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2 vs r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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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유럽과 견주어 미국의 자산 및 법인 소득세율은 보통 높은 편이며, 노동 특히 소비세율은 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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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선진국 중에서는 인구증가율이 높고, 주택건설 등의 내수가 강하다. 한편,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
| 37 | == 역사 == | |
| 38 | 미국 경제의 역사는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곳에 정착했던 유럽인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에 1,044억 달러였던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1995년에는 9조 2,362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것은 한 나라의 총생산으로서 물론 세계 제1이며 사상 최고였다. 1999년 1인당 국민소득을 보면 33,438달러로 스위스·일본·독일·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제5위를 기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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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미국 건국 당시는 아직 농업국으로 경제적으로는 후진국이었으며 선진국이 된 것은 최근의 일로 19세기의 비약적인 공업발전에 의한 것이었다. 산업 취업자별 구성비를 보면 1968년에는 제1차산업 6%, 제2차산업 35%에 대해 제3차산업은 59%였다. 그런데 1994년의 산업 취업자별 구성비율은 제1차산업은 2.9%, 제2차산업은 16.9%, 제3차산업은 80.2%로 되어 있으며, 게다가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 1,2차산업의 상대적 위치는 저하하고 제3차 산업의 비율이 계속 상승하였다. 이같은 제3차산업의 약진은 선진국에 공통된 현상이지만 미국에서는 뉴딜 이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연방정부나 지방자치제의 역할과 그 방대한 생산력과 경제력에 따라 유통·금융·공익 등의 부문이 확대된 것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1차산업 부문은 1900년 이래 취업자수의 격감을 볼 수 있으나, 그 낮은 상대적 비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은 주요 농업 생산국이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2차산업 부문도 풍부한 주요 광물자원과 생산성이 높은 근대공업으로 1990년대에도 미국경제의 주축으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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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미국 경제에서의 연방정부의 재정적인 역할은 뉴딜 이래 그 비중이 증가하여, 1970년대에는 미국 경제를 크게 좌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1976년 10월에 시작된 77회계연도에서 세출은 3,942억 달러를 넘는데, 26%(1,011억 달러)가 국방비로 지출되어 물가상승의 큰 요인이 되었다. 또 케네디 시대 이래의 국제 수지의 적자폭 증대는 어떠한 해소방책이 섰다고 할 수 없었으며, 일련의 달러 방위책이 발표되어 있었지만 대외 부담과 민간자본의 해외 유출을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는 한 그 해소는 어려웠다. 1990년대 들어 클린턴 행정부는 계속적인 달러화의 약세정책, 제3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 등으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연평균 3% 내외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 | |
| 43 | == 무역 == | |
| 44 | == 무역 == | |
| 45 | 세계 제1의 물적 생산력을 가진 미국은 세계 무역시장에서도 제1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상대적 지배력은 독일·일본·중국 등의 대두로 점차 저하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1947년에 33%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으나 1955년에는 17%로 거의 제2차 세계 대전 전의 수준으로 저하되고, 1999년에는 세계 무역 총액에 대하여 수출은 6,952억 달러로 11.6%, 수입은 10,591억 달러로 15.1%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의 무역 동향은 세계 경제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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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그러나 최근에는 12%로 떨어져 급속한 신장세를 보인 독일의 11.3%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미국이 유럽에서의 절대적 지배력을 독일에 물려주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그 지위를 잠식당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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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또한 국제수지면에서도 미국은 원래 무역수지의 흑자로서 자본유출(대외투자·경제원조 등)의 적자를 메워 국제수지의 균형을 유지하여 왔으나 자본수지 적자의 확대와 함께 1960년대 중반부터 무역수지도 약화되기 시작하여, 1971년에는 1888년 이래 최초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는 산업경쟁력의 약화와 달러화의 과대평가 및 생산능력을 넘어선 지나친 소비경향에 의한 것이다. 미국의 1984년 무역적자는 1,233억 달러, 1985년 적자는 1,520억 달러에 이르렀다. 1995년의 무역적자는 1,862억 1,500만 달러였다. 무역수지의 적자는, 서비스 수지의 흑자를 크게 상회하여, 이자와 배당의 지급도 더한 경상수지는 큰 적자가 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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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미국의 주요 수출상대국은 이웃나라인 [[캐나다]]가 최대이고, 그 밖에 [[멕시코]], [[일본]], [[영국]], [[독일]], [[중국]], [[대한민국]], [[네덜란드]], 타이완, 홍콩 등이고, 수입 상대국은 캐나다, 일본, 멕시코, 중국, 독일, 영국, 타이완, 대한민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다. 