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7 vs r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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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6 | 재판부는 현재 남은 증거만으로는 김군의 행방불명 뒤 행적과 사망 경위를 명확히 알 수 없다면서도 행정안전부 등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를 종합해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행사로 김군을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사인에 대한 수사를 은폐·왜곡함으로써 김군의 생명권과 유족들의 행복추구권, 알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며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으로 김군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볼 증거가 많은 점, 의문사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기 전까지 20년의 오랜 기간동안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번번이 좌절됐던 점 등에 비춰 유족들이 그동안 막대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 왔음은 넉넉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금전적으로나마 이를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
| 27 | 27 | == 김세진•이재호 분신 자살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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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1986년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열사)|김세진]]과 이재호가 전방입소 거부시위 도중 분신자살한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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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86년 4월에 접어들면서 대학가 시위에는 <반전반핵 양키 고홈> <미제축출> 등 반미구호가 등장, 반미투쟁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때마침 2학년생들의 전방입소훈련이 각 대학별로 시작되자 학생들은 반미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전방입소훈련을 <양키의 용병교육>으로 규정, 이를 거부하는 사태가 잇따라 일어나는 가운데, 4월 28일 오전 신림동 4거리에서는 서울대생 2명이 전방입소 거부시위 도중 분신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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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서울대 2학년생들의 전방입소 예정일인 이날, 입소를 거부한 4백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던 도중 서울대 반전반핵평화옹호 투쟁위원장 이재호(22살, 정치학과 4년)와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은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등의 구호를 외치며 온몸에 시너를 섞은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둘 다 숨지고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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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김세진과 이재호는 반제민족해방사상을 우위에 두는 NLPDR론에 기반하여 86년 3월 29일 결성된 학생운동 지도조직 <구국학생 연맹>(구학련(救學聯)) 산하 공개투쟁체인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自民鬪))의 간부로서, 이 사건은 86년 한해 동안 격렬하게 전개된 반미투쟁과 학생들의 잇단 분신·투신 자살사건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주장의 관념적 급진성과 과격성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운동권 일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
| 29 | 35 |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
| 30 | 36 | == 교수들의 범죄 == |
| 31 | 37 | === 신교수 성희롱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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