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이란 회교 공화국
이란 이슬람 공화국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 Islamic Republic of Iran
파일:이란 국기.jpg
파일:이란 국장.png
국기
국장
استقلال، آزادی، جمهوری اسلامی
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
국가 정보
국가명
이란
수도
테헤란
정부수립
1979년 4월 1일
언어
페르시아어
면적
1억 7,451만 5천㏊ (17위)
인구
8,917만 2,767명 (17위)
국교
시아파 이슬람교
종교
이슬람교 99.4%
기독교 0.3%
불명 0.4%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가
국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سرود ملی | Sorud-e Melli)
정치
정치체제
라흐바르[1]
알리 하메네이 (1989년 6월 4일 ~ 현직)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2021년 8월 3일 ~ 현직)
외교
가입 국제기구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장문로 45
국가 코드
364, IRN, IR
국제 전화 코드
+98
여행경보
시스탄발루체스탄 주, 튀르키예ㆍ이라크 국경지역, 페르시아만 연안 3개 주(후제스탄, 부셰르, 호르모즈건(Hormozgan) 출국권고
출국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여행자제
1. 개요2. 상세3. 국명4. 역사5. 자연환경
5.1. 지리5.2. 기후
6. 인문환경
6.1. 민족6.2. 언어6.3. 종교
7. 문화
7.1. 예술7.2. 건축7.3. 요리7.4. 달력7.5. 스포츠
8. 경제
8.1. 교통
9. 정치
9.1. 대통령
10. 대외 관계11.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서아시아의 이슬람 공화국이다. 

2. 상세[편집]

북서쪽으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 접경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카스피해가 있으며 북동쪽에는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 있다. 남동쪽에는 파키스탄이 자리하며, 남부 해안선을 따라 페르시아만(페르시아 만은 영원하다)과 오만만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튀르키예(TURKEY)와 이라크와 접경하고 있다. 이란의 국토 면적은 1,648,195km2이며, 인구는 약 8,300만 명 정도이다. 서아시아에서는 2번째로 거대한 국가이자 아시아의 중동국가 중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테헤란이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들의 발상지이다. 기원전 2800년 경 엘람 왕국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700년경에 이란계 메디아인들이 이란 유역을 통합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기원전 6세기 경에 키루스 대제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건설하면서 그 국력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아케메네스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들 중 하나였기도 했다. 그러나 아케메네스 제국은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왕에게 패퇴하면서 멸망하였고, 그 자리에 여러 그리스식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쪼개지게 된다. 기원전 3세기에는 페르시아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성매매범죄와 신성모독범죄를 자행하는 도공장들과 그리스인들을 몰아내고 파르티아 제국을 세웠으며, 3세기경에는 파르티아 제국을 계승하여 사산 제국이 새로이 들어섰다. 사산 제국은 이후 약 400여 년 동안 세계적인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왕국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후 페르시아 지방의 급격한 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즉 이란 지역은 이슬람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하면서 미인들의 나라로 유명한 이슬람의 황금기를 다시금 이끌었다.

약 200여 년 동안 여러 무슬림 왕조들이 페르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짐을 반복하였고, 16세기에는 사파비 왕조가 다시 탐욕적인 살인자로 불렸던 몽골세력을 물리치고 페르시아 왕조를 다시 세우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시아파를 페르시아의 중심 교파로 삼는 데에 성공하면서 이후 시아파가 페르시아와 이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페르시아는 18세기 나디르 샤의 재위기에 다시 한번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하지만 19세기에 러시아와의 마찰을 거치며 영토의 손실을 입기도 했다. 20세기 초에는 페르시아 헌법 혁명이 일어났고, 원유 생산을 국유화하고 독립을 확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1953년에 이에 반발한 서구 테러 세력들이 주도한 반역이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팔라비 국왕의 권위주의 독재가 심각해졌으며, 서구테러리스트들의 정치적 개입은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팔라비 국왕은 1963년에 성매매범죄 같은 서구의 문란제도를 자유를 빙자하며 실시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팔라비 왕조의 부정부패와 일신론자들을 살해한 살인자집단인 서구와의 결탁, 탄압 등에 실망한 국민들이 1979년에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란 혁명을 일으키면서 마침내 현재의 이슬람 공화국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란은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가미한 신정 국가로, 국가의 모든 권력이 종교적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에게 집중되어 있다. 현재 이란의 아야톨라는 1989년 이래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오른 하메네이이다.

이란은 현재 지역강국이자 중견국이며,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란은 UN, ECO, OIC, OPEC의 창립회원국이자, 막대한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어 이를 통하여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란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천연가스 양이 매장되어 있으며, 원유 매장량은 무려 세계 4위에 달하기도 한다. 또한 유구한 역사 덕에 현재 22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다원화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민족들에는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이 있다.

