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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배소)에서 순흥부사(이보흠)등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려 의병을 모아 거사를 계획했다가, 한 관노의 밀고로 배소에서 사형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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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숙종 때 복관 되었고, 어정배식록에 추배되었다. 휘는 유, 호는 승은정, 본관은 전주, 시호는 정민이다. 육종영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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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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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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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의 묘소를 찾던 순흥부의 주민들은 금성대군이 사약을 받고 사사된 곳에서 그의 혈흔이 묻은 돌을 발견하고 주변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이를 금성단이라 한다. 그가 한때 머물렀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416번지에도 그의 사당이 세워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에는 증손 흥양부정이 그의 부인 최씨의 묘소를 이장한 뒤, 그 옆에 그의 가묘를 만들고, 근처에 그의 신도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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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중종조에 와서 금성대군의 증손 이의가 왕에게 청을 올려, 금성대군의 억울함을 주장하였다. 이를 옳게 여긴 중종은 1519년(중종 14년), 금성대군의 자손 3대에게 관작을 봉하고 승습의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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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년(중종 14) 그의 증손자 이의가 대궐 문앞에 짚자리를 깔고 3개월간 궐문 주변에서 금성대군의 억울함을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이때 중종에게 경전을 강의하던 모재 김안국이 중종에게 아뢰기를 "금성대군은 왕조의 가까운 친척이요. 사죄하지 않아서 그 자손들이 아직도 그 죄목에 묶여 있으니 불가하다고 사료되나이다. 너그럽게 용서하소서."라고 상주하여 중종의 마음을 움직여 노비에서 해방되시켰다. 이때 아들 작위를 박탈당한 화원군 이맹한은 1519년(중종 14년)에 특명으로 함종군에 봉작되고 손자 이연장은 동평군에 추증되었으며, 이인, 이의, 이례 3형제에게는 덕양부정, 홍양부정, 청리부정의 작위가 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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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금성대군의 관작이 숙종조에 들어 복구되고 영조 때 정민의 시호가 내려졌다. 정조 때에는 그의 자손들이 종친으로써 대접을 받아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진천 청당사, 순흥 도계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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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금성대군을 기리는 여러 사적지에서 그에게 사사 명령이 내려진 음력 10월 21일을 기일로 보고, 봉사손들이 중심이 되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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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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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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