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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20 | 방송국들의 인종차별 정책들을 돌파했고 잭슨의 성공으로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계 진출에 활로가 생겼다. 안재필 음악평론가는 "1980년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중음악계에서 흑인들은 항상 2인자였다.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로큰롤은 물론이고, 스탠더드 팝, 포크 음악, 하드 록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백인들이 주류를 점했다. 소수의 흑인 가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마이클 잭슨이 팝의 주류에 전면 등장하면서 흑인들의 정상 등극도 활발해졌다."라고 평가했다. 롤링스톤즈는 "마이클 잭슨은 미국인들이 흑인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선봉장이었다. 새로운 흑인 그룹들이 라디오에서 대히트를 쳤고, 음반회사들은 MTV 앞에 머리를 숙였다. 흑인 아티스트들의 출연을 거부했던 로큰롤 TV와 라디오 방송국의 굳게 닫힌 문도 현재 음악산업에서 가장 재능있는 한 스타에 의해 무너졌다. 그 뒤로 모든 것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빌리진의 크로스오버가 가장 중요했는데 디스코 시대 이후 처음으로 흑인음악을 백인 로큰롤 청중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AOR(당시 백인음악 위주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무너뜨렸고 이로 인해 MTV가 완전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빌리진을 시작으로 수많은 흑인 아티스트들이 큰 히트를 쳤다"라고 평했으며 빌보드는 "1980년대 들어 디스코 시대가 저물고 차트에서 흑인음악의 후퇴는 얼마나 드라마틱했던가? 1982년까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흑인음악의 비중은 거의 80%나 감소했다. 이것은 당시 흑인음악의 존재감이 거의 바닥이었음을 말해준다. 확실히 흑백 사이에는 깨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벽이 존재했는데 특히 아이들은 서로 무슨 음악을 듣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MTV와 라디오 채널은 철저히 백인음악 위주로 편성됐다. 하지만 MTV가 마이클과 함께 성공하면서 다른 흑인 아티스트들의 비디오도 빠르게 방영되기 시작했고 팝 라디오에서 자취를 감췄던 흑인음악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으며 대중들은 이제 흑인 음악가와 백인 음악가의 비디오를 같은 채널에서 보고, 그들의 음악을 같은 라디오에서 듣는 데 익숙해지게 됐다. 스릴러 시대에 흑인 음악은 차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린스의 싱글 '1999'조차도 1982년 처음 발표됐을 땐 라디오에서 아웃됐다가 1983년 중반에 재발표된 후 MTV에 모습을 보여 팝 라디오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마이클과 MTV의 조합은 실로 거대한 파워 그 자체였으며 레이건 시대 초기 쪼개져 있던 대중문화를 재통합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흑인음악은 주류로 부상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또 배철수 DJ는 "마이클은 음악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입니다. 마이클과 함께 소울팝, R&B팝이 궤도에 올랐고 프린스, 라이오넬 리치, 휘트니 휴스턴은 마이클의 등장으로 인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마이클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 장르는 컨트리 팝이었지만, 마이클이 우뚝 솟으면서 완전히 음악의 양태가 바뀌었습니다. 마이클의 등장으로 인해 세련된 흑인음악, 재즈나 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음악마저도 등장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평가했다. 잭슨의 성과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 인종들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부여했다. 잭슨은 'Thriller' 로 대성공을 거두고 당당히 타임지의 표지 모델을 장식했다. 타임은 잭슨이 흑인을 음악의 주류로 올려놨다고 평가했다. 잭슨은 20세기 미국의 영웅이라는 소리도 들었으며 유색인들의 인권신장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유색인 지위향상협회(NACCP Image Award)에서 상을 받는다. 유명 농구 선수 매직 존슨은 흑인을 위해 수많은 문을 열어줘서 감사하다고 애도를 표했으며 마틴 루터 킹 2세의 아들 마틴 루터 킹 3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훌륭히 해낸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잭슨은 타이거 우즈,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에 앞서 유색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라고 회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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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팝 레코딩의 교과서, 팝 사운드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정일영 음향엔지니어는 잭슨의 음반 사운드는 현대음악의 기준으로 불려도 될 만큼 충실하며 스테레오 효과를 극한까지 올린 팝 레코딩의 교과서이며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그의 음악 세계는 그냥 팝이라고 흘리기에는 음향 엔지니어로서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고 평가했고 배철수 DJ는 "음반을 들으면 이건 소리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마이클의 음반은 스튜디오에서 들으면 사운드가 다른 음반과는 다릅니다. 