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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마이클의 두 번째 자녀. 패리스 마이클 캐서린 잭슨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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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공연을 한국 서울과 독일 뮌헨에서 개최했다. 10월 8일에는 '데비 로우'와 이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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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째 성추행 혐의와 재판, 무죄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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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영국의 기자 마틴 바시르가 240일 동안 마이클을 동행하며 찍은 'Living With Michael Jackson'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영국의 'ITV' 방송국이 최초로 방영했고 영국에서는 1400만 가구가 시청했으며 총 시청자 수는 3800만 명으로 53.9%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은 방영 직후 큰 논란을 불러왔다. 프로그램 속의 마이클 잭슨은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비춘 것이다. 또 다큐 후반부에서 개빈 아르비조와의 모습이 문제가 됐고 아동 성추행 재판이 일어나는 원인이 됐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나서 마이클 측은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또 마이클은 자신의 행동을 악의적인 편집으로 왜곡한 것이라며 'The Michael Jackson Interview : The Footage You Were Never Meant To See'이라는 비디오를 제작하여 반박했다. 그의 전 아내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2010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실제 잭슨의 모습은 'Living With Michael Jackson'에 나온 것과는 다르며 그때는 진통제에 중독된 것 같다고 의견을 표시했다. 'Living With Michael Jackson' 은 대한민국에서는 온스타일이 '마이클 잭슨의 잔인한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2009년 방영했다. 재판과 관련된 문제로 국내 방영분에서는 게빈과 마이클 잭슨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전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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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With Michael Jackson'의 다큐 후반부 장면에서 마이클은 개빈 아르비조라는 암에 걸린 13살 소년과 함께 출연했다. 개빈 아르비조는 암에 걸렸지만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하지 못했다. 개빈은 한 코미디 클럽에 들렸는데 코미디 클럽의 사장이 개빈이라는 소년이 암에 걸려 곧 죽게 생겼다는 딱한 사정을 듣자 원하는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개빈은 자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유명인이라며 3명을 적었는데 그중 2순위가 마이클 잭슨이었다. 마이클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개빈에게 치료비를 대줘 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줬으며 개빈은 이후 마이클의 집인 네버랜드에 놀러 오는 등 개빈과 마이클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다큐에서 논란이 됐던 장면은 마이클이 개빈과 상당히 친밀했으며 같이 한 방에서 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이클은 기자에게 항변했다. "왜 아이들과 같이 놀고 자는 것이 문제인가? 그것을 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아이들과 함께 난로 앞에 앉아 따뜻한 우유와 쿠키를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를 본 일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은 마이클과 개빈의 관계가 부적절해 보인다며 산타바버라의 어린이보호당국과 로스엔젤레스의 아동복지국에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며 서신을 보냈다. 산타바버라 보안관 부서와 아동복지국은 비밀리에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아르비조 가족들과 접촉하여 마이클과 어떤 관계인지 물었다. 개빈의 어머니인 재닛 아르비조는 잭슨은 우리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며 다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며 눈물을 흘렸다. 개빈은 결코 성적인 행위 같은 건 없다며 말했으며, 개빈의 누나 데블린은 마이클은 우리에게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울었다. 개빈의 아버지인 데이비드 아비조는 마이클 덕분에 자신의 아이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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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국은 이 같은 조사 결과와 함께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후 성추행 혐의가 없음을 밝히면서 사건을 종결했다. 로스엔젤레스 경찰당국과 산타바버라 카운티 보안국 또한 마이클에게는 죄가 없다며 사건을 공식적으로 종결했다. 그러나, 훗날 이번 사건으로 마이클을 기소한 검사인 톰 스네던은 아동복지국과 경찰당국의 조사 결과를 엉터리라며 무시하고 은폐했다. 톰 스네던 검사는 개빈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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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소식이 마이클 측에도 들려오자 마이클의 측근들은 1993년의 일처럼 또다시 안 좋은 일이 터질까 엄청난 긴장을 했다. 마이클의 변호사인 마크 제라고스는 이번 사건에 정보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발을 움직였다. 측근들은 마이클에게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개빈 가족들과 거리를 두라고 충고했고 마이클도 이에 동의하여 개빈 가족과 서서히 거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개빈 아르비조의 어머니인 제닛 아르비조는 레리 펠드먼이라는 1993년 마이클에게 소송을 건 이반 챈들러의 아들 조단 챈들러를 변호한 변호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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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 펠드먼은 개빈을 데리고 스탄 캐츠라는 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스탄 캐츠는 그 자리를 통해 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마이클이 개빈에게 술을 먹였으며 자위행위를 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아동복지국의 조사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마이클 측의 협박 때문이었다고 한 것이다. 