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5 vs r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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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87 | 임기 중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대부분을 천연가스(CNG)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중교통 정비로 인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였다. 또한 새벽 도로 물청소 실시 확대, 중대형 경유차에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등 대기질 개선을 위한 노력했다. 그 결과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2006년 60㎍/m3에서 2010년 49㎍/m3로 떨어져 1995년 관측 이래 가장 낮았다. |
| 88 | 88 | |
| 89 | 89 | “녹지 100만 평을 추가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오세훈 시장은 ‘그린디자인’을 강조했다. 도심 곳곳의 자투리 녹지 공간을 발굴해 기존 공원과 연결했고 옥상공원과 도시구조물 벽면녹화, 가로변 녹지 확충 등을 통해 재임기간 중 423만m2의 녹지공간을 새로 조성하였다. 서울 서남권과 동북권 일대에 ‘서서울호수공원’과 ‘북서울 꿈의 숲’, ‘서울창포원’ 등 녹지공원을 조성했고, 한강변에서는 시멘트를 걷어낸 뒤 녹지 생태공간으로 만들었다. 성곽을 따라가며 역사유적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서울성곽길(21km)과 자연생태・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외사산길(157km)을 연결하는 총 연장 178km의 서울둘레길과 ‘무장애 숲길(자락길)’을 조성하기도 했다. 어린이대공원을 리모델링한 후 무료 개방하고, 중랑캠핑숲,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서울대공원, 푸른수목원 등에 캠핑장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
| 90 | === 서울시 역사상 최초 청렴도 1위와 조직 개편 === | |
| 91 | 오세훈 시장은 ‘경쟁이 경쟁력’이라는 모토 아래 ‘신인사시스템’을 통해 청렴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연차에 상관없이 승진시키는 반면, 부패·무능공무원에 대해서는 ‘3%퇴출제’로 알려져 있는 ‘현장시정지원단’을 통해 재교육시킴으로써 조직의 긴장을 높이고 내부 기강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한번의 공금횡령이나 금품·향응수수만으로도 공직에서 완전 퇴출되는 ‘원스트라아크 아웃제’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는 한편, 이를 자치구와 투자출연기관은 물론 보조금 지원시설에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공직자 비리에 대한 시민과 내부 고발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감사관 핫라인 및 클린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인사 청탁, 이권 개입 등 비대가성 비리 근절을 위한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는 등 청렴시책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광역자치단체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2006년 15위였던 성적이 2008과 2010년에는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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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또한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하는 '부패방지시책 평가'에서 서울시는 시, 도 가운데 유일하게 최상위인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고, 2008년과 2009년 연속으로 최상위 평가를 받아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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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2010년까지 공무원 정원을 1,300명 줄이고 기구 통폐합을 통해 서울시 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서울시내 518개 동사무소 중 120여개를 폐지하는 통폐합 작업을 추진하고, 통폐합으로 확보된 유휴 공간은 공공보육시설, 공공도서관으로 전환하였다. | |
| 96 | ===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요금 및 환승제 실시 === | |
| 97 | 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중교통 정책으로 서울시민은 대중교통 환승시 무료나 할인된 요금을 적용받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인근 경기도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교통제도의 차이 때문에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인근 수도권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대중교통 환승시스템을 서울 인근 수도권지역 대중교통과 서울시 대중교통에도 접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중교통 환승 손실금을 경기도 및 서울시에서 서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한 서울시내 교통혼잡 완화 효과 및 대중교통 이용 증가로 인한 환경개선 효과는 미래를 예측하며 거시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2007년 1차적으로 버스와 지하철에 통합환승제를 실시하였고, 2008년 2차적으로 광역버스까지 확대하였다. | |
| 98 | === WCIT 최우수상 수상과 세계 도시 전자 정부 협의체 출범 === | |
| 99 | 서울시는 행정의 신속성 및 편의성, 그리고 정보공개를 통한 행정의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자정부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오세훈 시장 역시 '소프트파워 강화'를 내세우며 전자정부 진흥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시작된 '세계 100대도시 전자정부 평가'에서 서울시는 4회 연속 1위를 거머쥐었고,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전자정부 포럼에서 '서울 IT선언'을 발제하고 채택하였다. 2010년에는 WITSA(세계 정보기술 서비스연맹)에서 2년에 한번씩 주관하는 WCIT(세계 정보기술 올림픽)에서 서울 모바일포털로 지방자치단체로는 국내 최초로 Excellence Award를 수상하였다. 같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를 설립하여 초대 의장으로서 활동하였다. | |
| 100 | == 서울시장 5기 == | |
