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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56 | 1989년 마이클의 친한 친구이자 영화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소울 트레인 시상식에서 마이클을 'King Of Pop Rock Soul'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대중화되어 마이클의 별명이 'King Of Pop (팝의 황제)' 이 된다. 미국의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는 마이클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세기의 아티스트상을 수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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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58 | 1990년 당시 슈퍼스타들의 평균 로열티는 12%였는데 마이클은 41%의 로열티를 지급받았다. Sammy Davis Jr.'s의 60번째 생일 축하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에 참가하여 "You Were There"를 라이브로 불렀으며 'Man in the mirror'로 얻은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
| 59 | == 1번째 성추행 사건과 1번째 결혼 == | |
| 60 | 1993년 여름에 발생한 13세 남자 성추행 혐의는 마이클의 상업적 매력과 음악적 명예, 대중적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마이클을 후원하던 펩시는 협력 관계를 종료했으며 모든 홍보 활동을 중단했다. 이에 마이클의 팬들은 펩시 보이콧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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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마이클이 자신의 아들을 성추행했다며 이반 챈들러가 민사소송을 건 것인데 이들의 관계는 1992년 시작됐다. 1992년 마이클의 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고장이 났다. 마이클이 차 고장으로 인해 쩔쩔매는 모습을 본 근처 카센터 직원은 그것을 사장 데이비 슈워츠에게 알렸다. 데이비 슈워츠는 훗날 마이클이 자신을 성추행 했다며 주장한 조단 챈들러의 의붓아버지이자 조단 챈들러의 친어머니인 준과 재혼한 사람이다. 슈워츠는 당시 아내 준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의붓아들 조단 챈들러가 열렬한 잭슨의 팬이었고(조단은 마이클이 펩시 CF 광고를 촬영하던 도중 화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편지를 써서 빠른 쾌유를 빌기도 했다.) 슈워츠는 조단을 이용하면 다시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마이클에게 접근했다. 마이클에게 차를 렌트해 주는 조건으로 자기 아들과 놀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이클은 부탁을 수락했고 조단과 그리고 조단의 어머니인 준 그리고 조단의 동생인 릴리까지 포함하여 네버랜드와 호텔 등에서 함께 놀았다.[114] 이들의 사이는 급격하게 좋아졌는데 한 타블로이드 언론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마이클 잭슨의 새 가족이라는 특종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한편 이혼한 남편 이반 챈들러는 이러한 마이클과 소년의 우정에 질투를 느끼게 되고 마이클을 직접 대면했다. 이반 챈들러는 마이클을 대면하고 나고선 마이클에 대한 악감정이 풀렸고 이반과 마이클의 사이도 급속도로 가깝게 된다. 마이클은 이반을 최고의 아버지라고 칭찬했으며 이반은 마이클에게 아예 우리 집 옆에 집을 지어 조단과 가까이 지내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건 조단이 마이클과 함께 있고 싶다고 학교 친구들과 놀지도 않으며 마이클에게만 붙어 있으려 한 시점부터다. (이반의 재정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반은 치과 의사였지만 이혼으로 인해 위자료 6억 원을 주며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야망 때문에 거액이 필요했던 시점이다. 이반은 준에게 조단의 양육비를 줘야 하지만 줄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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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이반 챈들러는 마이클과 사이가 안 좋아지자 악덕 변호사로 유명한 베리 로스에게 찾아갔다. 베리 로스는 마이클 측에게 조단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20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그들이 증거로 내세운 것은 조단의 녹음이었는데 조단은 처음에는 마이클을 열렬히 좋아했고 따랐으며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 적이 없다. 이는 마이클의 사립 탐정이었던 앤서니 펠리카노에 조사에서도 추가 확인된다. 그러나, 이반이 한 정신과 의사에게 조단을 데려가고 마취 전문의가 있어야만 투입할 수 있는 최면 진정제를 투입한 뒤부터는 조단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자신을 성추행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 사용된 최면 진정제 'AMYTAL SODIUM'은 상당한 부작용으로 인해 비판이 심각하다. 이 약을 투여하게 되면 의식이 몽롱해지고 상대방의 말에 거역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또한 이 약을 사용하여 거짓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미국 워싱턴 대학 등에서 실험이 진행되고 입증이 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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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이때는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았으며, 이반 측과 마이클 측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상태였다. 마이클은 이반 측의 합의 제안을 거절했다. 1993년 7월 2일 조단의 의붓아버지인 데이비 슈워츠는 이반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 전화를 했고 전화의 녹음본이 공개됐는데 이반은 데이비 슈워츠에게 "일이 잘 되면 나는 대박일거야.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마이클 잭슨은 영원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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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이반은 마이클에게 민사소송을 걸었고, 아동복지국은 자체적으로 형사 수사에 착수한다. 네버랜드가 압수수색 되자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처음 알게 됐고 마이클을 향해 끊임없는 비난을 쏟았다. 준은 형사 조사에서 마이클은 성추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했다. 12월 마이클 잭슨은 검찰에게 몸수색을 당한다. 검찰은 마이클 잭슨의 성기 사진을 찍어, 조단 챈들러가 증언하는 마이클의 성기 모양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려 했는데 일치하지 않았다고 로이터 통신과 USA투데이가 보도했다. 마이클은 자신은 결코 죄가 없다며 결백을 호소했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주장했다. 그러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진통제 중독 그리고 변호사들이 마이클이 결백하더라도 백인 중상류층 보수 지역인 산타바바라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합의를 권유하여 1500만 달러에 민사소송 사건을 합의한다. 일부는 합의를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합의안 내용을 보면 마이클은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127][128] 민사 소송 문제는 해결됐다. 검찰청 검사 'Gil Garcetti'는 민사소송 합의가 형사 수사 건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증거의 부족으로 1994년 9월 22일 조사를 중단했으며 경찰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잭슨을 기소하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없었고 이로 인해 형사 수사는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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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2005년 이반 챈들러는 아들 조단 챈들러의 눈에 스프레이와 후추를 뿌리며 실명을 시도했다. 