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이전•현재 국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امارت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 |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امارت , Də Afġānistān Islāmī Imārat]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11.png
파일:아프가니스탄 국장.png
국기
국장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하나님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
국가 정보
국가명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정권 인수
2021년 8월 15일
언어
다리어, 파슈토어
면적
6,528만 6천㏊ (40위)
인구
4,223만 9,854명 (36위)
국교
이슬람교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가
이 곳은 용감한 자들의 고향이라네!
국기
정치
정치체제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2016년 5월 25일 ~ 현재)
총리
압둘 가니 바라다르 (2021년 9월 7일 ~ 현재)
외교
가입 국제기구
국제전화
+93
여행경보
전 지역 여행금지
1. 개요2. 상세3. 어원4. 역사5. 지리6. 행정구역7. 경제8. 인문환경
8.1. 민족8.2. 언어8.3. 교통8.4. 의료8.5. 교육8.6. 종교
9. 문화
9.1. 언론과 놀거리9.2. 스포츠
10. 정치11. 법 집행12. 외교와 국방13. 난민 문제14.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남아시아에 있는 국제적 승인 미획득 국가이다.

2. 상세[편집]

내륙국으로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다민족 국가로서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인, 아이마크인 등이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여러 세기를 거쳐 다양한 민족들의 고향이 되었다.

전략적인 위치로 인해 수많은 군사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정복 세력으로는 알렉산더 대왕, 이슬람 제국, 몽골 제국, 대영제국, 소련, 그리고 현대의 서방 세력에 이른다. 또한 쿠샨 제국, 에프탈 제국, 사만 토후국, 사파르 토후국, 가즈나 제국, 고르 술탄국, 할지 술탄국, 무굴 제국, 호타크 제국, 두라니 제국, 기타 등등의 제국들을 일으킨 민족들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1747년, 아흐마드 샤 두라니는 두라니 제국을 세웠는데, 이 때가 근대 아프가니스탄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나중에 두라니 제국의 도읍은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옮겨졌으며, 제국 영토 대부분은 이웃 강국들에게 빼앗겼다.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은 두 제국의 완충국으로 전락하였다.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이후 1919년 8월 19일에 이 나라는 대영제국에게서 독립을 쟁취하였다. 자히르 샤의 40년 통치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유지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태에 빠진 상황이였으며, 1979년에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1년 미국 주도로 탈레반을 축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외국의 점령을 겪게 되었다. 2001년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군대로 구성된 국제 안보 지원군(ISAF) 창설을 승인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후발 개발도상국의 하나로, 농업과 목축업의 의존도가 높다. 현재 해외 원조로 재건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 분쟁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전국적인 재건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미군 철수 직후 이어진 탈레반의 공격(2021년 탈레반 공세)으로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하고 대통령 등이 외국으로 도주함에 따라(카불 함락),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은 탈레반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판지시르주에 있는 민병대와 기존 정부군, 부통령 등의 정치가가 합세하여 판지시르 저항군을 결성해 판지시르주에서 탈레반에 대한 조직적 저항을 하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군의 철수를 시작으로 탈레반이 승리하기 시작하고 2021년 탈레반 공세를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멸망하고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3. 어원[편집]

10세기에 쓰여진 지리서 후드드 알 알람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다리어: افغانستان 아프가네스탄)이란 어휘는 인종의 이름인 아프간만큼이나 오래 되었다고 한다. 어근 "아프간"은 역사적으로 파슈툰인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접미사 "스탄"은 페르시아어로 "~의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인들의 땅으로 해석되거나, 더 면밀히 말해서는 파슈툰인들의 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헌법에서는 "아프간이라는 어휘는 모든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아프간을 명시하고 있다.

4. 역사[편집]

2001년 12월, 탈레반 정부가 전복된 이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출범하였고, 카르자이 행정부를 보조하고 기본적인 방위를 위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국제안보지원군을 결성한다. 반면 탈레반 세력은 파키스탄에서 재결성되었고,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는 연합군이 진입하고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국가를 재건하였다.

