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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28 | == 상세 == |
| 29 | 29 |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3영걸로 불린다. 또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
| 30 | 30 | 그는 도요토미성을 하사받기 이전에 하시바성을 사용했다. 그 자신의 가신 가토 기요마사의 어머니인 이토는 히데요시의 6촌 여동생이다. |
| 31 | == 생애 == | |
| 32 | == [[사망]] == | |
| 33 | 1598년 음력 8월 18일, 고다이로 필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보호역을 맡은 마에다 도시이에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후시미성에서 [[사망]]하였다. 사인은 위암으로 병사했다고 알려져있다. 향년 62세. 그날 안으로 히데요시는 아미다산에 매장되었다. 히데요시의 묘는 화려하게 조성되었지만, 병력의 사기 문제에 미쳐가는 조선에 출병되어 있는 왜군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을 알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으며 그의 죽음을 비밀로 하였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무덤은 폭파되어 소멸되고 만다. 이는 조선과의 외교관계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임진왜란의 원인이 된 장본인의 무덤을 처단함으로써 조선에 임진왜란이 히데요시의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음을 보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리 마저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1615년 도쿠가와 가문의 습격을 받아 어머니 요도도노와 오사카 성에서 자결하는 바람에 도요토미 가문은 2대로 끊어지고 말았다.(히데요리에게는 아들 도요토미 구니마쓰와 딸 나아히메(덴슈니)가 있었으나 어린 쿠니마쓰마루는 오사카 전투이후 초소카베 모리치카 등의 도요토미 가신들과 도주하다 잡혀 로쿠조와라에서 효수당하였고, 유이히메는 승려가되었으나 30대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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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으로 취임하면서 해당 관직은 부활하였다. | |
| 31 | 36 | == 본 문서 정보 == |
| 32 | 37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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