또한 질식 행위로 죽이려고 한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조단은 법정에다 이반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 신청을 했고 법원은 받아들였다. 이반 챈들러는 마이클이 죽은 지 5개월 후인 2009년 11월 5일 권총으로 자살을 하며 생을 끝마쳤다. 또한, LA DCFS(로스엔젤레스 아동복지국)가 당시 마이클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 마이클의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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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이 사건은 마이클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으며 이후 불면증을 겪고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불면증과 약물 중독 문제는 매우 심각했는데,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마이클이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통증으로 인해 약물에 크게 의존했다고 한다. 마이클이 약물 중독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가자 마이클의 주치의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 주치의는 "제발 살려달라고 우는 사람을 외면할 수 있겠어요?"라며 약물 투입을 정당화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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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1994년 5월 마이클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다. 둘은 1975년부터 만나왔으며, 매우 긴밀한 관계였다. 둘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이 둘의 결혼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미국의 전설적 가수이자 많은 사랑을 받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 마이클 잭슨과 결혼한다는 것은 큰 화제였다. 일각에서는 마이클이 자신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리사 마리 프레슬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그렇지 않다며 아주 사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같이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였으며 여러 시상식에도 동행했다. | |
| 75 | == 2번째 결혼과 자녀 == | |
| 76 | 1995년 마이클 잭슨은 가지고 있는 ATV 뮤직 카탈로그의 지분 절반을 소니에게 9500만 달러를 받고 넘겼으며 그로 인해 소니/ATV 뮤직 출판사가 탄생했다. 그해 6월 마이클은 정규앨범《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를 발매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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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Disc 1에는 마이클의 히트곡들이 수록돼 있고, Disc 2에는 그의 신곡이 수록된 더블 앨범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 700만 장 판매량의 인증을 받았다. 싱글 'You are not alone'은 빌보드 데뷔 첫 주 만에 1위라는 '핫샷'으로 불리는 신기록을 세웠다. 앨범은 2000만장 이상이 판매됐으며 평론가들에게는 대체로 평균적인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앨범 상 후보로도 지명됐으며 수록곡 'Scream'은 발매와 동시에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 5위로 올랐고 올해의 뮤직비디오로 그래미에서 수상했다.[143] 미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발매된 싱글 'Earth Song'은 많은 인기를 얻었다. 영국에서는 6주간 1위를 기록했고 1,160,000장의 싱글이 팔렸으며 독일에서는 100만 장의 싱글이 팔려 2x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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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한편 'HIStory' 앨범은 유대인 비하 논란을 겪었다. 싱글 'They Don't Care About Us'의 가사 중 'Jew'는 유대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미국 내에서는 사용이 금기시된 용어다. 6월 17일 마이클은 그 말을 선택한 것에 대해 공개적인 사과를 했다. 마이클은 "이 노래는 편견과 증오에 대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끌기 위한 한 방법이다. Jew라는 용어는 잘못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선택한 용어였다"라고 해명했다. 그 뒤 논란이 된 가사 부분을 수정한 뒤 앨범을 재발매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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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같은 해 12월에는 연습 도중 공황발작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했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으며 15분만 늦었어도 마이클이 죽을 수 있었다고 의사들은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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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1996년 9월에는 HIStory World Tour를 개최했는데 5개 대륙 35개국에서 총 82회 공연으로 450만 명의 관객들을 불러온다. 관객 수치로 판단하면 마이클의 투어 중 가장 성공적인 투어였다. 그해 그는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2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했으며 11월에는 '데비 로우'라는 간호사와 재혼했다. 데비 로우는 1980년대 초반부터 마이클 잭슨과 아는 사이였다. 마이클은 백반증으로 인해 피부과를 방문했는데 당시 마이클을 돌 본 간호사가 데비였다. 데비는 마이클의 열렬한 팬이었고 마이클에게 싸인을 받기도 했으며 자주 통화를 하며 둘은 가까워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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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1997년 5월 20일 리믹스 앨범 Blood on the Dance Floor: HIStory in the Mix를 발매했다. 미국에서는 100만 장 영국에서는 25만 장이 팔려나갔으며 이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Blood on the Dance Floor (노래)는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는 42위에 그쳤지만 영국에서는 1위를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선 10위 안에 드는 성공을 거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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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1997년 2월 13일 마이클의 첫 번째 자녀 마이클 조셉 잭슨 주니어가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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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1998년 마이클의 두 번째 자녀. 패리스 마이클 캐서린 잭슨이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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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공연을 한국 서울과 독일 뮌헨에서 개최했다. 10월 8일에는 '데비 로우'와 이혼을 했다. | |
| 59 | 93 | == 본 문서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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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9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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