| 101 | 2010년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나경원]], 김충환 등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했다. 6월 2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개표 초반에 한명숙 후보에게 뒤지다가, 후반 강남 3구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역전하여 민선 5기 제34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선되었다. 구체적으로 강남구(+59,206, +25.68%), 서초구(+43,820, +23.66%), 송파구(+23,814, +8.19%), 강동구(+11,097, +5.33%), 용산구(+8,579, +8.24%), 양천구(+1,078, +0.51%), 영등포구(+1,017, +0.57%), 중구(+238, +0.39%) 등에서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게 앞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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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2010년 지방선거에서 오세훈은 한명숙에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시의원은 79석을 얻은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은 27석을 얻는데 그쳐 여소야대 구도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오세훈의 시정 운영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기 임기가 시작된 이후 민주당 소속 40명의 서울시의원들에게 설문을 한 결과 50%가 '오세훈 시장은 잘한 것이 없다'고 답변하였고, 시정 운영 중에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문제로 '서울광장 운영 방식'을 꼽았으며 실제로 서울시의회는 이 부분을 가장 먼저 변경했다. 오세훈의 의회 출석률은 전국 지자체장 평균 출석률 84.84%보다 3배가량 낮은 29.72%를 기록했다. 조례안 처리율도 46.46%로 광역지자체 평균 89.43%보다도 2배가량 낮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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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민선5기 서울시의 비전은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이다. | |
| 106 | === 꼬마버스 타요 === | |
| 107 | 서울시는 2007년부터 대중교통 브랜드 홍보 및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구상했다. (주)아이코닉스, EBS와 3자 파트너쉽을 맺고 개발에 착수하여 2010년 EBS를 통해 《꼬마버스 타요》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꼬마버스 타요의 캐릭터 번호인 120은 다산콜센터 번호이고, 02번은 서울 시내전화 지역번호이며, 1000번은 서울의 천만 시민을 의미한다. 국제 만화박람회 출품과 해외에서 프로모션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2011년 서울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타요와 함께하는 어린이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했다. 2014년 실제 타요버스가 등장했는데, 선풍적인 인기로 상시 운행 및 노선 확대가 이루어졌다. | |
| 108 | === 서울 바이오펀드 조성 === | |
| 109 | 오세훈 시장은 민선 5기 핵심 공약으로 GRDP(지역내총생산) 4만불 달성을 내세웠으며, 마곡지구에 바이오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세계 유수의 대학과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하고, 바이오 벤처 육성을 위한 펀드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1년 오세훈 시장은 산업통상자원부 및 외국기관과 합작하여 약 700억원 규모의 '서울 글로벌 바이오 펀드'를 조성하였는데, 2015년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429%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였다. | |
| 110 | === 세계 최초 4년 연속 유엔 공공행정상 수상 === | |
| 111 | 2011년 유엔 경제사회처는 서울특별시의 '공개세무법정'과 '가출위기 10대여성 자립지원' 이 각각 유엔 공공행정상 우수상으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2008년 사이버정책토론방(우수상), 2009년 아리수 실시간 수질공개서비스(대상), 천만상상 오아시스(우수상), 2010년 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대상), 희망플러스통장(우수상)에 이어 4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세계 최초의 기관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한 3개년 연속으로 2개 이상의 정책이 수상하는 신기록도 달성하였다. | |
| 112 | === 수해 === | |
| 113 | 2011년 7월 서울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혔는데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이 원인으로 제기됐다. 빗물을 지하로 보내는 빗물받이가 1m는 돼야 하는데 대부분 40cm이고, 이마저도 관리가 안 돼 오물이 끼어 악취가 나며 디자인에 신경을 쓰다 보니 구멍이 좁아져서 피해를 불렀다는 주장이다. 또한 서울시는 보도블록과 간판에 디자인을 도입한다며 디자인거리와 르네상스거리에 2133억 원을 투입했으나 30곳의 디자인거리 중 26곳은 물 빠짐 기능이 거의 없는 화강판석을 사용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수해 방지 예산도 오세훈의 취임 이래 매년 줄더니 1/10 규모가 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수해방지 예산이 3436억으로 2007년에 비해 두 배 늘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민선 1기부터 5기가 시작된 올해까지 풍수해 관련 예산을 분석한 결과, 특별회계를 포함한 예산 규모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반박했다. 수방관련 예산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재난관리기금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다 합친 규모가 아니라 일반회계만 보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전까지 수해방지 예산 항목에 없었던 하수도 특별회계를 이번에 끼워넣었다. 게다가 서울시가 수해방지 예산에 집어넣은 재난관리기금 항목에 보면 수해방지와 무관한 제설자재구입·복구비 등 약 900억원이 포함돼 있어 수해예산관련 부분들은 수방예산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 |
| 114 | === 무상급식 주민투표 === | |
| 115 |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무상 급식을 시행 중에 있었으나, 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및 곽노현 교육감은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8%에 불과한 무상급식 대상을 30%로 확대하고, 2014년까지 5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선택적 복지를 제시했다. 2011년 1월 6일, 서울시의회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장 직권으로 오전 0시 30분에 본회의를 열어 민주당 단독으로 무상급식조례안을 처리하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처리시킨 무상급식조례안에 대해 공포를 거부함과 동시에 법원에 무효소송을 내기로 했고, 서울시의회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포 거부에 따라 익일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무상급식 조례안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시민들의 의사를 직접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서울시의회에 제안하였다. 민주당은 전체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1년에 695억원인데, 주민투표를 위해 182억을 낭비하는건 무리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권자의 판단비용일 뿐이며 오히려 전면무상급식에는 최소 4000억이 들고 복지정책은 한번 시행하면 중단할 수 없는 불가역성 등을 고려하면 비용이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넘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다며 주민투표의 추진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사흘 앞두고 실패할 경우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