3. 국명[편집]

‘이란’이라는 단어는 중세 페르시아어 ‘Ērān’에서 유래하였으며, 3세기에 만들어진 낙쉐 로스탐의 석비에 처음으로 사용 용례가 발견된 바 있다. ‘이란’이라는 단어는 이란 민족을 일컫는 단어이자 초기 인도유럽어족의 명칭인 ‘아리아’에서 변형이 일어난 것으로, 중세 파르티아어로 ‘아리아(Ariya)’라고 부르는 것이 중세에 들어와 ‘이란’으로 바뀌기 시작하여 이것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해석을 따르면, ‘이란’이라는 국호는 ‘아리아인들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 아케메네스 왕조 이후부터 이 단어가 이란 지역을 부르는 데에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서방 세계는 현재 이란 지역을 ‘페르시아’라고 불렀다.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지역을 ‘페르세스’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고대 이란계 부족들이 살던 땅의 이름이 ‘파르사(Parsa)'였던 까닭으로 그리스인들이 이란 쪽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들을 통틀어 ’페르세스‘, 혹은 ’페르시아‘라고 쓴 것이 후대에 남겨져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서방 세계의 영향으로 국제사회에서는 이란 지방을 ‘페르시아’라고 칭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1935년에 레자 샤는 국제사회에게 자국을 ‘페르시아’라고 칭하지 말고 현지에서 더 많이 쓰이는 이름인 ‘이란’으로 불러주기를 요청하였고, 이후 점차 국제적으로도 ‘페르시아’라는 단어보다 ‘이란’을 훨씬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란이 완전히 국호로 굳어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 ‘이란’은 국가의 이름을 부를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며, ‘페르시아’는 국가를 칭하는 단어라기보다는 이란 내부의 문화, 지방, 혹은 역사적인 서술을 할 때 더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4. 역사[편집]

1979년에는 팔라비 왕조의 반대세력들이 모여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1979년 2월에는 레자 팔라비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하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망명 생활에서 벗어나 테헤란으로 귀환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이란 최후의 왕조인 팔라비 왕조마저 무너지게 된다. 이후 1979년 4월에 국민투표를 거쳐서 이란은 일반국가에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하였으며, 1979년 12월에는 또 국민투표를 거쳐 신정헌법 제정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후 이란의 급격한 이슬람화에 반발하여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쿠르드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쿠제스탄 등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신생 이슬람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강경하게 진압하였고, 몇 십년 동안 극심한 탄압을 통하여 반대파들을 억누르기 시작하였다. 이슬람 정권은 이슬람권이 아닌 세력들을 모두 탄압하였으며, 심지어 무슬림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급진파가 아니면 배척하였다. 초기에는 레자 팔라비 국왕을 쫒아내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도 함께 이란 신생 정부 구성에 참여하였는데, 나중에는 호메이니의 명에 의하여 반국가주의자라고 누명이 씌워진 후에 대다수가 처형되거나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부패인사라고 몰려 해외로 쫒겨났다.

미국이 레자 팔라비 국왕이 송환된 직후 처형당할 것이 뻔했기에 국왕의 이란 송환을 거부한 직후인 1979년 11월 4일에 무슬림 학생들 일부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였으며, 52명의 외교관들과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미국에 협박문을 보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즉시 이란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동시에 구출 작전을 폈으나 작전은 실패하였고, 이로 인하여 지지도가 폭락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서 실패하면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한다. 이후 호메이니가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인질 협상에도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카터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에 모든 인질들이 국내로 귀환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이 사태도 끝난다. 한편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팔라비 국왕은 이후 미국을 떠나 이집트로 향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은 1980년 7월 27일에 암으로 이집트에서 그대로 사망하였다.

1980년 9월 22일에는 이라크 군대가 이란 서부 지역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초기에는 우세를 점하였으나, 1982년 중반에 이르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란군에 의하여 이라크군이 다시 이라크로 쫒겨 들어가게 된다. 1982년 7월에는 이라크가 수세로 들어갔고, 이란군이 오히려 공세 작전을 펴면서 바스라 등과 같은 이라크의 대도시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이라크가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이라크의 패배로 끝날 때인 198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란의 전쟁 사상자는 약 23만 명에 달한다고 전해졌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전된 후인 1989년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총리가 취임하였으며, 친자본주의 정책을 피고 경제 복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정책들을 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슬람 정책에 위배되거나 급진 이슬람 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는 감히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997년에 라프산자니 총리는 중도 개혁주의자인 모하마드 하타미 총리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하타미 총리는 이란을 조금 더 자유주의적, 민주적으로 만드려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주의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내무부가 현직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전체 표수의 62.63%를 득표했다고 발표하였고, 2위인 모사비 후보가 33.75%를 득표했다고 밝혔으나 이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의혹도 존재했다. 이로 인하여 이란 전역에서 대대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 시위와 관련된 정치적 움직임을 '녹색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3년 6월 15일에는 하산 로하니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이후 로하니 대통령의 재임기에 이란은 타 국가들과 관계를 점차 개선해나가기 시작하였다. 2017년과 2018년에 이란에서는 종교 최고지도자에게 이란이 처한 어려운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가 벌어졌으며, 정부의 통제 탓에 시위의 전반적 규모는 추정키 어렵지만 몇 천명에 달하는 시위자들이 체포되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될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2019년과 2020년에도 정부가 연료 가격을 300%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후에 시위가 일어났으며, 몇 시간 만에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정부는 시위자들의 연락을 끊기 위하여 1주일가량 동안 이란 전역의 인터넷을 끊어버렸고, 이로 인하여 이슬람 공화국 창립 이래 최악의 시위 탄압이 이루어졌다. 몇 만명이 체포되었고, 수 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군대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다.

