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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 | 1 | [tableofcontents] |
2 | == 개요 == | |
r1 (새 문서) | 3 | 105인 사건이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총독 암살 모의로 날조한 사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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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 | 5 | == 사건 내용 == |
r1 (새 문서) | 6 | 사건의 발단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조선은 한일 합방 이후 조선총독부와 1대 조선 총독인 테라우치 총독을 중심으로 한 무단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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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당시 일제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만주 등지에 무관학교를 세워서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비밀 단체를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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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이 당시 일제는 1911년 1월 독립군기지를 창건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양기탁, 임치정 등의 신민회 소속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함과 동시에 이 사건을 테라우치 총독의 암살 미수 사건으로 크게 부풀리고 관서 지방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확대하여 60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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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일제는 이들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고 온갖 고문을 총동원하였고 결국 종내 거짓 자백을 받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무단 통치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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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사건의 명칭이 105인 사건인 이유는 체포된 600여 명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풀린 사람들을 제외하고 형이 선고된 사람이 105인이기 때문에 105인 사건으로 불리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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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 이 문서가 만들어진 이유 == | |
17 | 사실 이 문서가 만들어진 이유는 2021년에 일어난 모종의 사건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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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 | 19 | 자세한 내용은 [[유튜버 마이페이 집단 린치 사건]] 문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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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분류:사건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