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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 vs 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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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발생일'''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br]{{{-2 ([dday(2003-02-18)]일, [age(2003-02-18)]주기)}}} ||
66
||<|1><-2> '''발생 위치'''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 중앙로역 ||
77
||<-2> '''원인''' ||방화 ||
8
||<-2> '''피의자''' ||김대한 ||
8
||<-2> '''피의자''' ||[[김대한]] ||
99
||<|2><width=50> '''인명[br]피해''' ||<colbgcolor=#bc002d><colcolor=#fff><width=50> '''사망''' ||192명 ||
1010
|| '''부상''' ||151명 ||
1111
||<|3> '''피의자[br](김대한)''' || '''혐의''' ||살인 외[*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현존전차방화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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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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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2.18 참사, 김대한 방화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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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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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개인택시 운전사 출신으로 우울증과 뇌졸중을 겪던 김대한이 사건 당일 오전 9시경 지하철 전동차 내에 휘발유를 뿌린 뒤 방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불이 붙은 1079호 열차는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즉시 승객들에게 대피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화재 발생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종합사령실의 운행 중단 지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연기로 가득 찬 건너편 승강장에 1080호 열차의 역내 진입을 허용한 데 이어, 기관사의 탈출 지시와 함께 전동차의 문이 닫히면서 다수의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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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개인택시 운전사 출신으로 우울증과 뇌졸중을 겪던 [[김대한]]이 사건 당일 오전 9시경 지하철 전동차 내에 휘발유를 뿌린 뒤 방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불이 붙은 1079호 열차는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즉시 승객들에게 대피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화재 발생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종합사령실의 운행 중단 지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연기로 가득 찬 건너편 승강장에 1080호 열차의 역내 진입을 허용한 데 이어, 기관사의 탈출 지시와 함께 전동차의 문이 닫히면서 다수의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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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로 중앙로역에 정차했던 2개 편성 12량(118편성 1079열차, 130편성 1080열차)의 전동차가 모두 불타고 뼈대만 남았으며, 열차 내와 역내에 갇혀버린 승객 가운데 사망자 192명, 실종자 21명, 부상자 151명이 발생하였다. 중앙로역도 완전히 전소되어 2003년 12월 30일까지 복구를 위해 10개월 동안 무정차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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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시 38분 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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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완전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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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명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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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으로 총 343명에 달한다. 사망자 192명중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가 186명, 신원미확인 사망자가 6명이었고 신원미확인 사망자 6명 중에서 DNA가 확인된 사망자가 3명, DNA 확인이 불가능한 사망자가 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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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olor=#fff><bgcolor=#000> '''성별 기준[br](신원미확인 사망자 6명 제외)''' ||
198
||<tablealign=center><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000,gray><bgcolor=#000><rowcolor=#fff><width=28.3%> '''성별''' ||<#000><width=28.3%> '''사망자 수''' ||
199
|| 남성 || 61명 ||
200
|| 여성 || 125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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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2><color=#fff><bgcolor=#000> '''연령대 기준''' ||
203
||<tablealign=center><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000,gray><bgcolor=#000><rowcolor=#fff><width=28.3%> '''연령대''' ||<#000><width=28.3%> '''사망자 수''' ||
204
|| 0~9세 || 4명 ||
205
|| 10대 || 30명 ||
206
|| 20대 || 52명 ||
207
|| 30대 || 28명 ||
208
|| 40대 || 15명 ||
209
|| 50대 || 12명 ||
210
|| 60대 || 1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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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olor=#fff><bgcolor=#000> '''연령대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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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000,gray><bgcolor=#000><rowcolor=#fff><width=28.3%> '''연령대''' ||<#000><width=28.3%> '''부상자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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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세 || 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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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 1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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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 3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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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 39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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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 3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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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대 || 1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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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 1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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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대중교통수단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시간이 9시 53분경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바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명피해의 규모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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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 가운데 동구 주민이 가장 많았던 것은 안심역에서 출발한 1080열차에 탑승한 승객들의 인명피해가 컸고, 달서구 대곡역에서 동구 안심역으로 가던 1079열차에 동구 지역 주민들이 많이 탑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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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발생한 뒤 중앙로역 일대는 실종된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플랜카드를 붙히기도 하였으며, KTF와 LG텔레콤, SK텔레콤 등 통신사들은 중앙로역 기지국 데이터를 조회, 탑승객들의 마지막 휴대전화 신호 위치를 조회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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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청~장년층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시기적으로 봄방학 기간이었던 점과 사고 당일 계명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가족이 함께 탑승하였다가 사고를 당한 사례가 18가족이나 되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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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하철 사고에서는 부-모, 모-자, 처-자 등 1가구에 2명 이상의 가족이 동시에 참변을 당한 유가족이 12가구나 되었으며, 특히 두 딸을 동시에 잃었던 모친 김○○의 경우 보상합의 후 두 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제를 지내기 위해 경남에 있는 한 사찰을 찾았다가 9월 한반도 남부를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해 사찰내 요사체가 붕괴되면서 모친도 두 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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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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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자 처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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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참사 당일 전동차 안 최초 목격자인 전융남 씨의 증언을 비롯해서, 사고 발생 2시간 뒤, 북구 노원동3가 조광병원에서 치료 하고 있는 50대 남자를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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