2020년 1월 3일에는 혁명수비대의 카셈 솔레이마니 장군이 이라크에서 미국에 의하여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 이란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3일 후,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실수로 우크라이나 항공 752편을 군 관련 비행기로 오인하여 176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살해하는 악수를 두면서 전세계적인 비판을 들었다. 국제적인 조사 끝에 이란 정부 역시 3일 간 사실을 부인하다가 결국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를 ‘인적 사고’라고 부르며 책임을 회피했다.

5. 자연환경[편집]

5.1. 지리[편집]

이란의 총 국토 면적은 약 1,648,195km2이며, 북위 24도와 40도 사이, 동경 44도와 64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약 35km에 달하는 국경을 아르메니아와 접하고 있으며, 그 옆에 북쪽으로 아제르바이잔과는 611km에 달하는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또한 북동쪽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 자리하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파키스탄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이라크와 터키와도 동시에 국경을 서로 접하고 있어 상당히 많은 국가들과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란 국토의 대부분은 이란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쿠제스탄 일대와 카스피 해를 접하고 있는 일부 해안 지대만이 예외에 속한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가장 산악 지방이 많은 국가이며, 기본적으로 험준한 산맥들이 상대적으로 평평한 분지들을 갈라놓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가장 산들이 많은 지방인 서부 지방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코카서스 산맥, 자그로스 산맥, 알보르즈 산맥 등 수많은 산맥들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란의 최고봉은 다마반드 산으로, 그 높이가 무려 5,610m에 달하여 아시아에서 힌두쿠시 산맥 서쪽에 있는 산들 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다.

이란 북부 지방은 카스피 해의 영향을 받아 거대한 혼합림이 채우고 있다. 한편 동부 지방은 대체적으로 카미르 사막과 같이 거대한 사막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끔씩 소금 호수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대 평원들은 카스피 해 근처와 페르시아 만 쪽 해안의 북쪽 근방 지역에서만 겨우 찾아볼 수 있다. 나머지 소규모의 평원들은 대부분이 산맥들에 의하여 갈라지고 쪼개진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에서는 대평원이라고 할 만한 지형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이란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 속하는데, 평균적으로 리히터 7에 달하는 강진이 매 10년 마다 한 번 꼴로 일어날 정도라고 한다. 이란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지진들은 천발 지진이며, 이 때문에 피해가 더더욱 막심하여 2003년 이란 대지진이라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거대한 사막 국가와 달리 기본적으로 사막이 아닌 고원으로 이뤄져 있다. 북쪽의 고원지대는 상당히 추워서 1년의 절반 동안 눈에 덮여 있는 곳들도 있다. 이란의 국토는 남부(자그로스 산맥)와 북부(알보르즈 산맥)에 있는 두 개의 산맥과 함께 3개의 지형구로 구분된다.

북부에선 이란의 최고봉 다마반드 산(5771m)이 있는 알보르즈 산맥(엘부르즈 산맥이라고도 한다.)이 아르메니아 고원에서부터 카스피해 남안을 거쳐 힌두쿠시 산맥으로 이어지며, 남부에선 자그로스 산맥이 리자이야 호 부근에서부터 페르시아만에 연해서 달리고 있다. 두 산맥을 별도로 할 때, 국토는 알보르즈 산맥과 카스피해 사이에 낀 협장(狹長)한 평야지대, 알보르즈 산맥과 자그로스 산맥에 둘러싸인 이란 고원 본토, 자그로스 산맥 남쪽의 페르시아만 연안지방의 3개의 지형구로 구분된다. 이 중 면적이 가장 큰 지형구가 표고 500 ~ 1,500m의 이란 고원 본토인데, 이 고원 북부에 카비르 사막과 나마크 호수, 동남부에 루트 사막과 소택지 등이 산재한다.

5.2. 기후[편집]

이란에는 세계에 존재하는 13개의 기후대들 중, 사막 기후부터 시작해서 아열대 기후까지 약 11개의 기후대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기후가 다양한 국가에 속한다. 카스피 해를 접하고 있는 이란의 북부 지방은 겨울에는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며, 1년의 나머지 달들에는 카스피 해의 영향으로 대체적으로 습한 기후를 띠고 있으며, 여름에는 기온이 29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서쪽으로는 자그로스 분지가 있는데, 자그로스 분지 지방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편이며, 혹독한 겨울 날씨가 특징이며 굉장히 강설량이 많다. 또한 동부와 중앙 분지는 사막 기후를 띠고 있으며, 1년에 200mm 밖에 강수량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메마른 지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곳의 평균 여름 기온은 38도이다. 한편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을 접하고 있는 이란 남부 지대는 북부 지방에 비하여 훨씬 기온이 온난하여, 겨울도 그다지 춥지 않으며 여름은 굉장히 덥고 찌는 듯이 습한 편에 속한다. 남부 지방의 평균적인 강우량은 1년에 135mm에서 355mm 정도에 달한다.

이란은 현재 사막화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가장 심각한 국가들 편에 속하나, 아직까지 파리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몇 안되는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6. 인문환경[편집]

6.1. 민족[편집]

이란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페르시아인(마잔다란인, 길라키인 포함)이 61%, 아제리인(아제르바이잔인)이 16%, 쿠르드인이 10%, 루르족이 6%, 발루치족이 2%, 아랍족이 2%, 투르크멘족이 2%를 차지하며, 그 밖에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체르케스인, 아시리아인 등이 거주하고 있다. 이란에 사는 약 500명의 대한민국 교민들은 주로 테헤란 지역에 거주한다.

