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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53 | 사후 일부 무속인들에 의해 무속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여러 사찰에도 봉안되었다. 그를 모신 대표적인 신당으로는 1970년대까지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있던 복개당이 있다.[23] 이 당제는 조선시대에는 제관이 열 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일제 시대에 제관이 5~6명으로 줄었다. 1978년 노인정 공사로 철거되었다.복개당에 보관되오던 영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에 있다. |
| 54 | 54 | == [[세조(조선)/사상과 신념|사상과 신념]] == |
| 55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세조(조선)/사상과 신념 | |
| 55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세조(조선)/사상과 신념|사상과 신념)] | |
| 56 | 56 | == 평가 == |
| 57 | 57 | '''긍정적 평가'''로는 글씨에 뛰어났다는 평이 있다. 왕권을 강화했고 국방을 튼튼히 했으며, 또 비록 그의 집권을 죽음으로써 막으려 했던 이른바 사육신 문제로 그들의 아지트였던 집현전은 폐지했으나, 법전이라든지 역사서 같은 공익적 편찬 사업을 주도하는 등, 학문을 발전시킨 공적이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그밖에 호불의 군주였다는 평도 있다. 세조의 치세 동안 신권이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로 왕권은 조선 역사상 최고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세조는 인의예지신이 아닌 강압적인 철권 통치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새로운 인재들을 과감히 발탁하기 보다는 한명회, [[신숙주]] 등의 측근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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