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33 vs r1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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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104 | 2017년 기준으로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책임 정치 구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대통령직의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
| 105 | 105 | === [[6.25 전쟁]] === |
| 106 | 106 | [[6.25 전쟁]](六二五戰爭, 6·25 전쟁) 또는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3시 30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폭풍 작전' 계획에 따라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침공(남침)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뻔 하였으나,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휴전 이후로도 현재까지 양측의 유무형적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반공 양강 진영으로 대립하게 된 세계의 냉전적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대표적 사례로, 냉전(冷戰)인 동시에 실전(實戰)이었으며, 국부전(局部戰)인 동시에 전면전(全面戰)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가졌다. 이는 국제연합군과 의료진을 비롯해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연방까지 관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다. |
| 107 | == 경제 == | |
| 108 | 대한민국의 경제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혼합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통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고속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1,637 달러이다. 2020년 유엔 세계경제상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었으나 2021년 7월 2일 이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하였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넥스트 일레븐 경제에 이름을 올렸다. | |
| 109 | ||
| 110 |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국가적인 특수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중앙집중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모자라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고, 현재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 오스트리아, [[몽골]], 싱가포르, 인도, [[호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세계 규모 9위 및 대한민국 최대 그룹인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중공업, 백색가전 세계 1위인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 | |
| 111 | === 농업 === | |
| 112 |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정부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00년 12월 1일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4백3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8.6%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 |
| 113 | === 공업 === | |
| 114 |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
| 115 | ||
| 116 | 1945년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현재는 하이테크 산업(IT, 첨단 전자부품 및 전자제품 등등), 자동차, 광학, 조선, 철강 등의 산업분야에서의 첨단기술이 전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 |
| 117 | ||
| 118 | 현재 대한민국의 공업 생산은 국민 총생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 |
| 119 | === 자동차 === | |
| 120 |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2015년 현재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초기에는 거의 외국에서 수입한 부품의 조립으로 운영되었으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자동차 생산국 중의 하나이다. 1988년 연간 국내 생산량이 100만 대를 초과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디자인, 퍼포먼스, 기술 측면에서 그 능력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그 완숙함을 나타내는 모델을 생산하였다. | |
| 121 | === 서비스업 === | |
| 122 | 대한민국에서 서비스업은 국민 총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29]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외국과의 무역 거래 확대는 서비스업의 발달을 촉진했으며 금융업도 발달해 다국적 기업이 대한민국에 본사 및 지사를 두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투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 |
| 123 | === 통신업 === | |
| 124 | 1952년 1월 국제전기통신연맹(ITU) 가입, 1966년 8월 별정우편제도 창설, 1968년 4월 1일 우편물 매일·당일배달제실시, 1965년 12월 가입전신(TELEX)업무 실시, 1967년 마이크 로 웨이브 통신회로 개통,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년 7월 1일 우편제도 실시, 1971년 3월 서울∼부산간 장거리자동전화(DDD) 개통, 1977년 제2위성통신지구국 개통 등으로 이어진 한국의 통신사업은 이상과 같이 1970년대 초에야 현대화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1970년 대중에 계속된 통신망의 확대·현대화에 불구하고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추세는 통신사업의 후진성을 노정시켰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의 설비투자와 기술혁신·개발, 통신사업에 관한 정책 및 계획수립·실적평가의 전문성 확립이 요청되었고 독립적인 통신사업경영 기능의 운용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1979년 서울과 미국·홍콩·일본간의 국제속달 우편제도가 설치되어 특히 무역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국제 우편환제도 개선 5개년계획이 실시되었으며 비적성공산국가 5개국과 항공 및 선편에 의한 소포우편물 교환업무가 시작되었다. 전신·전화부문에서도 전자교환방식의 도입이 가속화되었고 광섬유 전화케이블의 개발로 광섬유통신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소련과의 국제전화선로가 개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 중 계속되어 온 전화적체현상을 해소하고 시설확장을 위한 재원확보를 위해 '통신시설확장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공포되었고 동법에 따라 전신·전화공채가 발행되어 전화 신규가입자·승계·양수자는 의무적으로 인수하게 되었다. 1982년 1월1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어 체신부로부터 전기통신사업 경영·연구 및 실용화·시험 및 검사업무 등을 이관받아 업무에 들어갔으며 체신부는 우정사업과 전기통신의 기본정책, 유관산업의 육성, 안보통신, 공사의 지도감독 등 전기 통신 행정업무만을 관장하게 되었다. 1982년 4월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도래하고 있는 정보통신시대의 개막에 대비해 컴퓨터와 전화의 기능을 결합, 신속·정확하게 정보를 교환·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통신업무를 전담할 한국데이터통신 주식회사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민간기업의 공동출자로 설립, 데이터 통신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 |
| 125 | === 건설업 === | |
| 126 |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을 누비던 한국의 해외 건설 사업은 198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2차 석유파동의 위력이 소진되면서 중동 산유국의 건설 투자가 막을 내렸고, 이로 인해 중동에 진출해 있던 100여 개의 한국 건설사들은 마치 한순간에 빠지는 썰물처럼 해외 건설 무대에서 밀려났다. 1982년 133억 달러를 기록한 해외 건설 수주고는 1983년 들어 101억 달러로 감소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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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 KDI에서 발간한 2019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1월 현재 주택부문을 중심으로 한 건설투자 감소세가 큰 폭으로 지속되고 있다. 2020년 국내 건설투자는 토목부문이 건축부문의 감소세를 상쇄하면서 부진이 완화될 것으로 KDI는 전망하였다. 다만 토목부문 건설수주는 2019년 대규모 민자 철도 사업 수주에도 불구하고 도로, 교량, 발전, 송전 수주 부진으로 인해 2018년 3/4분기 대비 14.4% 감소하였다. 보고서는 2019년 SOC 예산이 2018년 대비 4.0% 증가하였고, 2020년 SOC 예산이 예산안 기준으로 2019년 대비 12.9% 증가될 예정이므로 토목부문의 기여도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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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2020년 5월 월간건설경제동향을 보면 국내건설수주액이 2019년 5월 대비 37.4% 증가했다. 민간분야 건축공사 중 재개발이 281.6%, 재건축이 108.1%로 큰 증가폭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수주액이 상대적으로 낮아 기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협회는 보고서에서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줄어들면서 소비 등 비제조 분야 중심으로 경기회복세를 보여 건설관련 선행지표는 개선되었으나, 6.17 부동산 대책, 전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여전히 경기불확실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건설수주액은 총 15조 3019억 원(2019년 5월 대비 37.4% 증가) 중 공공부문에서 2조 8120억 원(2019년 5월 대비 11.9% 증가), 민간부문에서 12조 4,899억원 (2019년 5월 대비 44.8% 증가)을 기록했다. 건설고용인구는 1,979 천명으로 2020년 4월 대비 3% 감소하였다. 경상 기준 국내건설 기성액은 2019년 5월 대비 4.9% 증가하였다. 공공부문이 5% 증가, 민간부문은 7% 감소했으며, 공종별로는 토목이 3.7% 증가, 건축이 7.8% 감소했다. | |
| 107 | 131 | == 정치 == |
| 108 | 132 | 대한민국의 정치 구조는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혼합된 모습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가 존재하며 국회의원이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의 직을 겸직할 수 있는 사실은 이에 기인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입법권을 갖는 대한민국 국회와 행정권을 갖는 대한민국 행정부, 사법권을 갖는 대한민국 법원으로 구성되며 이는 권력기관의 상호 견제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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