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3 vs r4
......
2020
[[성종(조선)|성종]] 20년(1489년)에 설치되어 지방 관아의 수령을 보좌하는 일을 맡았다. 향청의 장을 좌수라 하여 지방의 덕망 있는 자로 선임하였으며, 그 밑에 수명의 별감을 두었다 이 역시 6방을 나누어 좌수가 이·병방을, 좌별감이 호·예방을, 우별감이 형·공방을 맡는 것이 통례였다. 별감은 수령에 대한 자문, 풍기 단속, 향리 규찰, 수령 임무의 보좌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향임의 수에 따라 창감·고감이 붙기도 하였다.
2121
2222
향청이 공식적으로 관아의 기구로 편입되기 전에는 유향소라는 양반들의 회의기구가 있었는데, 고려 말부터 지방에 거주하는 전직 관원과 후손들이 정기적으로 회합하여 고을의 대소사를 논하였고 수령의 정치도 참견하였다. 이는 사심관제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23
=== 질청 ===
24
한자 표기는 작청이다. 고을마다 지방관이 내려오지 않던 고려에는 토호들의 자치기구로 사가 있었다. 이를 주사, 현사, 읍사로 불렀는데 이 조직이 조선 초기에 지방제도에 편입되어 질청이 되었다. 질청에서 관아의 문서가 주로 기록되었고, 이두문자를 사용하여 왔다.
25
26
호장청의 호장은 고려때에는 아전의 우두머리였으며, 세금을 매기고 자치군을 통솔하였으나 조선에서는 땔감이나 얼음을 관아에 바치는 힘든일의 담당자로 격하되었다. 보통은 질청에 속하여 있었지만 별도의 건물로 독립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질청에서 독립되면 부사, 군사, 현사 등의 명칭이 붙는다. 조선은 호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호방을 내세워 호장의 과세권과 호구 파악권을 빼앗았으나, 호방은 조선 후기까지도 관아 안의 주요 생활을 좌지우지 하였다.
27
=== 교방 ===
28
교방은 기생들의 처소로 객사나 군인들의 근무지였던 장청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교방에서는 글쓰기와 음악을 배우고 무용을 전수받았다.
2329
== 본 문서 정보 ==
2430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2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