정말 보통 소리가 아닌거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유행을 선도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또 한지훈 음향엔지니어는 "저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지금도 음악과 오디오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들을 때면 아직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마이클 잭슨의 감성과 메시지가 완성도 높은 사운드 품질 덕에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다른 가수들의 그것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의 음악은 후배들에게 교본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평가했고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각각의 악기가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한 덩어리로 작동하는가를 알고 싶다면 마이클의 빌리진을 강력 추천한다. 마이클은 이 곡의 믹싱을 무려 90번 넘게 했다. 빌리진이 발표된 게 1983년이다. 그런데 이 곡의 사운드는 2016년에 발표된 그 어떤 곡과 비교해도 꿀리기는커녕 우위를 점하고도 남을 수준이다."라고 평했으며 [Bad] 앨범에 대해서도 "[Thriller]에 이어 ‘백인은 록, 흑인은 소울’이라는 기존 등식을 다시금 전복했다는 업적으로도 찬사를 받는다.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일궈낸 사운드 퀄리티의 경이로움 역시 [Thriller]에 이어 듣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확실히 그것은, 마이클 잭슨 외에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고감도 사운드 메이킹이었다. 30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듯 '현대적'으로 들리는 작품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한상철 음악평론가도 [Bad] 앨범에 대해 "[Thriller]에 전혀 꿀리지 않는, 오히려 이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아니, 오히려 [Thriller]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구현한 요소들마저 있었다. [Bad]가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붐을 일으켰던 뉴 잭 스윙과 90년대 만들어졌던 메인스트림 댄스 뮤직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앨범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평했고 박준우 음악평론가는 "[Bad]는 하드 락,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좀 더 무거운 장르의 문법을 차용했는데, 'Dirty Diana'에서 록 음악의 문법을 차용한 것은 후대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이르기까지 팝 음악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라고 평가했다. 유명 음악 평론가인 임진모는 잭슨의 앨범은 사운드가 뛰어나 옛날 스튜디오 엔지니어 책상에는 항상 잭슨의 앨범이 꽂혀있었다고 한다. 또한 "비트 감각이 없으면 댄스음악을 소화하기 어렵다. 타고난 비트감각을 소유하고 있었고 소리에 대한 민감성이 사상 최고라고 할 정도로 사운드에 완벽성을 추구한 가수였다" 라고 평가했고 저서 '젊음의 코드, 록'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으면 녹음과 음향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마이클은 대단히 민감한 귀를 가진 듯합니다. 앉아서 만족할 수 있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를 외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사운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가 막힙니다. 특히 엔지니어들이라면 마이클의 음악은 '반드시' 들어봐야 합니다. 마이클은 그토록 훌륭하고 경이로운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라고 서술했다. 장호연 평론가는 "당시 최고 인물들을 앨범 작업에 참여시킨다는 원칙은 지금까지도 여전한데, 그래서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당대에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간 사운드로 여겨진다."라고 평했고 고영탁 평론가는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 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라고 평가했다.그리고 박정용 평론가는 "[Off The Wall]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전통적인 소울의 현대적/혁신적 해석이나, [Thriller]에서 보여준 간결한 완벽성, 흑인음악이 어떻게 팝/록과 함께 섞일 것인가의 최대치를 보여준 [Bad] 앨범. 어쩌면 마이클이 갖고 있던 '혁신'적인 팝 음악 마스터의 이미지란 이렇게 최신 트렌드에 대한 재능 있는 대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겨두고 간 제법 많은 곡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팝의 입문서이자 교과서임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라고 평했고 | |
| 22 | 팝 레코딩의 교과서, 팝 사운드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정일영 음향엔지니어는 잭슨의 음반 사운드는 현대음악의 기준으로 불려도 될 만큼 충실하며 스테레오 효과를 극한까지 올린 팝 레코딩의 교과서이며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그의 음악 세계는 그냥 팝이라고 흘리기에는 음향 엔지니어로서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고 평가했고 배철수 DJ는 "음반을 들으면 이건 소리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마이클의 음반은 스튜디오에서 들으면 사운드가 다른 음반과는 다릅니다. 