| 116 | ||
| 117 | 2011년 8월 24일 주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에 미달하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하위 50% 지원 정책은 폐기되고 곽노현과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되었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8월 26일 사퇴했다. | |
| 118 | == 서울시장 사퇴 이후 == | |
| 119 | 2012년 배우자, 두 딸과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배우자 송현옥은 세종대학교 교수로 안식년을 신청하여 영국으로 간 것이었다.킹스칼리지 런던(KCL)의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였으며, 그 후 중국 상하이의 푸단대학교 중급어학과정에 등록하여 공부했다. | |
| 120 | ||
| 121 | 2013년 귀국 이후 법무법인 대륙아주에서 국제업무, 국가계약, 민사소송 담당 고문변호사로 일했다. 2013년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에 임용됐다. | |
| 122 | ||
| 123 | 2013년 12월 KOICA의 페루의 중장기자문단 도시행정분야 모집공고에 지원하여, 6개월간 페루의 리마시청에서 도시행정분야 자문을 담당하였다. 2014년 6월에 한국에 귀국하였고, 같은달 KOICA 르완다 중장기자문단 도시행정분야 모집공고에 지원했으며, 르완다 키갈리시청에 파견되어 중장기자문단 활동을 수행하였다. | |
| 124 | ||
| 125 | 2015년 1월 귀국한 뒤 대학 특강 등을 진행하였고,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다. 4월에 치러진 재보선 선거에서 관악을 선거구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개표 결과 관악에서 27년만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 |
| 126 | ||
| 127 | 2015년 4월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 임용됐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의 '미래사이테크 포럼'의 대표를 맡아 미래신기술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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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 2015년 5월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퇴하자 후임으로 오세훈이 거론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큰일 하실 분에게 국무총리 자리는 맞지 않다'고 언급했다는 소문이 정치권에 전해졌다. 이에 오세훈은 인터뷰에서 거론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던 '페루 리마 일기'와 '르완다 키갈리 일기'를 다듬어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를 출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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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고, 박진 전 종로구 국회의원과 경선에서 경쟁하여 공천되었다.[124] 여론 조사에서 오세훈이 정세균을 약 17%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개표 결과 정세균이 재선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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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20대 총선에서 여동생 오세현(전 KT코퍼레이션 신사업전략담당 전무)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함부르크 대학원 박사로 여성 컴퓨터공학도인 오세현은 더불어민주당의 과학·기술전문가 비례대표를 신청하여 최종 면접까지 진행했지만, 자진철회함으로써 결국 선발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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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 총선 패배 후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가자, 새누리당 원유철 당대표 권한대행은 오세훈에게 혁신위원장 자리를 제안했으나 오세훈은 자숙이 필요하다며 거절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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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2016년 7월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공존과 상생을 위한 연구소'(공생연구소)를 열었다. 대표적 새누리당 소장파이자 구 미래연대 동지들인 원희룡 제주지사, 남경필 경기지사와 연대하며 당대표 비박계 후보 단일화에 동참하였다. 2016년 7월 27일 새누리당 대표 후보인 이주영, 이정현, 한선교, 김용태, 정병국 의원이 종로 당원협의회를 찾아 오세훈을 차기 대권 주자로 추켜세우며 구애 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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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2017년 1월 5일 새누리당을 탈당하였고, 개혁보수신당에 가입하여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월 9일 바른정당 윤리TF팀장으로 임명되었고, 정치개혁 및 윤리강령 제정 관련사항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당대표 당원소환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사무총장직 폐지 등을 실시했다. 2017년 1월 13일 오세훈은 '새누리당이 사당화되는 것에 대하여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저의 무능과 무책임함을 통감한다. 국정 운영에서 비정상적인 요소들이 발견될 때에도 제때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라고 밝히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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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 바른정당 상임고문을 지내다가 국민의당과의 합당에 반대하여 2018년 2월 5일 바른정당을 탈당하였고, 11월 29일에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2020년 4월 서울 광진구을 국회의원 후보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에게 득표율 2.57% 차로 패배하여 낙선하였다. | |
| 90 | 142 | == 본 문서 정보 == |
| 91 | 143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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