또한, 스탄은 잭슨에 대해 그러나 소아성애자는 아닌 걸로 보인다. 다만 정신 연령이 10살에 멈췄을 뿐이라고 소견을 내렸다. 스탄은 이 같은 보고서를 캘리포니아 법에 따라 경찰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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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빈 가족들의 과거 전력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998년 8월 개빈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J.C 페니 백화점에서 절도 혐의로 구금된 적이 있다. 구금에서 풀려난 뒤 개빈의 어머니인 재닛은 백화점을 상대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300만 달러의 민사소송을 걸었다. 백화점 측에서 고용한 정신과 의사는 재닛이 정신분열증과 망상증을 앓고 있다며 진단했다. 재닛을 직접 치료했던 다른 의사는 그녀는 불안감과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망상증은 없었다고 했다. 재닛은 2년 후 백화점을 상대로 구금 당시에 경찰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며 또다시 민사소송을 걸었다. 백화점 측을 변호했던 톰 그리핀 변호사는 재닛은 끔찍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그냥 지껄이며 개빈 가족이 마이클에게 고소를 한 것에 대해선 이번에는 아예 홈런을 치려는 작정인 것 같다며 갈취 사건 제2부라고 말했다. 백화점은 재판이 열리기 전인 2001년 13만 달러의 합의금을 주고 사건은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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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경찰은 마이클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마이클은 당시 자녀들과 함께 <One more chance> 뮤직비디오 촬영차 라스베가스에 머물고 있었으며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들은 뒤 개인 비행기를 타고 산타바바라 공항에 도착,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에게 체포당해 구속당한 뒤 3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 난다. 2003년 12월 25일, 마이클은 60 Minutes 인터뷰에서 출연하여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마이클은 경찰관들이 수갑을 강하게 채우는 바람에 어깨와 팔에 상처를 입었으며, 화장실을 쓰고 싶다는 부탁에 경찰관들이 자신을 화장실 안에 가두고 50분동안 모욕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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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검찰은 네버랜드를 압수수색하고 4월 톰 스네던 검사는 마이클을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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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재판이 시작되고 4월 13일 재닛 아르비조는 첫 증언을 했는데 마이클이 열기구로 자신과 아이들을 납치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마이클을 방어하기 위해 네버랜드에서 마이클과 같이 있던 아이들이 나와 마이클에게 결코 성적인 일을 당한 적이 없다며 마이클을 지원했다. 또한, 마이클에게 납치를 당할 뻔했다는 주장과 달리 재닛 아르비조가 주장한 납치 시기에 아르비조 가족들은 고급 식당에서 무단으로 한화 700만 원 이상의 식사를 하고 마이클에게 이를 대신 내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 드러났으며 검찰의 주장과는 달리 성추행 증거를 입증할 DNA가 발견되지도 않았다.[164] 재닛이 마이클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것도 마이클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 중 하나이다. 자신의 아이가 성추행 당했는데 어째서 합의금을 먼저 요구한 것이냐는 배심원들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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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3일, 마이클 잭슨은 기소된 14가지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배심원단은 백인 7명, 히스페닉 4명, 아시아인 1명으로 흑인 배심원은 없었으며 검찰은 해외까지 탐문하며 산타바바라 법정이 생긴 이래 최고액인 500만 달러 이상의 거금을 쏟아 수사를 벌였으나 마이클의 유죄를 입증할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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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의 사망 후인 2009년 마이클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FBI 파일이 공개됐는데 FBI는 마이클 잭슨에게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고 아동복지국 조사 결과에서도 개빈 아르비조와 가족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을 못 얻어 불기소 처분을 할 것을 권유했지만 검찰은 FBI와 아동복지국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이클 잭슨을 기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FBI는 네버랜드와 마이클 잭슨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에서도 성추행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자, 루머로 마이클 잭슨을 괴롭혔던 타블로이드들의 보도가 사실일지 모른다는 하나의 가정을 갖고 이들 보도에 대한 수사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타블로이드 언론들의 보도는 개연성과 증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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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과의 재판 이후 재닛 아르비조는 2007년 공문서 위조를 통해 최저 생계 비용을 부당으로 취득한 사실이 드러나 기소당하여 벌금과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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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을 비난했다. 가장 바보스러운 미국인으로 수년간 뽑히는 등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 마이클 잭슨은 이 후 네버랜드 렌치를 떠나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따로 거처를 마련했고, 이 후 2009년 사망할 때까지 네버랜드를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마이클은 재판 이후 레바논, 유럽 등지에서 자녀들과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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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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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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