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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종의 조부인 세종에게는 왕자 18명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세종의 차남이자 양녕대군, 효령대군과 함께 종친들의 수장격인 수양대군은 야망과 수완이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때 모든 대군은 다투어 빈객을 맞아들여 세력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에게는 무인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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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의 주변에는 집현전 학사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수양대군 역시 집현전 학사들의 포섭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신숙주, 정창손, 김질, 정인지 등이 수양대군의 편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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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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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으로 김종서, 황보인 일파와 안평대군의 친속들을 제거한 수양대군은 영의정 겹 섭정에 오르고, 신숙주, 한명회, 권람 등은 선위의 형식으로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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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 복위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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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위 계획은 권남·정인지 등이 극비리에 추진한 것이라 비록 선양의 형식을 택하였다고는 하지만, 계략에 따른 왕위의 강탈이었다. 이러한 처사에, 특히 집현전 학자로서 세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성삼문·형조참판 박팽년·직제학 이개·예조참판 하위지·사예 유성원 등과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및 병마절도사 조숭문·유응부·종사관 박심문 등은 상왕으로서 수강궁에 있는 단종의 복위와 반역파의 숙청을 꾀하고 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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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1456년(세조 2) 6월 창덕궁에서 명사를 향응하는 기회를 타서 거사하기로 하였으나 계획이 어긋나자 김질(金礩)·정창손 등은 사태의 불리함을 보고 이를 밀고하였다. 세조는 곧 성삼문 등에게 참혹한 고문을 가했으나 모두 굴하지 않았으므로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는 작형 등으로 형살되었다. 하위지도 참살되고, 유성원은 자기 집에서 자살하였다. 이들을 사육신이라 부르며, 이에 연루된 자로 권자신·김문기 등 70여 명도 모두 처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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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세조는 이 사건에 상왕 단종도 관계하였다 하여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군사 50명으로 호송케 하여 영월로 귀양 보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를 추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세조의 아우 금성대군도 순흥으로 귀양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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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9월에 금성대군은 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여 영남 인사에게 격문을 돌려 군사를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밀고가 들어가 탄로 나서 금성대군은 안동에 하옥되고, 이보흠과 기타 영남의 인사들도 많이 주살되었다. 한편, 세종의 아들 한남군·영풍군 등도 멀리 귀양 가고 노산군에 대하여는 군을 폐하여 서인으로 하였다. 이에 영의정 정인지·좌의정 정창손·이조판서 한명회·좌찬성 신숙주 등은 계속 노산군(단종)과 금성대군을 치죄할 것을 주장하여, 세조는 마침내 금성대군을 사사하고 불과 이때 나이 17세였던 단종 역시 [[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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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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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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