탈레반은 권력을 찬탈당한 뒤에 곧바로 반란을 일으킨다. 2000년대 동안 ISAF와 아프간 국군은 탈레반에 수차례 공격을 실행하였으나, 완전히 탈레반을 패배시키지 못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해외 투자의 부족과 정부 부패, 그리고 탈레반의 반란 등의 이유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이다.[64]

한편,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 구조를 세울 수 있었고, 국가명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꾼다. 여러 차례의 외국 원조와 함께 나라의 경제, 보건, 교육, 교통, 그리고 농업 분야들의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도 많이 이루어졌다. ISAF 군대들도 아프가니스탄 국군을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다. 2002년부터 10여년 동안 서방 국가들에서 강제 추방된 사람들을 포함한 50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본국으로 귀환하였다.[65]

2009년에 들어서는 탈레반이 이끄는 그림자 정부가 국가 곳곳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66] 2010년에는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 지도자들과 평화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반란 단체들은 2015년 중반에 탈레반 최고 지도자가 협상을 결정하기 전까지 협상 참석을 거부하였다.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하면서 많은 수의 아프간 주요 인사들이 암살되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간 접전이 늘어났고 하카니 네트워크 주도 아래 많은 대규모 공격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루어졌다. 미 정부는 증가한 공격 횟수를 두고 파키스탄 정부를 비판했다.[68][69] 미 정부는 15년 넘게 수십억 달러를 개발 원조 지원금으로 지출하였고 같은 기간 동안 1조가 넘는 달러를 군사 지원에 지출하였다.

2014년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카르자이 대통령은 권력에서 물러났고 2014년 9월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70]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전쟁 (미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이 2014년 12월 28일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수천명이 넘는 미국 주도의 나토 군대가 아프가니스탄 정부 군대를 훈련시키고 자문하기 위해 나라에 남았다.[71] 전쟁은 반란 주동자, 아프가니스탄 시민들과 정부 군대를 포함하여 직접적으로 9만여명의 사망자를 남겼다. 10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은 자신이 무장시킨 30만 유령군대를 믿었으나 그것은 환상이었고 따라서 2021년 6월 미군 철수의 움직임을 계기로 탈레반이 다시금 아프간 영토를 장악하게 되었다. 결국 8월 15일 수도 카불이 사실상 함락되며 구 정권은 탈레반에 항복을 선언했다.

5. 지리[편집]

아프가니스탄은 서남아시아에 속하는 지역으로, 북부와 남서부의 평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 지방인 내륙국이다. 대중동 권역 이슬람 세계에 속하며, 위도 29° N과 39° N 사이와 경도 60° E와 75° E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7,492 m (24,580 ft)의 노샤크 산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대륙성 기후에 속하여, 중앙의 고원 지역과 누리스탄 주 주변의 빙하 지역, 그리고 와칸 회랑지대 등의 지역은 1월에 평균 −15 °C (5 °F) 이하까지 기온이 내려가며, 남서부의 시스탄 유역과 동부의 잘랄라바드 유역, 그리고 북부의 아무다리야 강을 둘러싼 투르케스탄 평원 등의 저지대는 7월에 평균 35 °C (95 °F)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수많은 강과 저수지가 분포하여 있으나, 국토의 많은 부분이 건조하다. 내륙유역인 시스탄 유역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기존 강우량 외에도 동절기에 힌두쿠시 산맥과 파미르 고원에서 눈이 내리며 봄이 되며 녹은 눈이 주변의 강, 호수 그리고 하천에 유입된다. 그러나 나라의 전체 물 자원의 3분의 2가 이란, 파키스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인접 국가로 유출된다. 물 자원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최소 20억 달러 이상의 관개 시스템 정비 비용이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 주 안과 주변에 위치한 힌두쿠시 산맥은 거의 매년 지진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지질적으로 활발한 곳이다.[83] 지진은 종종 파괴적인 성격을 띄는데, 겨울 동안 산사태와 눈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역대 가장 강력한 지진은 1998년에 일어났는데, 타지키스탄 인근 바다흐샨에서 6,000여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이어 2002년 힌두쿠시 지진이 일어나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1,000명이 넘는 부상자를 기록했다. 2010년에 일어난 지진은 11명의 사망자, 70명이 넘는 부상자, 그리고 2,000 가구 이상의 가옥들이 파괴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주요 자원은 다음과 같다: 석탄, 구리, 철광석, 리튬, 우라늄, 희토류 원소, 크로뮴, 금, 아연, 활석, 황산 바륨, 유황, 납, 대리암, 보석, 천연 가스, 그리고 석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양국 정부는 2010년 아프가니스탄 내에 매장된 자원 중 미개발된 광물 매장량의 가치가 최소 9,000억 달러에서 최대 3조 달러에까지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면적은 652,230 km2 (251,830 sq mi)[88]으로, 세계에서 41번째로 넓은 국가로 프랑스보다 조금 넓고 미얀마보다 조금 작으며, 미국 텍사스주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남쪽과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이란 북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6. 행정구역[편집]

