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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32 | 혼슈 긴키 지방의 요도강 하구 오사카만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에서 [[도쿄]]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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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4세기에 나니와궁이 지어진 이후 약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상업과 외국인 관광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주간 인구는 도쿄 23구 다음으로 일본에서 2위, 야간 인구는 요코하마시 다음으로 3위이다. 수도 도쿄가 속한 간토 지방을 뺀 나머지 지방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이러한 이유로 1956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또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
| 35 | == 역사 == | |
| 36 | 조몬 시대의 해침으로 오사카만이 생성되고, 남부에서 돌출된 우에마치 대지를 사취로 하는 반도가 만들어졌으며, 동부는 하내만이 되었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우에마치 지역은 동쪽의 내륙해와 반도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몬 시대 중기에는 이미 사람이 집단 거주하며 어로·채집 등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이는 기원전 5~6세기의 모리노미야 유적에서 발견된 조개 더미와 굴, 유골을 통해 알려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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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야요이 시대가 되면 반도는 사주가 되어 하내만은 담수화되고 마침내 하내호가 되었다. 하내호 주변은 자연환경의 혜택을 입어 벼농사 등 농경의 발전으로 평야에 영구적이며 대규모인 집단 거주지가 출현하고, 해운이나 대륙과의 교역 거점이 되었다. 오사카만의 끝자락에 있는 요도가와 및 야마토가와의 하구에 돌출된 우에마치 대지가 오사카라는 마을의 원점이다. 고훈 시대에 오사카는 서일본 지방을 연결하는 중심 항구로 개발되었다. 오사카평야에서 발견되는 무덤들의 수가 증가하고 크기가 커지는 것은 정치력이 집중되었다는 증거이며 국가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5세기에는 난바 고즈궁(일본어판)이 세워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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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5, 6세기에 대륙 문물이 전래되고 귀화인들이 들어와 정착하였다. 645년에 고토쿠 천황은 오사카에 나니와노 나가라노 도요사키노미야(일본어판)를 지었고 이 지역에 수도 나니와쿄를 만들었다. 이후 이 지역은 나니와로 불리는 현대적인 도시가 되었다. 이 이름은 나니와구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비록 수도는 655년에 아스카로 이전했지만 나니와는 야마토(일본)와 한국, 중국을 연결하는 수륙 교통의 중요한 거점으로 남았다. 744년에 나니와는 쇼무의 부탁으로 다시 수도로 결정되었으나, 나니와 수도 재이전 작업은 745년에 중단되었고 황궁은 헤이조쿄(현재의 나라시)로 돌아갔다. 항구 기능은 나라 시대가 끝날 즈음에 이웃한 지역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헤이안쿄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활기찬 수륙 교통의 중심지로 남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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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무로마치 시대인 1496년에 정토진종의 본거지로서 이시야마 혼간지가 옛 나니와 황궁 부지에 설립되었다. 1570년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0년 후에 수도승들은 항복하였고 절은 파괴되었다. 1593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이시야마 혼간지 부지에 축조하였다. 1614년부터 1615년에 걸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오사카는 1619년에 에도 막부의 직할령이 되었다. 그리고 요도강의 치수를 위해 구 요다강(아지강)을 개통하여 베네치아처럼 시내 각지에 물이 흐르는 도시가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오사카는 일본의 경제 중심지로 기능해 인구의 상당수가 상인 계층에 속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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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오사카는 일본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활기차고 중요한 항구의 옛 기능을 회복하였다. 대중 문화는 에도의 삶을 묘사한 우키요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사카의 도시 문화는 교토나 에도의 도시 문화와 평행하게 발전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분라쿠와 가부키가 성행했다. 1837년에 하급 무사 오시오 헤이하치로는 도시가 빈곤층들을 지원하는 데 무관심한 것에 대응하여 농민 폭동을 이끌었다. 쇼군의 관리들이 진압하기 전에 도시의 대략 4분의 1이 파괴되었고 이후 오시오는 자결하였다. 막부에 의해 오사카는 효고(오늘날의 고베시)와 함께 보신 전쟁과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1868년 1월 1일에 외국과의 교역을 개방하였다. 현대적인 지자체는 1889년에 설립되었고 처음의 면적은 15km2로 오늘날의 니시구, 주오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도시는 세 번에 걸쳐 확장되어 현재의 크기인 222km2에 이르게 되었다. | |
| 45 | == 자연환경 == | |
| 46 | === 지리 === | |
| 47 | 오사카시는 서쪽으로 오사카만을 향해 열려 있다. 다른 면은 오사카부에 속하는 10개 이상의 도시와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도시는 오사카부의 다른 시정촌에 비해 약 13% 정도 더 큰 면적을 가지고 있다. 도시가 1889년에 설립되었을 때는 오늘날의 니시구와 주오구에 해당하는 15.27km2만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몇 번의 시역 확장을 거쳐 222.30km2로 커졌다. 1925년의 가장 큰 확장 때 126.01km2가 확장되었다. 오사카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쓰루미구의 37.5m이고 가장 낮은 지점은 니시요도가와구의 -2.2m이다. | |
| 48 | === 지역 특징 === | |
| 49 | 중앙 오사카는 대략적으로 주요 도로인 미도스지가 끝나는 곳을 기준으로 기타(北)와 미나미(南)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기타는 오사카의 신흥 중심부로, 기타구를 포함한다. 대략 우메다의 업무 및 상업 지구를 둘러싼 지역이다. 백화점, 극장, 부티크 등이 JR 오사카역과 우메다역 주변에 무리지어 있다. 미나미는 난바, 신사이바시, 도톤보리 등 쇼핑가가 있는 곳이다. 대게로 유명한 도톤보리와 그 주변의 유흥가, 트라이앵글 공원, 아메리카촌이 미나미에 있다. 기타와 미나미 사이의 요도바야시와 혼마치는 법원과 주요 은행의 본사가 있는 전통적인 업무 지구이다. 오사카 비즈니스 파크의 새로운 업무 지구는 오사카성 주변에 있다. 업무 지구는 또한 덴노지역과 교바시역과 같은 제2의 철도 터미널 주변으로도 형성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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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나니와의 808다리"는 이곳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일본의 옛 표현이다. "808"은 이곳의 셀 수 없이 많은 다리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오사카에는 수많은 강과 수로들이 가로지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많은 다리들이 세워졌고 다리 주변 지역은 종종 다리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나가호리 수로와 같은 일부 수로는 매립된 반면에 어떤 것들은 아직 남아 있다. | |
| 52 | === 기후 === | |
| 53 | 오사카시는 온난 습윤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fa)로 연평균 기온은 17.1°C, 연평균 강수량은 1338.3mm이다. 여름은 매우 덥고 습하며 겨울은 상대적으로 온난하다. | |
| 35 | 54 | == 본 문서 정보 == |
| 36 | 5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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