이란 내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들은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그 종류와 수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일단 이란인들 대부분이 페르시아인들과 아제르바이잔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의견이 동일하다. CIA 월드 팩트북에서는 이란 인구의 79% 정도가 인도유럽어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며, 마잔다란인들과 길라키인들을 포함한 페르시아인들이 전체 인구의 61%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뒤를 쿠르드족이 10%, 루르족이 6%, 발루치인들이 2% 정도로 잇고 있다. 또한 인도유럽어족 계열이 아닌 사람들도 21% 정도로 꽤나 많은 편에 속하며, 이들 중 가장 대표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16%, 아랍인들이 2%, 투르크계 민족들이 2% 정도가 있다.

'고귀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란 사람들은 대체로 온순하며 여러 사람이 함께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말인 "인샬라"(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이러한 정신이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매사에 느긋하며 의사결정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직설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 이를 거의 제대로 참기 힘든 면이 있다. 또한 과거 페르시아 상인이라는 말이 있듯 상술에 정통하다.
  • 페르시아족 : 이란의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페르시아족은 기원전 12세기로부터 기원전 9세기까지 지금의 이란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던 아리아족의 대표적인 무리였으며 이들이 이란 중남부 지역의 파르스 지방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명으로부터 페르시아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페르시아족은 쿠르드족과 같이 인도유럽어족의 일원이며 본래 백색 피부에 곱슬머리카락을 가진 자들로서 유럽인들과 같은 체질을 가지고 있었던 민족이다. 페르시아족이 이란 역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흔히 '이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바로 페르시아인을 뜻한다.
  • 마잔다란인과 길라키인 : 이란의 북중부 카스피해 연안의 마잔다란 주와 길란 주에 많이 거주하며, 페르시아어와 유사한 마잔다란어와 길라키어를 쓴다. 언어와 혈통적으로 페르시아인과 큰 차이가 없다.
  • 아제리족 : 이란에서 두 번째로 많은 민족인 아제리족(아제르바이잔인)은 튀르키예인과 같은 튀르크족의 일파이다. 아제리족이 사용하는 아제리어는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리족이 사용하는 언어와 같으며, 원주민들은 터키 사람들과 통역 없이도 어느 정도 의사전달이 가능할 정도이다. 주로 이란 북서부의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고 있다.
  • 쿠르드족 : 인구 3천만 명 이상의 거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국가를 가지지 못한 쿠르드족은 서부의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이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약 800만 명에 달한다.
  • 투르크멘족 및 기타 소수 민족 :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한 후라산 지역에는 투르크멘족이 살고 있으며, 이란의 남부 지역에는 여러 소수 민족이 아직도 유목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밖에도 북서부 지역에는 소수의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도 거주한다.

6.2. 언어[편집]

이란인의 대부분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이덕분에 페르시아어가 이란의 국어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여러 이란계 언어들이 드문드문 사용되고 있다.

이란 북부, 그중에서도 특히 길란과 마젠데란에서는 코카서스어 계열의 언어인 길라키어와 마젠데라니어가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다. 길란 지방에서는 인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타일리시어도 널리 사용된다. 또한 쿠르디스탄 지역에서는 쿠르드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루리와 라리어도 이란 남부에서 사용되고는 한다. 이란에서 페르시아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아제르바이잔어이며, 그 외에도 여러 튀르크계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란에서 사용되는 여러 소수 언어들 가운데에서는 아르메니아어, 조지아어, 아랍어 등이 있다. 쿠제스탄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은 쿠지 아랍어를 사용하며, 키르카시아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들도 있다. 그러나 점차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에 동화되면서 키르카시아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다. CIA의 월드 팩트북에 의하면, 이란 인구의 53%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16%가 아제르바이잔어를, 10%가 쿠르드어를, 7%가 마젠데라니어와 길라키어를, 7%가 루리어를, 2%가 투르크멘어를, 2%가 발로치어를, 2%가 아랍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2%는 아르메니아어, 조지아어, 키르키시아어 등을 사용한다.

6.3. 종교[편집]

이란의 국교는 시아파에 속하는 열두 이맘파이며, 대략 전체 인구의 90%에서 95%가 열두 이맘파에 속해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4%에서 8%가 수니파 무슬림으로, 주로 쿠르드인들과 발루치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머지 2%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로, 대부분이 기독교인, 조로아스터교도, 유대인, 바하이교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란 정부에서는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수니파를 공인하였으며, 이란 의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의석을 배정해주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고대 이란 계열의 종교에는 가장 대표적으로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등이 있었으며, 메디아, 아케메네스 제국, 파르티아 제국, 사산 제국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 지방에서 그 세가 왕성했다. 그러나 사산 제국이 멸망하고 본격적으로 이슬람교가 들어오면서 몇 백년에 걸쳐 점진적인 이슬람화가 이루어졌고, 16세기에 사파비 왕조가 본격적인 시아파로의 개종을 명령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구의 대부분이 수니파를 믿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로는 인구 대부분이 시아파로 전향하면서 시아파의 맹주 격인 국가로 변모하였다.