아프가니스탄은 행정상으로 34개의 주 (윌라야)로 나뉘어, 각 주마다 주도와 주 행정부를 가진다. 주들은 398개의 더 작은 행정 단위로 나뉘며,각 행정 단위는 보통 도시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마을을 포함한다. 각 지역은 지역 대표들로 대표된다.

주지사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지역 대표는 주지사에 의해 선출된다. 주지사는 카불에 위치한 중앙 정부의 대표들로 관할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진다. 모든 주는 4년마다 선거를 하여 주 의회를 구성한다. 주 의회는 관할 지역의 개발을 논의하고 주 행정 법안에 대한 평가 및 검토하는 역할을 맡는다.

아프가니스탄 헌법 제140조와 선거법 대통령령에 의하면 각 도시의 시장은 4년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하나, 막대한 선거 비용으로 인해 지방 자치 선거가 열린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 대신에 시장은 정부에서 임명되어왔다. 수도인 카불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직접 카불 시장을 임명한다.

파일:아프가니스탄 행정구역.png

7. 경제[편집]

아프가니스탄은 빈곤 상태의 저개발 국가로, 수십년간 지속되온 전쟁과 해외 투자의 부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매년 10%의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이는 500만 억 달러 규모의 국제적인 원조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송금액이 뒷받침한 결과이다.

8. 인문환경[편집]

2015년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32,564,342명 정도로, 파키스탄과 이란에 거주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피난민 270만여명을 합한 값이다. 2013년 기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46%는 15세 이하였고 전체 인구의 74%는 시골에 거주하고 있었다.[90]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일생 동안 평균 5명의 아이를 출산하며 전체 아프가니스탄 신생아 중 6.8%는 출산 중 혹은 유아기에 사망한다. 2013년 기준 아프가니스탄 평균 수명은 60세이고 15세에서 49세까지의 인구 중 오직 1%만이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병력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이웃한 국가들과 같이 아프가니스탄은 민족적, 언어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다양한 인구분포를 띈다. 메흐다르드 이자디 지도 제작자는 아프가니스탄에 언어와 민족 간에 중요한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부족 (파슈툰인, 아이마크인 등), 종교 (시아파 하자라인, 사이즈, 키질바쉬 등), 집단기억 (아랍인과 몽골인 등) 혹은 라이프스타일 (파르시완인 등)이 언어보다 집단 정체성에 형성하는 데 더 기여했다는 것이다. 오직 투르크인과 다수의 우즈벡인들이 언어로 정체성이 나뉘며, 이러한 양상은 1747년에서야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도시화를 겪었으나,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저개발된 지역 중 하나이다. 1999년 전체 인구의 79%가 시골에 거주하였으나, 2014년에는 전체 인구의 74%가 시골에 거주하고 있다.[90] 100만 명의 거주민을 넘는 도시는 카불 한 곳뿐이다. 인구 수가 비교적 많은 도시로는 칸다하르, 헤라트, 마자르이샤리프, 잘랄라바드, 라슈카르가, 탈로칸, 호스트, 셰베르간, 그리고 가즈니가 있다. 인구참조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인구가 2050년까지 8,2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8.1. 민족[편집]

아프가니스탄은 오래전부터 교차로의 역할을 한 지역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지위는 현재의 다문화 사회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다양한 범주의 민족언어학 집단들로 나뉜다. 그러나 몇 십년 동안 국가에서 체계적인 인구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민족 각각의 정확한 인구와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8.2. 언어[편집]

