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0 vs 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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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 복위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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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에 수양대군이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의 나머지 측근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하는 일이 일어나자 계유정난을 계기로 일부 신료들은 단종이 양위해야 된다는 공론을 세웠고 이는 통과되었다. 1455년 7월 25일 (음력 윤 6월 11일), 단종은 수양대군의 측근 세력인 한명회·권람 등에게 선위를 강요받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 (상왕이 거처하는 곳)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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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의 유모이기도 했던 혜빈 양씨는 금성대군 등과 결탁하여 전횡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탄핵당하고 가산이 적몰된 뒤 청으로 유배를 갔다가 1455년 12월 17일(음력 11월 9일) 신하들의 여러 상소끝에 교수형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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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의 유모이기도 했던 혜빈 양씨는 금성대군 등과 결탁하여 전횡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탄핵]]당하고 가산이 적몰된 뒤 [[령포]]으로 [[유배]]를 갔다가 1455년 12월 17일(음력 11월 9일) 신하들의 여러 상소끝에 [[교수형]]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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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음력 6월에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 등 이른바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세조가 즉위한 이듬해(1456년)에 성삼문·유성원·하위지 등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과 무인들은 연회때 별운검을 설치한 뒤 세조 3부자를 제거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가담자의 한명인 김질이 자신의 장인 정창손에게 이를 말하고, 정창손의 설득에 의해 사육신의 정변 기도를 폭로하여 계획은 좌절되고 만다. 그 바람에 1457년 단종은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노산군,즉 폐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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