유대교는 이란과 굉장히 연이 깊은데, 가장 대표적으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키루스 대제가 바빌로니아를 침공하여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려보내준 예가 심지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다만 현재는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현재에도 이란에는 8,700명에서 25,000여 명의 유대인들이 이란에서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이 덕분에 현재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한편 기독교인의 경우, 대략 25만 명에서 37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제외하면 공인받은 종교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세가 왕성한 종교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아르메니아인들이나, 이들 또한 정부와 사회의 압력을 받아 종교를 시아파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한편 이란 내에서 바하이 신앙은 정부의 공인을 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정부의 탄압을 종종 받았다. 현재 바하이교는 이란에서 35만 명의 신도를 거느리며 이슬람 다음가는 제2의 종교이나, 1979년의 이슬람 혁명 이래 사형과 강제 개종, 시민권 거부 등 다양한 방법들을 통하여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7. 문화[편집]

7.1. 예술[편집]

이란 예술은 건축, 석공, 금속가공, 직조, 도예, 서예, 회화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 강국답게 그 세계적인 영향력도 굉장히 강력한 편이다. 고대 이란 예술, 즉 메디아 문화는 스키타이 양식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그 뒤를 이어 들어선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는 주변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수입하여 페르시아 양식으로 재창조해내면서 고대 이란의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문화유적에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 파사르가다에 등이 있다.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셀레우코스 제국이 들어서자, 그리스 문화가 페르시아 지방에 유입되었으며 이 때 헬레니즘 문화가 번성하였다. 이후 사산 제국이 들어섰고, 사산 제국 치하의 페르시아에서는 가히 이란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문화 발전이 이루어졌다.

중세 시기에 유럽 지역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쇠퇴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은 여전히 그 성세를 유지하여 유럽과 아시아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군림하면서 이슬람 약학, 건축,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질의 문화유산들을 쏟아내었다. 이후 페르시아 지방의 문화는 뒤이어 들어선 사파비 왕조 시대에 그 절정을 찍었는데, 이 시기 정치, 경제 혁명이 일어나면서 페르시아, 즉 이란의 정체성이 확립되었으며, 인근의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등 강대국에게까지 문화를 전파해나갔다. 또한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유럽에 화려한 정원 문화를 수출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이란의 현대 예술은 카자르 왕조 시대의 유명한 사실주의 화가인 카말-올-몰크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1928년에는 그가 직접 이란 예술학교를 창립하기도 했다. 1900년대 초중반의 이란 현대 예술품들은 대부분 단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띠었으며, 이 때문에 ‘커피하우스 양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4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란에 본격적으로 서구 양식이 유입되자 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차차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1949년 9월에는 테헤란에 첫 현대예술 갤러리가 개관하기도 했다. 모더니즘 계열의 현대미술은 1950년대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급격히 성장하였으며,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는 회화와 예술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풍조로 인하여 점차 예술이 쇠퇴하고야 말았다.

7.2. 건축[편집]

이란에서는 최소한 기원전 7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축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아인들은 건축에 처음으로 수학, 기하학,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도입한 민족이기도 하다. 이란 건축물들은 주로 이란 고원 지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중질의 점토나 사암을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졌으며, 석회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접착하였다. 또한 건축에서 기하학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여 원과 사각형, 반복적인 패턴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또한 정원을 굉장히 중요시하여 주로 직사각형 모양의 안뜰과 대칭적인 모양의 안채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현재 이란은 UNESCO에 7번째로 많은 수의 고대 건축물 유적들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다.

7.3. 요리[편집]

이란은 여러 민족들이 섞여있는 다민족 국가인데다가, 수많은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이덕분에 식문화가 굉장히 다채로운 편에 속한다. 보통 허브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며, 그 외에도 복숭아, 석류, 마르멜루, 살구, 건포도 등 과일들을 음식에 넣어 먹는 경우도 많다. 또한 사프란, 말린 라임, 계피, 파슬리 등 향신료도 많이 사용하며, 양파와 마늘과 같은 기본적인 향신료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요리에 들어가는 편이다. 또한 요리에 넣어 조리해먹는 것 뿐만 아니라 피클을 만들어 먹거나 생으로 먹기도 한다.

이란 요리는 굉장히 그 종류가 많은데, 카바브(케밥), 폴로(필라프), 스튜, 오믈렛, 밥, 난 등 쌀로 만든 여러 요리들을 주식으로 먹는다. 보통 식사에는 플레인 요구르트 등을 곁들여 먹는다. 또한 요구르트와 소금, 허브 등을 섞어 만든 수프 요리인 마스트-오-키아르, 허브와 바실, 파슬리 등으로 만든 샐러드류인 사브지, 이란 전통 샐러드인 시라즈 샐러드, 피클류인 토르쉬 등을 같이 먹기도 한다. 또한 애피타이저로 시금치와 요구르트로 만든 요리인 보라니, 탄두리 양식으로 만든 요리인 미르자 카세미 등을 같이 먹기도 한다.

