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3 vs r14 | ||
|---|---|---|
| ... | ... | |
| 62 | 62 | |
| 63 | 63 | 1980년 9월 22일에는 이라크 군대가 이란 서부 지역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초기에는 우세를 점하였으나, 1982년 중반에 이르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란군에 의하여 이라크군이 다시 이라크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 1982년 7월에는 이라크가 수세로 들어갔고, 이란군이 오히려 공세 작전을 펴면서 바스라 등과 같은 이라크의 대도시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이라크가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이라크의 패배로 끝날 때인 198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란의 전쟁 사상자는 약 23만 명에 달한다고 전해졌다. |
| 64 | 64 | |
| 65 |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전된 후인 1989년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총리가 취임하였으며, 친자본주의 정책을 피고 경제 복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정책들을 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슬람 정책에 위배되거나 급진 이슬람 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는 감히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997년에 라프산자니 총리는 중도 개혁주의자인 모하마드 하타미 총리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하타미 총리는 이란을 조금 더 자유주의적, 민주적으로 만 | |
| 65 |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전된 후인 1989년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총리가 취임하였으며, 친자본주의 정책을 피고 경제 복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정책들을 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슬람 정책에 위배되거나 급진 이슬람 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는 감히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997년에 라프산자니 총리는 중도 개혁주의자인 모하마드 하타미 총리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하타미 총리는 이란을 조금 더 자유주의적, 민주적으로 만들려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 |
| 66 | 66 | |
| 67 | 67 |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주의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내무부가 현직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전체 표수의 62.63%를 득표했다고 발표하였고, 2위인 모사비 후보가 33.75%를 득표했다고 밝혔으나 이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의혹도 존재했다. 이로 인하여 이란 전역에서 대대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 시위와 관련된 정치적 움직임을 '녹색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3년 6월 15일에는 하산 로하니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이후 로하니 대통령의 재임기에 이란은 타 국가들과 관계를 점차 개선해나가기 시작하였다. 2017년과 2018년에 이란에서는 종교 최고지도자에게 이란이 처한 어려운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가 벌어졌으며, 정부의 통제 탓에 시위의 전반적 규모는 추정키 어렵지만 몇 천명에 달하는 시위자들이 체포되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될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2019년과 2020년에도 정부가 연료 가격을 300%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후에 시위가 일어났으며, 몇 시간 만에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정부는 시위자들의 연락을 끊기 위하여 1주일가량 동안 이란 전역의 인터넷을 끊어버렸고, 이로 인하여 이슬람 공화국 창립 이래 최악의 시위 탄압이 이루어졌다. 몇 만명이 체포되었고, 수 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군대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다. |
| 68 | 68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