00") [[https://tools.wmflabs.org/geohack/geohack.php?language=ko&pagename=%EC%84%B8%EC%9B%94%ED%98%B8_%EC%B9%A8%EB%AA%B0_%EC%82%AC%EA%B3%A0&params=34.2181_N_125.95_E_|참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위치는 세월호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장소이며, 침몰을 시작하기 시작한 지점은 조금 더 아래쪽이다. 자세한 것은 [[https://www.google.com/maps/d/viewer?msa=0&mid=1DvFOiV2DXl4iZfBJIfClvPtnVf4|세월호 이동경로를 기록한 구글 지도]] 참조.] ||
5||<-2> '''{{{#ff0 사고선박}}}''' ||<bgcolor=#fff,#1f2023> 청해진해운 세월호 ||
6||<-2> '''{{{#ff0 출발}}}''' ||<bgcolor=#fff,#1f2023>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경[* 본래 예정된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지만 안개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면서 9시 정도에 출발하였다.][br]인천항 연안부두|연안 여객터미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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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ff0 도착 예정}}}''' ||<bgcolor=#fff,#1f2023>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경[* 도착 예정 시간을 1시간 조금 넘게 앞두고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전 정오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왔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있다.][br]제주항 연안 여객터미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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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ff0 유형}}}''' ||<bgcolor=#fff,#1f2023> '''침몰''' ||
9||<-2> '''{{{#ff0 원인}}}''' ||<bgcolor=#fff,#1f2023> '''/침몰 원인#s-1|확증 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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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ff0 탑승 인원}}}''' ||<bgcolor=#fff,#1f2023> 476명(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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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width=50> '''{{{#ff0 인명피해}}}''' ||<width=50> '''{{{#ff0 사망}}}''' ||<bgcolor=#fff,#1f2023> 299명(단원고 학생 248명, 교사 10명)[*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1997년생~빠른 98년생이다.][* 미수습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사망자는 전체 304명, 이들 중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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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ff0 미수습}}}''' ||<bgcolor=#fff,#1f2023> 5명(단원고 학생 2명, 교사 1명)[* 이들 모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6601.html|언론에서 이름이 공개되었다]]. 단원고 학생은 남현철·박영인 군, 교사는 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이었던 권재근·혁규 부자 2명.][*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수습자이다. 물론 사망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사망 선고를 내리기 위해서는 시체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민법상 실종자로 분류된다. 민법 제27조 제2항에 의하여, 사고 발생 후 1년이 지난 때부터 유족 등이 사실상 사망에 준하는 실종 선고를 법원에 청구할 수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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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ff0 구조}}}''' ||<bgcolor=#fff,#1f2023> 172명(단원고 학생 75명, 교사 3명)[* 당시 단원고의 교감은 구조 되었다가 죄책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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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ff0 재산 피해}}}''' ||<bgcolor=#fff,#1f2023> 약 6,000억 원 이상 ||
15||<|2> '''{{{#ff0 동원}}}''' || '''{{{#ff0 인원}}}''' ||<bgcolor=#fff,#1f2023> 약 700여 명으로 추정 ||
16|| '''{{{#ff0 장비}}}''' ||<bgcolor=#fff,#1f2023> 수상오토바이, 제트보트, 헬기, 민간 어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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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목차]
18== 개요 ==
19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중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한민국의 대형 참사이다.
20== 상세 ==
21>'''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역사에 지우기 힘든 아픈 상처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막중한 책임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하나로 단합해서 위기를 극복한 저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좌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입니다.'''[* 담화 내용으로는 해경 해체, 해산 및 각 부처 신설, 부패 청산, 법 개정안 등 강도 높은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역대 대통령 담화 중에서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사고 당시 온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이 가득차 있었음을 의미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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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박근혜 대통령 (2014년 05월 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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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던 한국의 안전 관리 실태와 혼란스러운 사회의 극치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참사로 인해 당시 출범 2년차였던 박근혜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사회계, 정치계는 모두 엄청난 후폭풍과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렸다. 이후 언론, 정계, 경제계, 교육계 그리고 문화계에서 수많은 갈등을 야기한 증폭제 역할을 하는 사건이 되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을 가진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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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였으며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대형 참사였다. 이 참사로 피해 학생이 집중된 경기도 안산시와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이 매우 컸던 국가 대형 참사였다. 이 사고 이후 대한민국은 갈등과 분열 등 엄청난 후폭풍이 닥쳤고 대한민국 현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고였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자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기로 소문난 한국 학부모들의 마인드를 크게 뒤바꾸어놓은 전환점이 된 대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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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한민국의 해난사고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269명이 사망한 창경호 침몰 사고와 362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 사고와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5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재난 사고이다. 20세기에 일어난 위의 사건들과 달리 21세기에 일어난 대형 참사이기에 국민들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 이 사고는 전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결정적으로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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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한민국의 수학여행 사건 사고 중에서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한 학교의 학년 전체가 참사를 당한 것 또한 최초이다. 이전까지 최대의 참사는 1970년 경서중학교 학생 45명이 사망한 모산 수학여행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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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가 일어난 지 약 9개월 만에 또 다시 학교 단체 캠프에서 사고가 나면서, 태안 때부터 거론되던 수학여행 규제 강화 및 중단이 이 사고를 통해 현실화되었고, 2014년 한 해 동안은 수학여행 및 학교 단체 여행이 금지되거나 자제되는 분위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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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남영호 침몰사고 같은 대형 재난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인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참사는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및 교직원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에 발생하면서 사망자의 90%가 같은 학교 소속, 83%가 미성년자였다. 단원고의 주소지인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현장인 전라남도 진도군은 이 사고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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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008년 선박연령 규제 완화로 일본에서는 운항이 금지된 노후 선박인 세월호의 수입 운항, 사주인 유병언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부실한 선박 관리와 안전교육, 이를 방치한 승무원들, 이준석 선장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시간 지체, 가만히 있으라는 비상식적 안내 방송[18][19], 그리고 정부와 관료의 선진적이지 못한 대처 등 총체적 난국이었던 최악의 해난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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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사고 당일, 세월호에는 차량 150여 대와 승무원 29명, 화물 기사 33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 중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전에 발표된 해운사의 브리핑에서는 탑승자가 477명이라 했지만, 오후 브리핑에서 승선권과 탑승자 명부를 조회한 결과 462명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23시경 해운사는 475명으로 총 인원수를 정정하였다. 이번엔 CCTV로 탑승자를 일일이 헤아렸다고. 그러다가 4월 18일 오후 10시경에는 476명으로 정정되었다. 외국인은 중국인 2명을 포함하여 총 5명이 탑승했으며, 필리핀 가수 2명은 구조되었으나 중국인 2명과 러시아 출신 학생은 4월 21일 수색 작업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출신 학생은 단원고에 재학 중이던 유학생인데, 주니어 수영 선수 출신으로 수영에 매우 능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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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객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반복되면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위 '말 잘듣는 학생들(승객들)'이 죽는 결과가 되어 안타까움과 공분이 더 컸다. 이 방송은 누가, 왜 했는지, 이후 탈출지시는 왜 안했는지 등등이 핵심 쟁점중 하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재난사고에서 방송이나 담당자의 말을 불신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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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오세아노스호 침몰 사고처럼 선장이 튀었음에도 승객이 전원 구조된 사례를 본 사건과 견주어 보려는 시각도 있으나, 사건의 경위 차이가 상당한 시점에서 섣부른 추측 및 비판은 삼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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