아프가니스탄의 공식언어는 다리어와 파슈토어로, 국가 전체에 다중언어 생활이 보편화되어있다. 파슈토어와 다리어 모두 이란어군 어파에서 나온 인도유럽어족 언어다. 다리어 (아프간족 페르시아어)는 오랫동안 민족 상호 소통에 있어 공통어(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해왔다. 또한 다리어는 타지크인, 하자라족, 아이마크인, 그리고 키질바쉬족의 모어이다.[99] 파슈토어는 파슈툰인의 모어이나, 많은 파슈툰인들이 다리어에 능하고, 파슈툰인이 아닌 민족 구성원들도 파슈툰어에 능한 경우가 많다.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발루치어, 파샤이어, 그리고 다수의 누리스탄 부족어 등을 포함한 기타 언어들은 나라 전체에 분포한 소수 민족들의 모어이며 널리 사용되고 있는 지역에서 공식 지위를 가진다. 소수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르두어, 영어, 아랍어 그리고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8.3. 교통[편집]

아프가니스탄은 계속되는 전투 활동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극히 위험하다. 버스는 주로 오래된 메르세데스-벤츠 버스 모델들로 유한 회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도로에서는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데, 특히 카불-칸다하르와 카불-잘랄라바드 간선 도로에서 두드러지게 일어난다.

고속도로의 재건 이후 새로운 차량들이 더 넓게 유입되고 있다. 대부분 파키스탄과 이란을 통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수입되어 온 것이다. 2012년 이후에는 10년 이상 된 자동차의 반입이 금지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도로 네트워크의 건설은 이웃국가 간의 무역을 촉진시키며 나라 경제의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의 우편 서비스는 아프가니스탄 우편국과 페덱스, DHL과 같은 기업이 제공하고 있다.

8.4. 의료[편집]

인간 개발 지수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15번째로 저개발된 국가이다. 평균 수명은 여성 45세, 남성 44세이다.[140]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모 사망률 그리고 신생아 사망률을 가진 국가들 중 하나인데, 2015년 1,000명당 257명의 신생아 사망률을 기록하였다. 아프가니스탄 공중보건부는 2020년까지 신생아 사망률을 100,000명당 400명 정도로 절감하겠다고 밝혔다.[141] 아프가니스탄은 3,000명이 넘는 조산사가 있으며, 매년 300명에서 400명 정도의 추가인력이 양성되고 있다.[142]

아프가니스탄에는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병원과 진료소가 세워졌다. 그 중 가장 선진의료를 받을 수 있는 곳들은 카불에 위치해 있다. 카불의 프렌치 어린이 의료연구소와 인디라 간디 어린이 병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어린이병원들이다. 카불의 주요 의료시설로는 350개의 침대를 보유한 잠후리앗 병원과 현재 공사 중인 지나 병원 등이 있다.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지방 곳곳에 시설이 잘 갖추어진 군사 병원들이 위치해 있다.

2002년 전체 인구의 9%가 가장 가까운 의료 시설에서 걸음으로 2시간 거리에 거주한다고 나타났으나, 2006년에는 60% 가까이 되는 인구로 해당 대상이 크게 늘었다. 2011년 실시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체 의구의 57%가 자신은 의료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좋다고 응답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장애인이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약 100만 명이 영향을 받았다. 약 8만명이 팔다리를 잃었고, 이중 대부분은 지뢰에 의해 팔다리를 희생당하였다. 세이브 더 칠드런과 마호바의 약속 등과 같은 비정부 단체들은 정부와 함께 연계하여 고아들을 돕고 있다. 인구통계 건강조사는 인도 건강관리조사 연구소와 기타 기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임산부 사망률을 중심으로 여러 건강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8.5. 교육[편집]

아프가니스탄의 교육은 아프가니스탄 교육부와 고등교육부의 감독 아래 K-12와 고등교육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인프라는 몇십년간의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나, 2001년 말 카르자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차 복구되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5,000개가 넘는 학교가 새로 설립되거나 재건되었으며, 100,000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양성되거나 모집되었다. 70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100,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세워져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최소 그중 35%가 여학생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에는 16,000여 개의 학교가 있다. 굴람 파루크 와르다크 교육부 장관은 아직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는 300만명의 어린이를 위해 8,000개의 학교가 더 지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카불 대학교는 2002년 남녀 모든 학생들에게 다시 문을 열었다. 2006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아메리칸 대학교가 세계 최상급 영어교육기관을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문을 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은 아프가니스탄의 교육중심으로,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이기도 한다. 카불 바깥에 위치해있는 주요 대학교로는 남쪽의 칸다하르 대학교, 북서쪽의 헤라트 대학교, 북쪽의 발흐 대학교, 그리고 동쪽의 낭가르하르 대학교와 호스트 대학교 등이 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본떠 만든 아프가니스탄 국군사관학교는 아프가니스탄 국군의 사관 양성을 위한 4년제 군사교육기관이다. 2만 달러 규모의 아프간 국방대학교 건설 계획은 카불 카르가 댐 근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문맹률은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님에 따라 점차 개선되고 있다. 2010년부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링컨 학습 센터를 짓기 시작하였다. 링컨 학습 센터는 영어 교실, 도서관 시설, 다목적 회당, 인터넷 연결, 그리고 기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프가니스탄 보안군은 의무적으로 문자해독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미국의 세서미 스트리트를 기반으로 한 바체-이-심심은 2011년 말 아프가니스탄 아동의 교육을 목적으로 편성되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익명의 재단의 지원을 바탕으로 5,000대의 컴퓨터가 OLPC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칸다하르에 배치되었다.

