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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 영국의 대학 : 영국에서 유명한 대학은 잉글랜드의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이다. 이들 대학은 예전부터 인격교육을 중요시하는 귀족 중심의 학풍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써 신사도의 교육과 지도자 양성 등의 목적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맞서 스코틀랜드도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스코틀랜드 왕국은 교황의 인가를 받아 1413년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을 설립하고 1451년 글라스고 대학, 1495년 에버딘 대학, 그리고 1583년 에딘버러 대학 등 학문의 전당을 세우게 된다. 이들 대학들을 고대 대학(Ancient Universities)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 대학은 신학자 및 귀족 중심의 교육을 목적으로 한 폐쇄적인 교육 기관으로 폭넓은 학문의 탐구 및 지식인의 양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해서 논의되었다. 이후 영국이 산업혁명의 물결에 휩싸이고 맨체스터와 버밍엄, 그리고 런던 등의 도시들의 산업화가 가속화되며 대영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 왕실과 의회는 대학의 확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이 때 세워진 대학들을 산업화 시절의 빨간 벽돌로 지어졌다고 해서 레드 브릭 대학(Red Bricks Universities)이라고 하는데, 먼저 산업 혁명의 발생지인 맨체스터에서 1824년 기초 과학원리를 중심으로 한 맨체스터 대학이 설립되었고 1826년 J.밀 등의 공리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평등한 교육기회를 주장하며 설립한 유니버시티 칼리지,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신학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1829년 설립된 킹스칼리지런던가 새로운 대학 기관의 방향을 선도하였다. 뒤를 이어 1831년 리즈 대학, 1832년 더럼 대학, 1834년 뉴캐슬 어폰타인 대학교, 1843년 코벤트리 대학, 그리고 1851년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 1855년 엑서터 대학, 1862년 사우스햄튼 대학, 1876년 브리스틀 대학, 1881년 리버풀 대학, 노팅엄 대학, 그리고 런던에 많은 대학들이 뒤를 이었는데, 1882년 런던퀸메리 대학, 1886년 로열 할로웨이 런던, 1891년 골드스미스 런던 대학, 1894년 시티 런던 대학학, 1895년 런던정치경제 대학, 1897년 쉐필드 대학, 1900년 버밍엄 대학, 1907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대학이 설립되어 대영제국과 유럽의 근대 학문을 발전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이후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지나고 1960년부터 설립된 영국의 대학들을 소위 판유리대학(Plate glass universities)라고 명명하는데 서식스 대학, 요크 대학, 랑카스터 대학, 워릭 대학, 켄트 대학, 바스 대학,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도 영국의 대학은 신사 교육, 지도자 양성 등을 중요시하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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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 [[대한민국]] 대학의 역사 === | |
| 38 | === [[대한민국인민공화국|대한민국]] 대학의 역사 === | |
| 39 | 39 | 한국의 고등 교육 기관은 4세기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이 있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대학은 4세기 고구려의 태학이라고 하겠으나, 현재 대학구조와 유사한 구조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성균관을 계승하여 새로운 국호인 조선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한 성균관이다. 그리고 지방의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유림들이 설립한 서원이 있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의 왕실교육과 국가 인재 등용의 요람이었다. 조선말기인 1895년(을미년)에는 칙령에 의해 3년제 경학과가 설치되고, 학제상 근대교육체제를 확립함에 따라 근대대학의 면모로서도 한국 최초의 대학 역사로 기록되었다. 이후 성균관은 1897년 10월 설립된 대한제국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도 그대로 계승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의 핵심 원인으로 지명되었고 1910년 국권침탈로 조선총독부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경학원으로 의도적으로 개편되었다. 1930년 일제에 의해 경학원 안에 명륜학원이 설치되고, 다시 명륜전문학원으로 개편된 뒤,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하고 1944년 명륜연성소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이는 1910년 국권침탈에 이은 일제의 불법적 행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서 성균관의 명맥이 이어지다가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서 마침내 성균관의 명칭을 회복했다. 그리고 1946년 대한민국 초대정부에서 성균관을 계승하는 성균관 대학으로 개편되었고 김구가 위원장을, 이승만이 고문을 역임하고, 김창숙 선생이 초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일제가 조선에 세운 근대적 대학은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이다. 까닭은 조선 말기부터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일어났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일한 국립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 마저 불법적으로 격하시키면서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조선에는 경성제국대학 외에는 단 한 개의 국립 또는 사립대학의 설립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제국주의로 무장된 지배계층의 일본은 민중과 식민지 피억압 민족에게는 고등교육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차별의식에서 식민지 조선에 근대 대학을 설립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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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1 | 민립대학설립운동은 1920년 6월 이상재, 한규설, 윤치호 등 100명이 조선교육회설립발기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모임에 참가한 인사들은 조선에 대학이 없음을 개탄하고 조속한 시일 내 민립대학을 설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듬해인 1922년 1월 이상재, 조만식, 윤치호 등이 모여 조선민립대학기성준비회를 정식으로 결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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