이란에서는 차를 굉장히 즐겨 마신다. 이란은 세계에서 7번째로 거대한 차 생산국이기도 하며, 손님을 대접할 때도 한 잔의 차를 반드시 대접할 정도로 차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들 중 하나는 ‘팔루데’라고 하는데, 장미수 시럽에 넣어 조린 파스타로 만든 요리로 그 기원이 기원전 4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전통이 깊은 요리이다. 그 외에도 사프란을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도 유명하며, 당근 주스와 함께 디저트를 즐기기도 한다.

7.4. 달력[편집]

이란은 독자적인 달력 체계를 따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헤지라 태양력’, 혹은 '페르시아 태양력‘이라고 부른다. 이슬람이 페르시아 지방에 전파된 621년을 원년으로 하고 있으며, 춘분을 1년의 시작으로 잡는다. 1925년 3월 31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2개의 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달들의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 달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서 사용하고 있다. 1월은 파르바딘, 2월은 오르디베헤스트, 3월은 초르다드, 4월은 티르, 5월은 아모르다드, 6월은 사리바르, 7월은 메흐르, 8월은 아반, 9월은 아자르, 10월은 데이, 11월은 바흐만, 12우러은 에스판드라고 부른다. 한편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슬람 음력을 따로 사용하고 있는데, 양력을 사용하는 이란과는 일부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란 내에서 중요한 이슬람 행사들의 경우에는 무조건 이슬람 음력을 사용하여 날짜를 표기한다. 또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서양력은 민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대부분 국제적인 외교행사 등에서만 간간히 사용된다.

이란의 법정 공휴일은 이란 태양력 기준으로 이맘 후세인 사망 40주일인 1월 14일, 하산 순교일인 1월 22일, 이맘 레자 순교일인 1월 24일, 혁명의 날인 2월 11일, 석유 국유화의 날인 3월 19일, 신년 연휴인 3월 21일, 이란 공화국의 날인 4월 1일, 자연의 날인 4월 2일, 이맘 파테메 순교일인 4월 26일, 호메이니 서거일인 6월 4일, 이맘 아크람 선지자 공인일인 6월 19일, 이맘 메흐디 탄신일인 7월 6일, 이맘 알리 순교일인 8월 11일, 라마단 종료일인 8월 20일, 이맘 사데그 순교일인 9월 13일, 양 잡는 날인 10월 27일, 이맘 알리 선지자 공인일인 11월 4일, 이맘 후세인 사망일인 11월 25일 등이 있다. 한편 매년 7월부터 8월까지 행하는 라마단 금식기간은 공휴일은 아니나, 많은 관청과 은행이 개점 휴무에 들어가며, 무슬림들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면서 무함마드의 고행을 되새기는 기회로 활용한다.

7.5. 스포츠[편집]

이란은 폴로의 발상지이며, 현지에서는 ‘코우간’이라고 부르며 고대 메디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래가 깊은 스포츠라고 한다. 또한 이란의 국민 스포츠는 레슬링이며, 워낙 인기가 많아서 세계적인 경기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의 전통적인 레슬링인 ‘코스티 에 팔레바니’는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할 정도이다.

이란은 국토 상당수가 산악 국가로, 스키, 스노보딩, 하이킹, 암벽등반 등의 산악 스포츠가 굉장히 대중적인 편에 속한다. 또한 토칼, 디진, 셈샤크 등의 산악 도시들에서는 여러 스키 리조트들이 있으며, 이 휴양도시들은 모두 테헤란에서 1시간에서 3시간 정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특히 토칼의 리조트는 알보르즈 산맥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고도 3,730m에 위치하면서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스키 리조트이기도 하다.

이란 올림픽 위원회는 1947년에 처음으로 창립되었으며, 창립된 이래 레슬링과 역도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1974년 9월에는 서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아시아 게임을 유치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이란에서 가장 거대한 스포츠 건물인 아자디 스타디움이 이때 지어졌다.

현대 이란에서는 축구도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란 남자 국가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4회 우승한 일본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번이나 우승컵을 들었다. 이덕분에 이란 남자 축구 대표팀은 일본,대한민국,호주,사우디와 함께 아시아 최강팀들 중 하나로 꼽히며, 중동의 브라질이라고도 불린다. 2020년 5월 기준으로 FIFA 랭킹에서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 세계 24위라는 성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16강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로 대중적인 스포츠는 배구이다. 2011년과 2014년에는 아시아 남자 배구 챔피언십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대표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FIVB 랭킹에서 세계 8위에 속하는 최강 팀에 속한다. 그 외에도 농구도 굉장히 널리 퍼져 있으며, 이란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7년 이래 아시아 농구 챔피언십에서 3번이나 우승한 바 있다.

