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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1915년에는 일본인들이 조직한 경성의사회가 단체행동으로 조선총독부 경무국 위생과를 좌지우지하는 행세를 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오긍선,박종항 등과 한성의사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뽑혔다. 1916년 12월에는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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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31 | 1910년에 통정대부에 올라 비서원승지를 역임한 후 1927년 12월 31일 사망했다. 묘는 군포시 금정동에 있었는데 1990년 4월, 산본신도시 개발로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당목리로 이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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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33 | == 친일파인가? == |
| 33 | 34 | 안상호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행적이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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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38 | 또한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관련 참여 주장도 그의 친일 논란을 평가할 때 거론되는 요소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는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대한제국 각계에서 추진됐으며, 일부 관련 단체들은 이토의 동상 건립까지 추진한 친일단체였다. 다만 안상호가 이 행사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토의 정책이나 한국 병합을 어느 정도 지지했는지까지는 별도의 사료 검증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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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40 | 따라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면 “안상호는 근대 의학 발전에 기여한 의사였지만, 일제강점기에 친일 성격의 단체에 참여하는 등 친일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정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확정된 대표적 친일파”라고 단정하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즉, 친일 행적이 있었다고 평가할 근거는 있지만, 그의 의학적 업적과 친일 행적을 함께 놓고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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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2 | == 평가 == |
| 41 | 43 | 안상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근대 의학 발전에 기여한 의사라는 공적과 일제강점기 친일 성격의 사회활동이라는 과를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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