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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1916년]] [[8월 2일]] ~ [[2003년]] [[11월 21일]]<ref>{{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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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비전향장기수 김종호동지 서거
3
|출판사=조선중앙통신
4
|날짜=200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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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는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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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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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군]] 남면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슬하의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랐다.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금융조합 서기로 채용되어 직장에 다니면서 생활하다가 [[만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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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은 뒤 [[김일성]]의 측근인 [[강건]], [[림춘추]] 등이 [[옌볜]] 지역에서 사업할 때 참여하였고 [[1946년]]에는 [[소군정]] 지역인 [[함경북도]] [[청진시]]로 들어갔다. 청진에서 제철기계공업사의 경리과장으로 근무하였고 [[함경북도]] 소비조합 기획부장을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 때는 [[평양]]에서 조선소비조합 중앙위원회 기획부장에 오르는 등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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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공작원으로 남파되었고 기업체를 운영하면서 [[대구광역시|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1년]] 11월에 체포되었다. 공작원 활동 기간이 4년 가량으로 꽤 긴 편에 속한다.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64년]]에 무기징역형 선고가 확정되어 장기수로 복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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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기간 중에 전향을 권유받았다. 김종호의 [[김해 김씨]] 친척과 김천고보 동창 가운데는 성공한 인물이 많아 회유하기도 했었고 형과 조카딸이 김종호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신념을 굽힐 수 없다면서 전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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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회복 가능성이 없는 노약자로 분류되어 약 30년간 수감 생활을 마치고 [[허영철 (1920년)|허영철]]과 함께 출소하였다. 김종호는 가정이 북조선에 있어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았다. [[양로원]]을 거쳐 거주지를 마련하였고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젊은 층에 속하는 [[김창원 (1934년)|김창원]]에게 간호받으면서 생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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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가족과 다시 만났다. 송환 3년 후인 2003년에 송환된 장기수 가운데 네 번째로 사망하였다. 송환 직후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조국통일상]]을 받았고 사망 후에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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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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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종호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아, 조국!》이 창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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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종호가 양로원에서 거주할 때 창작한 한시를 언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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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짙은 솔밭 그늘아래 늙은 몸 앉아있네<br />한여름 불볕더위에서도 바람 시원히 불어오고<br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꾀꼬리 소리 요란한데<br /> 외롭게 혼자있자니 멀리 동지들이 그리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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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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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인용
28
|저자=안영기 외 1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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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 비전향 장기수들의 수기 3
30
|날짜=2003
31
|출판사=평양출판사
32
|출판위치=평양
33
|장=위인을 따르는 삶에 참애국이 있다 (김종호)
34
35
}}
36
* {{뉴스 인용
37
|제목=다시는 뵈올 수 없게된 그 인자하신 모습
38
|출판사=통일뉴스
39
|저자=권오헌
40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03
41
|날짜=2003-11-25
42
|확인날짜=2008-08-23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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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각주 ==
46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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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분류:1916년 태어남]]
49
[[분류:2003년 죽음]]
50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
51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52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렬사]]
53
[[분류:김천시 출신]]
54
[[분류:김천고등학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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