8. 경제[편집]

이란의 경제는 중앙계획의 국유 석유회사와 국유 기업, 농촌지역의 농업 및 소규모의 상업, 벤처에 의한 서비스업 등의 민영 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는 혼합경제며, 전체 경제 비중에서 약 3분의 2가 국영 기업의 몫이다. 석유개발 이전에는 농업이 주요산업이었으며, 공업은 페르시아융단을 생산하는 전통적 수공업이 있을 뿐이었으나, 정부는 이전부터 줄곧 시장화 개혁을 행하여, 석유에 의존하는 이란 경제의 다각화를 도모하여, 수익을 자동차 공업, 우주항공 산업, 가전 제조업, 석유화학 공업, 핵 산업 등 타 부문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공업력 수준이 낮아 품질이 좋지 못하다. 차바하르 자유무역지역, 키슈 섬 자유무역지역의 설정 등을 통하여 투자환경의 정비에 노력하여 수억 달러 단위로 외국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대 이란의 중산계층은 두텁고 견실하여 경제는 발전을 지속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고인플레, 고실업률이 문제이다. 인플레율은 2007년 평균 18.4%, 2008년 4월(이란력)에는 24.2%에 이르렀다. 재정적자는 만성적인 문제로서, 이것은 식품, 가솔린 등을 중심으로 년 총계 약 7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보조금이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란은 OPEC 제2위의 석유 생산국으로서, 확인되고 있는 세계석유 매장량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세계 제2의 석유 수출국이다. 1996년에 매우 견실했던 원유가격은 이란의 재정적자를 보충하고, 채무 원리금 미지급금의 상환에 충당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천연가스 매장량에서도 러시아에 이어 세계 제2위이다.

취업 인구의 약 55%가 종사하는 농목업이 이란의 기간산업이지만, 기후와 지형조건 때문에 농경지는 총면적의 10%에 불과하며 휴한지가 많아 작부 면적은 매년 농경지면적의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란 고원에서의 농경지는 오아시스 주변의 좁은 지역에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보링에 의한 지하수 개발과 트랙터의 보급 등 생산 기술의 개선도 약간은 이루어진 편이나, 농업 기술은 아직 낙후된 상태이며, 대토지 소유 제도가 근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 농업 생산액은 총생산액의 2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주요한 농작물은 밀·보리·야채·사탕무·면화·포도·멜론 등이며 카스피해 연안에서는 벼·차·오렌지의 재배를 볼 수 있다.[67] 농업에 있어서 국가투자, 생산자유화에 의한 활성화를 목적으로, 외국에 대한 판로 확장, 마케팅 등으로 수출시장을 개발하여,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 대추야자, 피스타치오, 화훼 등 수출용 농업 생산물의 확대, 대규모 관개 계획에 의한 1990년대의 이란 농업은 경제 부문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이 있었던 분야이다. 농업은 여전히 이란의 최대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부문이다. 이란은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의약품 제조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주요 무역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시리아, 인도, 쿠바,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개발도상국과의 경제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역내의 터키와 파키스탄의 통상을 확대시키고 있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의 시장 통합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란 경제제재는 이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제재로 인해 이란 리알의 가치는 폭락했다. 2012년에는 1달러에 16,000리알이던 것이 2013년 4월에는 36,000리알까지 떨어졌다. 2016년 1월 16일 이란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잘 이행함에 따라서, 이란에 대한 모든 경제제재는 해제되었다.

8.1. 교통[편집]

육상 교통은 산유국답게 잘 정비된 도로망에 주로 자동차가 이용되고 있다. 원거리 버스 노선도 잘 발달하여 북·서유럽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국제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테헤란에서 서쪽으로는 자동차전용고속도로가 이어져 있다. 도시교통도 전적으로 택시·버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교통의 마비상태는 대단하다. 철도는 테헤란을 중심으로 페르시아만연안·카스피해연안·아제르바이잔·호라산·케르만에 통하고 있으며 그 연장은 5,000km에 달한다.

9. 정치[편집]

이란에서는 ‘혁명의 지도자’, 혹은 그저 ‘최고지도자’라고 불리는 이슬람 성직자인 라흐바르가 정치계에서 가장 배분이 높으며, 이로 인하여 오히려 국민이 선출한 이란의 대통령은 라흐바르에 비하면 훨씬 제한된 권력을 자리고 있다. 현재의 라흐바르인 알리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의 타계 이후 현재까지 이란을 통치해오고 있으며, 환경, 경제, 외교, 교육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여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이뿐만 아니라 선거에도 합법적으로 개입할 권한마저 틀어쥐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인 장관 임명 또한 알리 하메네이의 재가가 있어야 가능하며, 또한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 당선자가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에 역시 하메네이의 허락이 필요하다. 또한 특히 중요한 장관직인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정보부 장관의 경우에는 거의 하메네이가 직접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은 이들 중에 고르기만 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하메네이의 영향력 하에 있다. 또한 외교 분야 역시 하메네이의 입김이 매우 강력하여, 모든 아랍과 서구 국가들에 파견되는 외교관들 역시 하메네이의 임명을 받아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의회에서 매년 심의하여 통과시키는 예산안 역시 하메네이의 허락이 필요하며, 법이나 규제 역시 하메네이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2013년 로이터 통신이 약 95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한 ‘세타드’, 즉 라흐바르의 직속 재산 역시 의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하메네이의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란 라흐바르는 이란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이며, 군사 작전과 정보 작전 모두를 총괄하며 전쟁 선포나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권한도 오직 라흐바르에게만 있다. 또한 국영 방송사와 텔레비전 기업, 사법부 수뇌부, 경찰과 군대 수뇌부 역시 라흐바르가 직접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되며, 이란의 최고 권력기구들 중 하나인 수호자평의회를 구성하는 12명의 위원들 중에서 6명을 라흐바르가 개인적으로 임명한다.