정말 보통 소리가 아닌거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유행을 선도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또 한지훈 음향엔지니어는 "저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지금도 음악과 오디오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들을 때면 아직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마이클 잭슨의 감성과 메시지가 완성도 높은 사운드 품질 덕에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다른 가수들의 그것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의 음악은 후배들에게 교본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평가했고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각각의 악기가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한 덩어리로 작동하는가를 알고 싶다면 마이클의 빌리진을 강력 추천한다. 마이클은 이 곡의 믹싱을 무려 90번 넘게 했다. 빌리진이 발표된 게 1983년이다. 그런데 이 곡의 사운드는 2016년에 발표된 그 어떤 곡과 비교해도 꿀리기는커녕 우위를 점하고도 남을 수준이다."라고 평했으며 [Bad] 앨범에 대해서도 "[Thriller]에 이어 ‘백인은 록, 흑인은 소울’이라는 기존 등식을 다시금 전복했다는 업적으로도 찬사를 받는다.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일궈낸 사운드 퀄리티의 경이로움 역시 [Thriller]에 이어 듣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확실히 그것은, 마이클 잭슨 외에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고감도 사운드 메이킹이었다. 30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듯 '현대적'으로 들리는 작품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한상철 음악평론가도 [Bad] 앨범에 대해 "[Thriller]에 전혀 꿀리지 않는, 오히려 이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아니, 오히려 [Thriller]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구현한 요소들마저 있었다. [Bad]가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붐을 일으켰던 뉴 잭 스윙과 90년대 만들어졌던 메인스트림 댄스 뮤직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앨범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평했고 박준우 음악평론가는 "[Bad]는 하드 락,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좀 더 무거운 장르의 문법을 차용했는데, 'Dirty Diana'에서 록 음악의 문법을 차용한 것은 후대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이르기까지 팝 음악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라고 평가했다. 유명 음악 평론가인 임진모는 잭슨의 앨범은 사운드가 뛰어나 옛날 스튜디오 엔지니어 책상에는 항상 잭슨의 앨범이 꽂혀있었다고 한다. 또한 "비트 감각이 없으면 댄스음악을 소화하기 어렵다. 타고난 비트감각을 소유하고 있었고 소리에 대한 민감성이 사상 최고라고 할 정도로 사운드에 완벽성을 추구한 가수였다" 라고 평가했고 저서 '젊음의 코드, 록'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으면 녹음과 음향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마이클은 대단히 민감한 귀를 가진 듯합니다. 앉아서 만족할 수 있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를 외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사운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가 막힙니다. 특히 엔지니어들이라면 마이클의 음악은 '반드시' 들어봐야 합니다. 마이클은 그토록 훌륭하고 경이로운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라고 서술했다. 장호연 평론가는 "당시 최고 인물들을 앨범 작업에 참여시킨다는 원칙은 지금까지도 여전한데, 그래서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당대에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간 사운드로 여겨진다."라고 평했고 고영탁 평론가는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 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라고 평가했다.그리고 박정용 평론가는 "[Off The Wall]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전통적인 소울의 현대적/혁신적 해석이나, [Thriller]에서 보여준 간결한 완벽성, 흑인음악이 어떻게 팝/록과 함께 섞일 것인가의 최대치를 보여준 [Bad] 앨범. 어쩌면 마이클이 갖고 있던 '혁신'적인 팝 음악 마스터의 이미지란 이렇게 최신 트렌드에 대한 재능 있는 대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겨두고 간 제법 많은 곡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팝의 입문서이자 교과서임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라고 평했고 가수 데프콘은 Dangerous 앨범에 대해 "사운드 퀄리티에 가장 많이 놀랐어요. 거의 신기에 가까운 믹싱 실력이라고 할까요. 퀸시 존스와 결별한 잭슨이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만나 최고의 앨범을 탄생시킨 셈이죠. 전곡이 모두 타이틀곡 같은 느낌에다 한발 앞선 음악 기술을 통해 1990년대 팝계에 도장을 찍어버린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이로써 90년대 팝 시장이 정립된 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해보죠. '음악은 가장 긴 생명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 명반이에요."라고 평했다. 또 김영대 평론가는 "MJ의 강렬한 레코딩 사운드는 그 모든 음악적 업적 중에서도 가장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다. 한때 잭슨의 'Dangerous'는 거의 모든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레퍼런스 소스로 쓰였으며 'Bad'의 경우에도 스피커나 플레이어의 개발시에 단골 레퍼런스 디스크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은 레코딩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잭슨의 음반을 믹싱, 마스터링 했던 전문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이 이후 수많은 팝 아티스트들의 집중적인 주문 공세에 시달렸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녹음실과 장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는 수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도 동시에 작업한다. 