8.6. 종교[편집]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99%가 넘는 사람들은 무슬림으로 그 중 70% 정도가 수니파이며, 29%는 시아파이다.

1890년대까지 누리스탄 주를 둘러싼 지역은 카피리스탄{카피르인(무신론자들, 이방인의 땅)}으로 불렸는데, 이는 누리스탄 족이 이슬람교를 믿지 않고 애니미즘, 다신교, 샤머니즘 등과 같은 민속 신앙을 가지고 있던 문화적 특성에 비롯된 것이였다. 아프가니스탄 사람 중에 시크교나 힌두교를 믿는 집단도 주요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작은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하였으나 20세기 말에 이스라엘이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자블론 시민(토프) 한 명만이 남아있다.

9. 문화[편집]

아프가니스탄 문화는 2,000년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그 기원은 최소 기원전 500년 즈음 아케메네스 제국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가니스탄은 유목민과 부족민이 주를 구성하는 사회를 지님으로써, 각 지역마다 다양한 전통을 가져, 이는 아프가니스탄의 다문화 및 다언어적 성격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아직도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 일부 지역에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져 오는 생활방식인 파슈툰왈리를 보전해오고 있어, 파슈툰인의 문화를 지속하여 계승해오고 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로는 페르시아인과 튀르키예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다. 파슈툰인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비-파슈툰인들 중에는 파슈툰왈리를 받아들여 파슈툰화 (혹은 아프간화)의 과정을 겪은 부류도 있다. 한편 페르시아화된 파슈툰인들도 존재한다. 지난 30년간 파키스탄과 이란 등지에서 거주해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웃국가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 국가, 조상, 특히 종교와 독립에 대한 큰 자부심을 느낀다. 다른 산악 지방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명예, 부족에 대한 충성, 그리고 분쟁을 잠재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힘을 보태려고 여겨진다. 이는 외부인에 대한 우려와 겸양으로도 이어진다.[156] 아득한 옛날부터 부족간의 전투와 내전이 주된 탓에, 이렇게 쌓여진 독립적인 성향은 외부 세력의 침략을 어렵게 하였다. 토니 히스코트는 부족사회를 지리적으로 험준한 국가에 많은 사람들을 구성케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는 60여 족의 주요 파슈툰인들이 살고 있으며,아프간 부족민의 수는 200~30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문화의 형태로나, 혹은 다양한 형태의 언어와 기념물의 형태로도 남아있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기념물들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쟁들에 파괴되었다. 바미얀 석불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고학자들은 아프가니스탄 각지에서 불교 유물들을 찾고 있으며, 어떤 것들은 2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것도 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에 불교가 유행하였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외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헤라트, 칸다하르, 가즈니, 마자르이샤리프, 그리고 자란즈 등이 있다. 하리 강 기슭에 위치한 얌의 첨탑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줄곧 입었던 망토는 칸다하르의 망토 사당에 보전되어 있다. 칸다하르는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가 건설한 도시이자 아프가니스탄의 첫 수도이기도 하다. 헤라트 성채는 최근 몇년간 복원되어 현재는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북부에는 무함마드의 원조자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묻혔다고 믿어진 알리 사당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보문화부는 가즈니에 있는 42개의 역사 유적지를 2013년까지 복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가즈니 주는 이슬람 문명의 수도로 선언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은 카불에 위치하여 있다.