국토가 넓고 각종 자원이 풍부한 미국에게 있어 무역에 의존하는 비율은 적으며, 자급자족형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농산품이나 기계 등에서 생산고가 양적으로 많지 않은 어떤 상품(예를 들면 카메라·선박·바나나) 중에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것도 있다. 산업의 높은 생산성으로 해서 특히 공업제품의 국제 경쟁력은 강하지만, 일반적으로 무역정책은 국내산업 보호의 색채가 짙다. 수출입을 품목별로 보면, 우선 수출에서는 수송용 기기·기계류가 단연 우세하고, 이어서 식료품(주로 농산품)·공업제품·식품 이외의 원재료 등이 크다. 한편 수입은 텔레비전·VTR 등 공업제품·수송용 기기(자동차)·기계류·식료품·원재료 등이 태반을 차지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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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그 외에도 사무용기기(컴퓨터 포함), 섬유, 원유 등이 있다. 수출품은 기계류, 자동차, 사무용기기(컴퓨터 포함), 비행기 등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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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미국의 수출입의 최근 동향을 보면 그 앞날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원래 국내산업 보호주의의 색채가 짙은 미국이 케네디 대통령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으로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수출진흥에 의한 흑자로 개선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연이은 수출의 동향을 보면 그 신장은 서유럽 여러 나라의 신장을 하회하며,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몫은 해마다 저하했다. 또 상품별로 보면 완성 공업품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EU 여러 나라나 일본 등의 생산성이 향상된 결과 그다지 수출이 늘지 않는다. 수입에 있어서는 완성 공업품·반제품·원재료·식품 등의 균형이 잡혀 있으나 최근 국내 산업계로부터 수입 제한의 요구가 강력히 제기되어 다시 보호무역으로 되돌아갈 기미를 보여 결과적으로 국제무역에 여러 가지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은 환율과 통상 정책에 주력한다는 정책을 세워 놓고 있다.[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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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해외 투자편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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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두 번의 석유파동과 이어진 1차 걸프전이 한 경고가 되어 미국의 에너지 정책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몇몇 주요 생산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끊임없이 증가하는 석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 걸쳐 탐사작업과 투자를 늘렸다. 미국이 수입하는 석유 중 중동의 비중은 1990년대 초 25%에서 오늘날 약 15%로 줄어들었다. 이제 그 비율은 2005년에 미국이 소비하는 석유의 14%를 공급한 아프리카 대륙의 몫에 견줄 만하다. 미국의 목표는 더 나아가 이 몫을 2010년까지 2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미국이 보기에 아프리카는 우선 풍부한 매장량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리적 위치 등 여러 가지 전략적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실시하는 투자는 아프리카 대륙의 개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몇몇 국가, 무엇보다 석유와 광물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개발을 진작시키기 위해 미국은 성장 잠재 부문이라고 판단되는 무역에 역점을 두었다. 그렇게 해서 2000년 5월, 미국은 아프리카의 무역 자유화와 성장에 관한 신규 법안 AGOA(African Growth and Opportunity Act)를 채택했다. 이 법을 통해 아프리카 37개국은 자국의 일부 상품을 (특히 섬유제품의 경우) 더 좋은 조건으로 미국 시장에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미국의 석유회사들도 매우 폭넓게 아프리카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혜택을 입었다. 셰브런사는 앙골라의 카빈다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75%를 통제하게 되었다. 차드에서는 엑슨모빌사와 셰브런사가 운영하는 컨소시엄이 카메룬을 거쳐 석유를 수출하기 위해 2004년에 개통된 송유관을 관리한다. 또한 기니만에서는 미국의 여러 석유회사가 2003년 이래로 적도 기니, 상투메프린시페뿐만 아니라 세계 제9위의 원유 생산국인 나이지리아의 해양을 탐사하고 있다.[43] | |
| 60 | === 종합개발 === | |
| 61 | 미국의 넓은 국토는 거대한 하천·사막·건조지 등도 많으며, 그 본래의 성질에 인력에 의한 황폐도 곁들여서 홍수·한발 및 그 밖의 자연재해도 많다. 따라서 자연 보호, 특히 하천의 조절을 목적으로 하는 치산·치수 사업은 연방정부의 중요한 과업이며, 1930년대 이래 전력 개발 등도 합해서 수자원의 종합개발이 이루어졌다. 특히 T.V.A로 알려진 테네시강이나 콜로라도강, 컬럼비아강, 미주리강의 개발이 유명하다. 최근에는 애팔래치아의 쇠퇴지역 재개발이 종합개발의 일환으로서 대두되고 있다. | |
| 62 | === T.V.A === | |
| 63 | T.V.A는 테네시 계곡 개발공사의 약칭으로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취한 이른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1933년에 설립되어, 테네시강 유역의 종합개발이 착수되었다. 대공사를 한 결과 본·지류에 30개가 넘는 댐이 건설되고, 그때까지 큰 피해를 냈던 홍수가 방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전력이 값싸게 공급되어 유역 주변의 주민들에게 혜택이 미쳤으며, 또 전력을 이용한 화학비료의 제조 등으로 전미국의 농업 개혁에 공헌하는 등의 성과를 올려 그 후의 하천 종합개발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 | |
| 37 | 64 | == 본 문서 정보 == |
| 38 | 6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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