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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16 | 1894년(고종 31년) 16세때 안창호는 평양이 청일전쟁으로 파괴당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군의 진입을 보고 자신이 구국의 대열에 나서야 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할아버지 안태열이 반대했고 온 집안의 반대가 있었으나, 그는 홀로 경성부로 가려 했다. 결국 삼촌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가출하여 차를 타고 경성부로 올라갔다. 이어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운영하는 구세학당 보통부에 입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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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18 | 무작정 경성에 올라온 안창호는 어느 날 경성 정동제일교회가 있는 골목을 지나치다가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먹고 자고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으니 우리 학교로 오라' 고 권하는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장로교에서 설립한 구세학당(求世學堂)에 들어가 공부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산수, 지리, 세계사, 과학 등 새로운 학문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또한 구세학당 재학 중 송순명의 전도로 장로교에 입교하였다. 장로교로 개종하면서 자신에게 개화 사상을 준 필대은에게도 기독교를 소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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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 교육 계몽 운동 == | |
| 20 | 20 | 1897년 구세학당 보통부를 졸업하였는데, 상급 학부로 진학하지 않고 보통부의 조교로 취직하였다. 그해 고향으로 잠깐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 안태열은 안성 이씨 이석관(李錫寶)의 장녀 이혜련(李惠練, 당시 13세)여사와 성혼시켰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약혼이 되었음을 알고 할아버지에게 파혼을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파혼하지 못하고 다시 경성부로 되돌아와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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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1897년, [[서재필]]·[[이승만]]·유길준·윤치호 등이 주관한 독립협회에 가입하였으며, 이상재, 윤치호, 이동녕, 이승만, 양기탁 등과 함께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였다. 안창호는 곧 만민공동회 관서지방 발기회에도 참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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