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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35 | == [[금성대군/생애|생애]] == |
| 36 | 36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금성대군/생애)] |
| 37 | 37 | == 사망 == |
| 38 | 금성대군의 묘소를 찾던 순흥부의 주민들은 금성대군이 사약을 받고 사사된 곳에서 그의 혈흔이 묻은 돌을 발견하고 주변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이를 금성단이라 한다. 그가 한때 머물렀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416번지에도 그의 사당이 세워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에는 증손 흥양부정이 그의 부인 최씨의 묘소를 이장한 뒤, 그 옆에 그의 가묘를 만들고, 근처에 그의 신도비가 세워졌다. | |
| 38 | 금성대군의 묘소를 찾던 순흥부의 주민들은 금성대군이 [[사약]]을 받고 사사된 곳에서 그의 혈흔이 묻은 돌을 발견하고 주변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이를 금성단이라 한다. 그가 한때 머물렀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416번지에도 그의 사당이 세워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에는 증손 흥양부정이 그의 부인 최씨의 묘소를 이장한 뒤, 그 옆에 그의 가묘를 만들고, 근처에 그의 신도비가 세워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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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0 | 그 뒤 중종조에 와서 금성대군의 증손 이의가 왕에게 청을 올려, 금성대군의 억울함을 주장하였다. 이를 옳게 여긴 중종은 1519년(중종 14년), 금성대군의 자손 3대에게 관작을 봉하고 승습의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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