한편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라흐바르는 이슬람 최고위 성직자들로만 구성된 ‘전문가 평의회(Assembly of experts)'에서 선출되며, 만일 라흐바르가 지나친 권력 남용을 일삼거나 국민의 신망을 잃었을 경우 라흐바르를 해임할 권한 역시 가지고 있다. 다만 라흐바르를 견제하기 위한 초기의 목적과는 다르게, 현재까지 전문가 평의회에서 라흐바르의 결정에 한 번이라도 반발한 적은 없으며, 한 번도 라흐바르를 해임하려 시도해본 적조차 없다. 게다가 하메네이가 오랫동안 장기집권을 이어오게 되면서, 사실상 전문가 평의회가 권력이 없는 채로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 역시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오히려 역으로 하메네이가 이 전문가 평의회의 이슬람 성직자들을 비판한 적도 많으며, 심지어 평의회의 위원들을 체포하거나 해임한 적도 여러 차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하메네이는 전문가 평의회의 아흐메드 아자리 쿠오미를 ’배신자‘라고 규정하고 체포하여 회의에서 쫒아낸 적도 있을 정도이다.

9.1. 대통령[편집]

이란의 헌법에 의하면 이란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이슬람 법학자이자 성직자인 라흐바르이며, 이 뒤를 이어 이란의 대통령이 그 다음으로 서열이 높다. 대통령은 약 4년 마다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내각을 구성하는 등의 권한이 있으나 다만 의회에서 취임하기 전에 라흐바르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며, 게다가 대부분의 중대결정을 라흐바르의 재가를 받고 시행해야 하기에 일반적인 대통령제 국가들의 대통령들에 비하면 그 권한이 상당히 약한 편이다. 또한 라흐바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대통령을 즉시 해임할 수 있는 권한마저 가지고 있다. 이란 대통령은 단 한 번만 재선할 수 있다.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책무는 최고지도자, 즉 라흐바르의 명을 충실히 본받아 사회 곳곳에 이슬람 기풍을 불어넣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이란 대통령은 타 국가들의 대통령들에 비하여 한없이 약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라흐바르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은 할 수 없기에, 딱히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펼쳐나가지만은 못한다. 이란 이슬람 헌법의 9장에는 대통령의 권한과 그 자격에 대하여 명시되어 있는데, 대통령은 라흐바르의 허가를 받았다는 전제 하에 국가 정책 심의, 예산안, 실업, 국제 협약 등을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의회와 라흐바르의 허락을 받아 장관을 임명하여 내각을 꾸릴 수 있으나, 라흐바르는 만일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시 대통령이나 의회의 허가를 받지 않고 대통령과 장관 모두를 해임시켜버릴 수도 있다. 대통령 아래에는 8명의 부통령들이 있으며, 내각은 총 22명의 장관들로 구성되고 이들 모두 임명을 위해서는 의회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10. 대외 관계[편집]

  • 대한민국 : 대한민국과는 1962년 10월 23일 수교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73년 수교하여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던 적이 있었다. 2010년 8월 6일 이명박 정부는 이란 제재를 위한 `이란제재 국가이행보고서'를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으며 내용은 이란 제재 진행상황과 함께 향후 포괄적인 제재추진 계획을 담고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대한민국을 직접 연결하는 항공편은 없어 다른 나라를 경유해야 이란에 갈 수 있었으나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에 이란행 직항 항공편을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 이집트 : 이집트와 이란은 1939년 양국에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 축출된 팔라비 왕조에 이집트는 도피처를 제공하였다. 또한 1979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평화조약에 서명하자 이란은 이집트와 단교를 선언하였다. 이후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 국가의 종주국으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웠고, 수니파 무슬림이 많은 이집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친서방 노선을 걸었다.
  • 러시아 : 미국과는 달리 러시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소련 시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아제르바이잔 : 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 마찬가지로 시아파 이슬람교를 믿으나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이 아제르바이잔의 지원을 받아 분리독립을 하거나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을 상당히 견제하고 있으며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기도 했다. 현재도 관계는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 미국 :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1979년 이슬람 혁명 발발 이후 관계가 악화되었고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을 계기로 1980년 4월 7일 국교를 단절하였다. 이후 이란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등록되었고 2002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과 함께 악의 축(Evil) 로 규정되는 등 최악의 관계를 걸었다. 버락 오바마 취임 이후 이란과의 관계가 회복될 기짐이 보였으나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다시 악화되었으며, 2020년 1월 키셈 솔레이마니의 피살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은 정식 대사관이 아닌 이익대표부를 주 이란 스위스 대사관에 설치하여 영사 업무를 하고 있다.
  • 일본 : 일본과의 관계는 매우 돈독한 사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연합의 대 이란 경제 제재가 공표됨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일본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다스려져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되지만, 이란 내에서의 반한 감정과 일본의 반한 감정을 비교하면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본과 이란의 관계는 대한민국이나 서방 세계보다도 매우 우호적인 국가이기도 한다.

11.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라흐바르는 이란의 국가원수이며 이란의 종교적 문제에 대해 최종 권위를 갖고 있다. "라흐바르"란 지도자라는 뜻이다. 종종 "최고 지도자", "이슬람 혁명 지도자"라고도 지칭되지만 헌법에는 그냥 "라흐바르"라고 되어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에 신설되었다. 현재는 알리 하메네이가 직무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