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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류:한명회]]
2[include(틀:상위 문서, 문서명1=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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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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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명회]]의 생애를 다룬 문서이다.
7== 생애 초반 ==
8한명회는 1415년(태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 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상질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와 이조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적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태된 지 7개월 만에 태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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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배에는 태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화령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조선을 낙점 받아왔다. 한상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 이성림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절하였으므로, 청풍송씨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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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그가 태어날 당시 몸이 빈약하여 일찍 죽으리라 생각하고 방치하였으나 어느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양육하였다. 그러나 종조부 한상덕은 그의 관상을 보고 '이 아이는 기우가 예사롭지 않으니 필경에는 우리 가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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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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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그는 [[고려][ 때 시중을 지낸 한강의 후손으로 세조의 사돈이었던 한확과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 그가 태어난지 얼마 뒤 동생 한명진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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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그는 10개월도 안되어 태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태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상덕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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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그는 종조 할아버지들인 한상경과 한상덕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종조 할아버지 한상환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자망산을 찾아가 류태재의 문하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친구 권람 등을 만나 사귀었는데, 강원도 자망산의 유학자 류태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가 서거정 등을 만나 사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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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청년기 ===
20글을 읽어서 성취한 바 있었으나 번번히 과거에 실패하여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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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재상 황보인이 한명회를 보고는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견하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이에 종조부인 참판 한상덕이 "그(황보인)는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니 만약 혼례를 받아들인다면 부귀하게 될 것"이라며 수락할 것을 권고했으나 한명회는 "처가의 권세에 힘입어 부귀 영화를 바라보겠습니까. 이는 저의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라며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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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사 민대생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민대생의 장녀인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예종비 장순왕후, 넷째 딸이 성종비 공혜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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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여러 번 과거에 떨어지자 주변에서는 그를 위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궁달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사군자가 되어서 어찌 부유, 속사들의 말 한마디에 실망하고 비통하기를 즐겨 하겠는가?'라며 개의치 않고 웃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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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같이 불우한 처지였던 권람과 친하게 지냈는데, 둘이 함께 오랫동안 마차에 책과 술을 싣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유람을 다녀오기도 했다. 관례를 치른 뒤에도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권람과 더불어 전국을 떠돌며 산천을 주유했다.
29== [[정치]]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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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음관과 [[수양대군]]의 측근 ===
31어려서 부모를 여읜데다가 집안에 가산이 없었으므로 개국공신의 후손이라는 신분이 무색하게 청년기 역시 불우하게 지냈다. [[자(이름)|자]]를 자준이라 했는데, 어려서부터 사귄 친구 권람 등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다가 교리 권람의 소개로 [[신숙주]]를 알게 되었고, 수양대군을 소개받았다. 수양대군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게 된 그는 수양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사람됨됨이를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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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글을 읽어서 학업을 쌓았으나 오래 과거를 보지 않다가, 뒤늦게 여러번 과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하고 가세도 빈한해져 그는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다. 1452년(문종 2년) 음보로 처음으로 출사하여 송도에서 경덕궁직이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수양대군]]과 자주 교류하였고 뒤에 그의 모사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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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경덕궁직으로 있을 때 그는 역시 같은 경덕궁직에 있던 무사 홍달손, 홍윤성, 양정 등을 만나 사귀게 되는데, 한명회는 이들 30여 명을 수양대군에게 적극 천거하여 이들의 인맥을 통해 거사를 일으킬 병력을 모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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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본 문서 정보 ==
37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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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B%AA%85%ED%9A%8C|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