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1 vs 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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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선수로는 루드 굴리트,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 요한 크루이프, 요한 네스켄스, 뤼트 판니스텔로이, 뤼트 크롤, 로날트 쿠만, 로빈 반 페르시, 아르연 로번, 웨슬리 스네이더, 버질 반 다이크, 에드윈 반 데 사르, 데니스 베르캄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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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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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현재의 군주는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의회는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로 임기는 각각 4년이다. 행정부 장관은 총리에 의해 지명되며 14개의 행정부서가 있다. 현재의 총리는 딕 스호프이다. 최고법원과 5개의 고등법원에 각 지방법원과 간이법원이 속해해 사법권을 행사한다. 법관은 최고법원과 법무장관의 추천으로 국왕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는 없으며 법률의 합헌 여부는 특별 법정에서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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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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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 네덜란드는 [[조선]] 시대에 벨테브레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들어온 일, 헨드릭 하멜도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도착한 일 등으로 한국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유럽 국가이다. 또한 대한 제국이 헤이그에 헤이그 특사 파견을 한적도 있다. 네덜란드는 1949년 7월 25일,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으며[24], 한국 전쟁 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한국을 지원하였다. (보병 1개 대대, 군함 1척) 헤이그에 한국 대사관(주 헤이그 국제기구 대표부 겸임)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한국의 대(對)네덜란드 수출은 46억2698만USD, 네덜란드의 대(對)한국 수출은 44억2550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네덜란드는 한국에 있어서 제27위의 수출국이자 제25위의 수입국이다.[25] 모두 1,771 명(재외국민 1,663명, 시민권자 108 명)의 한민족들이 네덜란드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26] 한국과 네덜란드는 KLM과 대한항공의 노선으로 운항하고 있다. 중등 교육의 경우 한국에서는 네덜란드어가,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어가 개설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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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 당시 네덜란드가 에스파냐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을 무렵,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서 지원을 받고자 잉글랜드 왕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해군력을 강력히 키워나가 잉글랜드 왕국과 연합하여 마침내 에스파냐 왕국의 군대를 몰아내어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는 영국과의 사이가 굉장히 좋았으나, 올리버 크롬웰이 기존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설립한 때부터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 올리버 크롬웰은 식민지를 더 많이 차지하고 국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트집을 잡아 네덜란드와의 동맹을 해제하였고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방해하였다. 네덜란드는 결국 잉글랜드 공화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마침내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잉글랜드 왕국의 군대가 더욱 우세했고, 끝내 네덜란드는 잉글랜드 왕국으로부터 많은 식민지를 빼앗기게 된다. 이후 영국과의 관계는 매우 험악해졌지만, 프랑스 왕국이 강대해지기 시작하자 위협을 느낀 잉글랜드 왕국은 다시 네덜란드와 동맹을 요청했고, 네덜란드가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양국간의 관계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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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 네덜란드가 잉글랜드 왕국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고 식민지마저 대부분 빼앗기자, 이를 노리고 있었던 프랑스 왕국은 네덜란드를 멸망시키고자 대대로 침입을 자행하였다. 결국 네덜란드는 국력이 매우 쇠약해져 있었던 탓에 한동안 프랑스 왕국으로부터 지배를 받았다. 더구나 11월 유럽의 현존하는 정부들을 전복하려는 모든 국민들에게 원조를 제공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고 1793년 1월에 드디어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1793년 2월 1일, 프랑스 왕국은 네덜란드 공화국에 선전 포고하였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잉글랜드 왕국과 오스트리아 왕국 등과 함께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고 대항하였다. 1795년에, 하천의 결빙으로 네덜란드의 요새의 방어력이 떨어지는 겨울철을 노려 피슈그류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네덜란드에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네덜란드는 프랑스 혁명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프랑스 왕국이 네덜란드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마침내 하천이 결빙되어 프랑스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도시는 차례로 함락되어 네덜란드 총독 빌렘 5세가 잉글랜드 왕국으로 도망가고, 네덜란드 함대는 접수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왕국의 주도로 네덜란드에 바타비아 공화국이 세워졌고(1795년 1월 19일), 브라반트 공국과 마스트리히트가 프랑스 왕국에 할양되었다. 브뤼메르 18일 쿠데타(1799)로 권력을 잡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국왕(로데베이크 1세)에 즉위시켰다.(1806) 1810년에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프랑스 왕국의 영토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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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가 네덜란드로 이민와 국후가 된다. 이 때문에 양국간 우호가 상당히 돈독해졌다. 또한 양쪽 모두 세계적인 축구강국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관련 분야의 교류가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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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 식민지를 개척하고 다녔던 시절의 네덜란드는 중국을 통해서 일본을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가진 개신교 국가였지만 장사가 중요하지 선교활동은 관심이 없었으며[28], 일본은 가톨릭을 탄압하고 있었다. 따라서 네덜란드는 서양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과의 교역 상대가 될 수 있었으며, 일본 천황도 서양 제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교역을 허용할 정도로 돈독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무차별 공격하였고, 끝내 네덜란드가 미국과 영국과 중국과 연합하여 일본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전쟁에 돌입하고 말았다. 마침내 일본이 완벽히 패배하였고, 한동안 일본과의 관계는 잠잠해졌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반일 세력이 일본에 천황인 쇼와천황이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쇼와천황에게 총격을 가하고 쓰레기까지 내던지는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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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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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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