그런데 왜 유독 MJ의 음반은 자주 최고의 레코딩으로 거론되곤 하는가? 그의 음반에는 유독 다른 가수들이 쓰지 않는 새로운 테크닉과 장비들이 동원되기라도 하는걸까? 여기서 우리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좋은 '사운드'란 단지 마스터링 엔지니어들의 개인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좋은 사운드를 가진 최종 결과물이란 좋은 소리를 구분해 조합하는 최전방 전선의 뮤지션과 프로듀서의 안목이 선행되어 만들어지는 작업일 때만이 가능해진다는 것. 음에 관한한 오디오 마니아 수준의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잭슨의 '좋은 귀'가 이런 소소한 설정을 가능케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한 악기, 한 효과음의 선택에도 직접 관여했고 특히 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퀸시 존스가 떠난 이후 만들어진 'Dangerous', 'HiStory', 'Invincible'에서 그의 역할과 영향력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음반의 메인 프로듀서 위치로까지 격상되었다. 필 콜린스, 핑크 플로이드, 토토, 피터 가브리엘, 마돈나, 스틸리 댄.. 팝 음악을 소리의 예술로 승화시키곤 했던 80년대의 거장들의 이름 몇몇을 더 기억해 낼 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유독 언제나 그 흐름과 경향을 리드하는 몇 안 되는 프론티어였다. 그는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되는 대중음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최상의 결과물로서 빛나게 할 수 있도록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등 일련의 후반 작업과 부가 작업에는 누구보다도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했다."라고 평가했다. 마이클은 프로듀서이기도 했는데 1979년 Off The Wall 앨범과 1982년 Thriller 앨범은 본인이 작곡한 곡들에 한해, 1987년 Bad 앨범은 작곡 여부와 상관없이 전곡을 퀸시와 공동으로 프로듀싱했다. 1991년 Dangerous 앨범부터는 퀸시와 결별하고 테디 라일리, 빌 보트렐, 로드니 저킨스 등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이때부터는 본인이 직접 기존 퀸시의 자리를 대신해 메인 프로듀서가 되어 앨범 제작을 총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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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2002년 작곡가들에게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그룹 토토의 멤버이자 작곡가인 스티브 포카로는 "마이클 잭슨은 대단한 멜로디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제가 백만년이 지나도 절대 생각할 수 없을 것들을 떠올릴 수 있죠."라고 감탄을 표하기도 했다.[64] 실제로 마이클은 성인 이후 발표한 6장의 정규앨범 수록곡 75곡 중 'Billie Jean, Beat It, Smooth Criminal, Heal The World' 등 28곡은 단독으로 작곡했고 'Dangerous, Scream' 등 27곡은 공동으로 작곡했다. 1985년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도 라이오넬 리치와의 공동 작곡 작품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라이오넬 리치에 의하면 마이클이 악보를 볼 줄 몰랐다는 점인데 대신 그는 머리에 떠오른 악상을 테이프 녹음기에 입으로 표현해 담아둔 후 이를 연주자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마이클과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 빌 보트렐은 이와 관련된 일화로 "마이클은 정확한 음악적 직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의 머릿속에는 곡이 앞으로 어떤 레코딩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다 담겨 있었죠..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작업 방식인데, 보통의 경우에 사람들은 기타리스트를 고용하면 "여기 코드가 있습니다. 이렇게 소리가 나면 좋겠어요." 이렇게 요청을 하죠. 그러면 기타리스트가 나중에 사운드를 구상해서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아니에요. 마이클은 모든 리듬과 음, 코드를 전부 입으로 표현해요. 근데 그게 너무 기가 막혀요. 어떤 사운드가 나와야 하는지 아주 정확히 표현하죠."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영대 평론가는 마이클의 작곡 능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악보와 악기에 의지하지 않는, 다소 변칙적이지만 직관적인 마이클 잭슨의 작곡 스타일은 특히 9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천부적인 멜로디 메이커 중 한 명이었다. 창의적인 전천후 멜로디 메이커였고, 뛰어난 연주자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러 악기에 동시에 능해 머릿속으로 구상한 소리들을 구현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다만 화성이나 코드진행의 정격성보다는 입으로 불러진 자유로운 멜로디 구성에 훨씬 능했는데 마이클은 여기에 리듬과 편곡이라는 요소를 더욱 적극 활용함으로써 '작곡->편곡->프로듀싱'이라는 관습적인 녹음 방식을 사실상 해체시켰다. 그와 작업한 프로듀서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 잭슨은 때때로 머릿속에서 편곡이 완성된 곡을 입으로 직접 불러내어 스튜디오에서 즉흥적으로 녹음으로 적용시켜 내기도 했으며, 특히 댄스 곡들의 경우 특별히 정해진 악곡 구성이나 화성의 진행이 없이 리듬과 즉흥적인 멜로디의 연결만으로 훌륭한 곡을 완성시키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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