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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1 | 유화는 그 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아이 하나가 알을 깨고 나왔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달라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이에 이 아이의 이름을 부여 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인 “주몽”이라고 지었다. 주몽은 대소 왕자 등 금와왕의 7명의 아들보다 능력이 출중하여 그들의 시기를 받았고,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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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대소가 주몽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유화는 주몽에게 동부여를 떠나라고 충고하였다.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주몽은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친구와 함께 동부여를 떠나 추격자들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 엄리대수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엄리대수를 향해 주몽은 “나는 천제의 손자이며, 강의 신의 외손자이다. 지금 나를 쫓는 자가 뒤를 따르니 그 위험이 급한 데 강을 건널 수 없으니 도와 달라.”라고 하니, 이에 감응한 자라와 물고기가 물 위로 떠올라 띠를 이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이 무사히 강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는 다시 돌아가 버렸고, 추격자들은 강을 건너지 못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했다 하는데, 이 다리를 가리켜 어별성교라 일컫는다. |
| 44 | == 고구려의 건국 == | |
| 45 |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총명하고 활을 잘 쏘아 촉망을 받던 중 대소 등 금와왕의 일곱 아들이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자 화를 피하여 이주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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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대소의 위협에서 무사히 벗어난 주몽은 유유히 남쪽으로 향하여 마침내 졸본에 정착하여 졸본(이름 미상, 건국 설화 중에 다른 설화에는 연타발이라고 되어 있다)의 둘째 딸 (이름 미상, 건국 설화 중에 다른 설화에는 소서노라고 되어 있다)과 결혼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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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기원전 37년, 주몽은 졸본 부여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건국했다. '고'씨로 전해지지만 주몽의 원래 성씨는 아버지인 해모수에 따른'해'씨이며, 고구려 태조왕 당시 계루부 고씨가 집권하자 정통성을 위해 시조인 주몽의 성씨를 '고'씨로 바꾸었다. 그리고 국가의 위상을 일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영토확장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몽은 영토확장을 위해서는 우선 변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변방에 살고 있던 말갈족 부락을 평정하여 말갈족이 더 이상 국경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기원전 36년에는 훈강(비류수) 상류에 있던 비류국(沸流國, ‘송양국’이라고도 한다)의 왕 송양에게 활쏘기 경쟁으로 이겨서 항복을 받아내어 ‘옛 땅을 회복했다.’라는 뜻의 고구려말인 다물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도주로 삼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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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비류국을 정복한 주몽은 기원전 34년 마침내 졸본성과 궁궐을 완성하여 나라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기원전 32년에는 오이와 부분노를 보내 태백산(백두산) 동남쪽에 있던 행인국을 정복하였으며, 기원전 28년에는 부위염을 보내 북옥저를 정복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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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기원전 24년 가을 음력 8월에 부여에 남아있던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사망했다. | |
| 44 | 54 | == 본 문서 정보 == |
| 45 | 5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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