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6 vs r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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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수는 2004년 10월 LA 미주중앙일보에 보도된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처음부터 군인이 되려는 꿈을 가진 건 아닙니다. 독립운동에 투신하신 할아버지를 따라 한 살 때 중국으로가 하얼빈 부근의 독립군 부락에서 자랐습니다. 이 후 학병으로 징집되어 본의 아니게 일본군에 가담하게 됐지요. 해방 후 조국에 진 빚을 갚고 독립국가 건설에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 대한민국 군인이 됐습니다. 38선으로 나뉘어진 조국이 통일되면 군복을 벗으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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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관동군 예비학교 시절 그는 평생 동지인 강영훈(예비역 육군중장,1988-1990년 국무총리 역임)을 만났고 해방후 평안북도 창성에서 단신 월남한 그를 군사영어학교에서 다시 만나게된다. 강영훈은 김웅수 손아래 누이인 김효수와 결혼하여 그의 매제가 되었다. 김웅수는 군사영어학교에 입학 (강영훈과는 군사영어학교 동기생) 후 서울대학교 법문학부에도 편입하여 학업을 시작하였으나 국대안 반대소동으로 서울대학교를 중퇴한다. 군사영어학교 졸업 (1946년 5월)과 임관 (군번 100번: 현 10100 번) 이후 국방부에서 통수계통과 직분을 체계화하는 극군조직법 관계 법령 입안통과를 위한 실무작업에 관여하기도 했고 인사국 과장시는 당시 널리 알려지지 못한 독립지사들의 국군편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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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관동군 예비학교 시절 그는 평생 동지인 강영훈(예비역 육군중장,1988-1990년 국무총리 역임)을 만났고 해방후 평안북도 창성에서 단신 월남한 그를 군사영어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강영훈은 김웅수 손아래 누이인 김효수와 결혼하여 그의 매제가 되었다. 김웅수는 군사영어학교에 입학 (강영훈과는 군사영어학교 동기생) 후 서울대학교 법문학부에도 편입하여 학업을 시작하였으나 국대안 반대소동으로 서울대학교를 중퇴한다. 군사영어학교 졸업 (1946년 5월)과 임관 (군번 100번: 현 10100 번) 이후 국방부에서 통수계통과 직분을 체계화하는 극군조직법 관계 법령 입안통과를 위한 실무작업에 관여하기도 했고 인사국 과장시는 당시 널리 알려지지 못한 독립지사들의 국군편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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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범석 국방장관 (국무총리 겸임)과 신성모 국방장관의 부관을 거쳐 평소 흠모하고 존경하였던 김홍일 육사교장을 따라 육사 생도대장으로 전출된다. 육사생도대장으로 수도사단 참모장으로 전출되기 전까지 육사 생도들 (생도 1기생, 현 10기생) 에게 사관으로서의 자질을 높이는 정신훈화 교육에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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