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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111 | == [[세조(조선)/논란|논란]] == |
| 112 | 112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세조(조선)/논란)] |
| 113 | 113 | == 여담 == |
| 114 | *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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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116 | * 안평대군과 이현로의 집에 있던 글과 작품들이 많았는데, 세조는 이들을 숙청한 후에 괴상한 글과 작품이라는 이유로 모두 불태워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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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 118 | * 안평대군은 당시 조선 최고의 명필이었다. 고모인 정선공주의 손자 남이와, 동생 임영대군의 아들인 귀성군 준을 총애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세력 확장을 경계한 예종에 의해 예종 즉위 후 남이와 귀성군은 숙청되었다.단종의 죽음을 소재로 한 단종애사를 지은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다시 그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세조대왕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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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 * 세조는 즉위 전 ‘수양대군’으로 불렸는데,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 모두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정치 감각이 뛰어나 형인 문종이 병약하자 일찍부터 권력 구도를 읽고 세력을 규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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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 *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공신을 책봉했다. 그런데 훗날 이 공신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일부를 숙청하거나 견제하기도 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서라면 공신도 예외가 없었다는 점에서 냉정한 군주로 평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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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 세조는 유교 국가 조선에서 보기 드물게 불교를 적극 후원한 왕이었다. 특히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경을 한글로 번역·간행하게 했다. 병을 앓던 중 불경 독송과 기도를 통해 병이 나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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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 * 세조는 심한 피부병을 앓았다고 전해지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온천을 찾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충주 지역 온천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조와 관련된 온천 설화가 전국에 남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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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 * 그의 치세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경국대전 편찬 사업의 본격화이다. 완성은 아들인 성종 때 이루어졌지만, 세조가 기틀을 마련했다. 강력한 왕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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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 * 세조의 능은 경기 남양주에 있는 광릉이다. 광릉은 자연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능 주변의 벌목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생태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숲으로 평가받고 있다. | |
| 117 | 131 | == 본 문서 정보 == |
| 118 | 132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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