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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6 | 1 | [[분류:홍길동]] |
| r1 (새 문서) | 2 |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
| 3 |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width=100%]]}}} || | |
| 4 | ||<-2><bgcolor=#cdcdcd> '''허균''' || | |
| 5 | ||<-2><bgcolor=#cdcdcd> '''許筠''' || | |
| 6 | ||<width=30%> '''출생''' || 1569년 12월 10일 ([[조선]] 강원도 강릉도호부) || | |
| 7 | || '''사망''' || 1618년 8월 24일 ([[조선]] 한성부) || | |
| 8 | || '''자''' || 단보(端甫) || | |
| 9 | || '''호''' || '''교산(蛟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 || | |
| 10 | || '''본관''' || [[양천 허씨]] || | |
| 11 | || '''부모''' || 아버지 허엽, 어머니 강릉 김씨 || | |
| 12 | || '''가족''' || 형 허성, 허봉, 누나 [[허난설헌]] || | |
| 13 | || '''종교''' || [[유교]]([[성리학]]) → [[불교]], [[도교]], [[천주교]](?) || | |
| 14 | || '''주요 저서''' || '''[[홍길동전]]''', [[성소부부고]], 도문대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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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목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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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 개요 == | |
| 19 |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호민)뿐이다."''' | |
| 20 | >---- | |
| 21 | >허균, 《호민론》 중에서 | |
| 22 | ||
| 23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소설가, 사상가. | |
| 24 |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하며, 당대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개혁을 꿈꿨던 '''시대의 이단아'''. | |
| 25 | ||
| 26 |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자유분방한 성격과 급진적인 사상으로 인해 평생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결국 역모 혐의로 비참한 최후(능지처참)를 맞이했다. | |
| 27 | ||
| 28 | == 생애 == | |
| 29 | === 성장과 가계 === | |
| 30 | 1569년(선조 2년), 강원도 강릉에서 동인의 영수였던 초당 허엽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 |
| 31 | 그의 집안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집안으로, 아버지 허엽을 비롯해 이복형 허성, 동복형 허봉, 누나 [[허난설헌]]까지 모두 글재주가 뛰어나 '허씨 5문장'이라 불렸다. | |
| 32 | 서자 출신의 스승 [[이달(조선)|이달]]에게서 수학하며 서얼 차별의 부당함을 직접 목격하고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게 된다. | |
| 33 | ||
| 34 | === 관직 생활 === | |
| 35 | 2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외교 문서 작성에 탁월하여 명나라 사신의 접대(원접사 종사관) 등에서 활약하며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 |
| 36 | 그러나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하여 기생과 어울리거나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특히 어머니의 상중에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한 일화가 유명하다. | |
| 37 | ||
| 38 | === 혁명가? 혹은 역적? === | |
| 39 | [[광해군]] 시절 대북파에 가담하여 실세가 되었으나, 서얼들과 어울리며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 |
| 40 | 1618년, 남대문에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 대장군이 온다"는 내용의 격문을 붙인 사건(남대문 흉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었다. 결국 광해군의 친국 끝에 변론의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한 채 동료들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거열형)을 당했다. 향년 50세. | |
| 41 | ||
| 42 | == 사상 및 업적 == | |
| 43 | === 적서차별 철폐 === | |
| 44 | 스승 이달과 서얼 친구들의 영향으로 적서 차별 철폐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의 저서 《유재론(遺才論)》에서는 "하늘이 재주를 내리는데 신분으로 사람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라며 인재 등용의 개방을 역설했다. | |
| 45 | ||
| 46 | === 민본 사상 (호민론) === | |
| 47 | 《호민론(豪民論)》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나누고, 그중 사회를 뒤엎을 힘을 가진 '호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왕조 중심의 사회에서 백성을 역사의 주체로 본 파격적인 사상이었다. | |
| 48 | ||
| 49 | === 종교적 개방성 === | |
| 50 | 성리학 유일 사상 시대에 [[불교]]와 [[도교]]에 심취했고, 명나라에서 [[천주교]] 교리서(게시)를 가져왔다는 기록도 있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접촉 인물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 |
| 51 | ||
| 52 | == 주요 저서 == | |
| r7 | 53 | * '''[[홍길동전]]''': 설명이 필요 없는 그의 대표작. 주인공인 [[홍길동동동|홍길동]]도 매우 유명하다. |
| r1 (새 문서) | 54 | * '''[[성소부부고]]''': 그의 시와 산문을 엮은 문집. '부부(覆瓿)'는 '장독 덮개로 쓰일 만큼 쓸모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겸손(혹은 자조)을 담은 제목이다. |
| 55 | * '''도문대작''': 조선 팔도의 명물 음식을 기록한 책. 유배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그리워하며 썼다고 한다. (일종의 맛집 가이드) | |
| 56 | * '''한정록''': 은둔과 한적한 삶에 대한 글을 모은 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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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 여담 == | |
| 59 | * 누나인 [[허난설헌]]의 재능을 매우 안타까워하여, 그녀가 죽은 뒤 시를 모아 중국(명나라)에 소개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시스콤 기질이 있었다는 평. | |
| 60 | * 식탐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문대작》을 보면 음식 묘사가 기가 막힌다. | |
| 61 | * [[광해군]] 때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조선 왕조 내내 복권되지 못하다가, [[고종(대한제국)|고종]] 때(1894년) 갑오개혁 즈음에야 관작이 회복되었다. | |
| r5 | 62 | * 현대에 와서는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이자 자유주의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