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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62 | 고등학교 졸업 후 농업협동조합의 입사 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과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하여 결국 그만두었다. 이후 막노동과 사시 공부를 병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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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64 | 1968년 군에 입대하여 [[제12보병사단]] 을지부대에서 육군 상병으로 만기전역하였다. 1972년 27세에 권양숙과 결혼하였고 1973년에 아들 건호를, 1975년에 딸 정연을 낳았다. 1975년 3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는 4번째 도전에서 이루어진 성과였고 노무현은 제17회 사법시험에서 유일하게 고졸 출신 합격자였다. 이후 1977년 대전지방법원의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5개월 만에 사직하였다. |
65 | == 대통령 취임식 == | |
65 | == [[노무현/취임식|대통령 취임식]] == | |
66 | 66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무현/취임식)] |
67 | == 제16대 대통령 == | |
67 | == [[노무현/제16대 대통령|제16대 대통령]] == | |
68 | 68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무현/제16대 대통령)] |
69 | 69 | == 언론 == |
70 | 70 | 노무현이 3당 합당을 거부하고 통합민주당 대변인이 된 직후인 1991년 10월 조선일보는 주간조선 보도를 통해 이력과 재산을 문제 삼았다. 노무현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에 나서 승소했다. 국민의 정부 때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앞장서 지지하고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언론사 소유 지분 제한에 공개 찬성했다. 보수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가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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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79 | == 종교 == |
80 | 80 | * 천주교 : 1986년 당시 천주교 부산교구 당감 본당의 주임신부였던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프로필의 종교란에는 무교로 쓴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2년 6월 20일에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노무현이 먼저 신앙 문제를 화제로 꺼냈다. 노무현은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다."라고 소개하고 "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프로필 쓸 때 종교란에 '무교'로 쓴다."라고 고백했다. 이에 김수환은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노무현은 "희미하게 믿는다."라고 답했다. 김수환이 "어려울 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하자 노무현은 "앞으로는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고 대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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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 불교 : 노무현은 자택 옆에 있던 정토원이라는 사찰에서 사시 공부를 하였다. 이후에는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암에 머무르면서 사시를 준비했으며, 틈틈이 불교 경전을 탐독했다. 9년간 사시 공부를 하여 1975년 3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평소 불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아내 권양숙은 2002년 10월 1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합천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라는 법명을 받았는데, '대덕화'는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아내 육영수가 받은 법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법명 수계는 불교계의 민심이 실린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불교계의 기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노무현은 재임 기간 동안 해인사를 무려 세 차례나 방문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을 하였다. 2003년 12월 22일에 노무현은 아내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불시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과 환담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사패산 터널 문제에 대한 공약을 지키게 못하게 되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또한 노무현은 2005년 8월 30일에 T-50 골든이글 양산 1호기 출고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목조 불상인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잘 팔아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 취임 이래 2번째로 해인사를 방문했고 해인사 대비로전 건립에 30여억 원의 국고 지원을 즉석에서 약속했다. 2007년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 | |
82 | * 불교 : 노무현은 자택 옆에 있던 정토원이라는 사찰에서 사시 공부를 하였다. 이후에는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암에 머무르면서 사시를 준비했으며, 틈틈이 불교 경전을 탐독했다. 9년간 사시 공부를 하여 1975년 3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평소 불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아내 권양숙은 2002년 10월 1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합천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라는 법명을 받았는데, '대덕화'는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아내 육영수가 받은 법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법명 수계는 불교계의 민심이 실린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불교계의 기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노무현은 재임 기간 동안 해인사를 무려 세 차례나 방문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을 하였다. 2003년 12월 22일에 노무현은 아내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불시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과 환담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사패산 터널 문제에 대한 공약을 지키게 못하게 되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또한 노무현은 2005년 8월 30일에 T-50 골든이글 양산 1호기 출고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목조 불상인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잘 팔아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 취임 이래 2번째로 해인사를 방문했고 해인사 대비로전 건립에 30여억 원의 국고 지원을 즉석에서 약속했다. 2007년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 낙성 대법회에 참석하면서 축사를 하였는데 3번째로 해인사를 방문했다. 2009년 5월 23일에 과거 사시 공부를 했던 정토원의 법당에 모셔진 부모와 장인의 위패에 예를 표한 뒤 그 옆의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였다. 봉하마을 뒤편 봉화산에 자리 잡은 정토원은 그가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한 사찰이다. 2009년 5월 24일 해인사의 승려 300여 명이 분향소를 찾아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했다. | |
83 | 83 | == 별명 == |
84 | 84 | 노짱은 노무현의 애칭이다. 노무현 짱의 줄임말로, 한국어 '짱'이 아닌 일본어: ちゃん 짱, 쨩을 붙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사용하는 의미는 ちゃん(친하게 부르는 접미사)와 같아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
85 | 85 | 2000년대 초, 노사모의 사람들은 노무현을 노무현 짱이라는 말을 줄인 '노짱'으로 친근하게 불렀다. 또한 노무현 자신도 자신을 노짱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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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 104 | * 2007년 10월 8일 - 덴마크의 코끼리의 기사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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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 106 | * 2008년 - 무궁화대훈장 |
107 | == 사망 == | |
107 | == [[노무현/사망|사망]] == | |
108 | 108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무현/사망)] |
109 | == 평가 == | |
109 | == [[노무현/평가|평가]] == | |
110 | 110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무현/평가)] |
111 | 111 | == 여담 == |
112 | 112 | * 노무현은 생전 노래를 즐겨불렀고, 대중문화에 큰 관심을 가진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생전 자주 즐겨부르던 노래는 양희은의 《상록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민중가요 《어머니》, 《바위처럼》, 《작은 연인들》, 문성재의 《부산갈매기》 등이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은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불렀고, 《사랑으로》는 연주자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불렀다. 또한 부산에서 열린 유세에서는 《부산갈매기》를 직접 부르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2년 11월 9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문화예술인의 밤' 에 참석하여 직접 문화융성정책을 발표하고 《상록수》를 부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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