문맹률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고대의 페르시아 문학과 파슈토 문학은 아프가니스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시가 문학은 언제나 교육의 기둥으로 여겨져 왔으며, 문화의 일부분이라 여겨지기도 하였다. 주목할 만한 시인들로는 루미, 라비아 발키, 사나이, 자미, 쿠샬 카타크, 라만 바바, 칼릴루아 칼릴리, 그리고 파르윈 파즈왁 등이 있다.

9.1. 언론과 놀거리[편집]

아프가니스탄의 대중 매체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어, 1906년에 아프가니스탄 첫 신문이 발행되었다. 1920년대에는 라디오 카불이 아프가니스탄 내 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1974년에는 아프가니스탄 국영 방송이 개국하였으나, 1996년에 탈레반의 언론 통제로 문을 닫아야 했다.[165] 그러나 2002년부터 언론 규제가 서서히 완화되며 민영 미디어가 다양화되었다. 2004년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명시되며 검열을 금지하였으나,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내용을 생산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2008년에 국경 없는 기자회는 아프가니스탄의 언론환경을 173개 국가 중 156위라 평가하였고, 자유도는 1위라 평가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는 400여 개의 간행물이 등록되어 있으며, 15개의 지역 텔레비전 채널들과 60개의 라디오 방송국들이 존재하고 있다.[166] 미국의 소리, BBC 월드 서비스, 자유유럽방송 등과 같은 해외 라디오 방송도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방송되고 있다.

카불은 많은 전통 음악가와 현대 아프간 음악가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특히 전통 음악은 노루즈나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 연휴기간 동안 인기가 있다. 아흐마드 자히르, 나셰나스, 우스타드 사라항, 사르반, 우바이둘라 쟌, 파하드 다리아, 그리고 나그흐마 등의 유명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음악가들이 있으며, 이 외에도 많은 재능있는 음악가들이 활동한다.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볼리우드 영화를 감상하고 그 영화음악을 즐겨 듣는다. 많은 메이져급 볼리우드 스타들이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살만 칸, 사이프 알리 칸, 샤루크 칸, 아미르 칸, 페로즈 칸, 카데르 칸, 나스루딘 샤, 자린 칸, 그리고 셀리나 제이틀리가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 밖에도 다하르마트마, 쿠다 가바, 이스케이프 프롬 탈레반, 그리고 카불 익스프레스 등의 여러 볼리우드 영화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되었다.

9.2. 스포츠[편집]

아프가니스탄의 스포츠 팀은 국제 경기에서 점점 발전된 성적을 내놓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농구 대표팀은 2010년 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자체 최초 팀 타이틀을 얻어내었다. 이듬해 아프가니스탄 크리켓 대표팀이 2009-10 ICC 인터컨티넨탈 컵에서 우승하였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길거리 농구팀이 2012년 해변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이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크리켓과 축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들 중 하나이다. 아프가니스탄 크리켓 대표팀은 2000년대에 구성되어, 2009년 크리켓 월드컵 예선, 2010년 월드 크리켓 리그 디비전 원, 2010년 ICC 월드 Twenty20에 참가하였다. 아프가니스탄 크리켓 대표팀은 앞서 2007년, 2009년, 2011년, 그리고 2013년에 열린 ACC Twenty20 컵에서 우승하였다. 이러한 성적이 축적되어 2015년 크리켓 월드컵의 경기 출전권을 따기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 크리켓 협회 (ACB)는 아프가니스탄 내의 공식 크리켓 행정 기구이며 카불에 본부를 두고 있다. 가지 아마눌라 칸 국제 크리켓 경기장이 아프가니스탄의 메인 크리켓 경기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뒤로 카불 국가 크리켓 경기장 등의 주요 경기장이 있다. 이외의 여러 경기장이 공사 진행 중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는 주별로 팀을 꾸려 크리켓 경기를 진행하곤 한다.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41년부터 국제 축구 경기에 참가해온 역사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열리는 홈 경기는 카불에 위치한 가지 스타디움에서 열리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열리는 모든 축구 경기는 아프가니스탄 축구 협회에 의해 통제된다. 아프가니스탄 대표팀은 단 한번도 FIFA 월드컵에 출천하지 못하였으나, 2013년에 열린 국제 축구 경기에서 트로피를 타낸 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또한 풋살, 5-a-사이드 형식의 축구 대표팀도 보유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기있는 또 다른 스포츠 종목으로는 농구, 배구, 태권도, 그리고 보디빌딩 등이 있다. 부즈카시는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스포츠로, 주로 북부 지역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부즈카시는 폴로와 비슷한 형식으로, 말을 탄 두 팀이 염소의 시체를 놓고 경쟁하는 운동이다. 아프간 하운드는 아프가니스탄에 뿌리를 둔 개로 사냥에 주로 쓰이는 종이다.

10. 정치[편집]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사는 권력 투쟁, 유혈 정변, 불안정한 권력 이동으로 점철되었다. 지난 20세기 동안 이 나라는 군사 독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 정치 형태(왕정, 공화정, 신정, 공산 통치)를 겪었다. 2003년 로야 지르가에서 비준된 헌법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삼부로 이루어진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유엔 마약 범죄 사무소의 2010년 1월 보고서에 따르면 뇌물 수수가 아프가니스탄 국가 전체 GDP의 23%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하였다. 다수의 정부 기관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한 가운데, 카르자이 대통령은 2009년 말 이에 관련하여 "비리에 관련된 사람은 정부에서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많은 고위급 정부 관리들이 카불 은행을 통해 엄청난 양의 현금을 횡령하고 남용하고 있었다. 국제 투명성 기구의 2014년 부정부패 인식 지수 자료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4번째로 부정부패한 국가라고 한다.

11. 법 집행[편집]

국가 안보국 (NDS)은 아프가니스탄 국내에서 활동하는 정보 기관으로, 15,000명에서 30,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에는 126,000명의 경찰력이 있으며, 160,000명 규모가 될 때까지 계속하여 경찰력을 모집할 계획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경찰 (ANP)은 내무부 산하의 기관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의 유일한 법집행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시민 안전 경찰이 ANP의 주 기관으로, 각 준장이 5개의 군단을 관리하고 있다. 군단은 카불, 가르데즈, 칸다하르, 헤라트 그리고 마자르샤리프에 위치해 있다. 각 주에는 정부에서 임명된 주 경찰청장이 관할 지역을 맡아 관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경찰은 거의 대부분의 훈련과정을 아프가니스탄 내 주둔한 나토 훈련 임무단로부터 이수한다. 2009년 당시 절대다수의 경찰관들이 문맹이거나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진행된 문자해독능력 프로그램은 2011년 초에 경찰 기초 훈련에서 필수 이수 과정이 되었다. 또한 경찰 병력의 17%가 불법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2009년 내무부와 함께 2개의 반부패 부서를 창설하였다. 당시 내무부 장관은 미국 (연방수사국), 영국 (스코틀랜드 야드), 유럽연합에서 온 보안요원들이 부서 내의 검찰관들을 교육시킬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계속되어 온 전투 활동으로 위험하다. 매년 수백명의 경찰관들이 근무 도중 죽임을 당한다. 납치와 절도 등의 범죄도 자주 보고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경찰(ABP)은 국가의 모든 공항 시설과 국경 지대를 관리하는데, 특히 듀랜드 라인 국경선을 중심으로 범죄 조직과 테러리스트 활동이 활발하여 국경 경찰의 집중 배치를 받고 있다. 2011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300여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불법 약물 사업에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범죄 조직이 정부 인사를 대상으로 한 테러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

12. 외교와 국방[편집]

아프가니스탄 외무부는 아프가니스탄 대외 관계의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1946년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들과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히 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터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주요 비NATO 동맹국으로 지정하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맺었다.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인접국과 밀접한 대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도, 방글라데시네팔, 카자흐스탄,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집트, 일본과 같은 지역 국가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계속하여 다른 국가들과도 대외 관계를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단(UNAMA)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401호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의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2002년에 결성되었다. 오늘날에는 나토 회원국들이 국제안보지원군 (ISAF)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에 38,000명 규모의 군대를 파견하였다.[116] 국제안보지원군 파견의 주 목적은 아프가니스탄 보안군(ANSF)을 훈련시키기 위함이다. 아프가니스탄 군대는 아프가니스탄 국방부 산하 기관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군(ANA)과 아프가니스탄 공군(AAF)으로 구성되어 있다. ANA는 카불의 201 셀랍 ("홍수") 군단, 가르데즈의 203 군단, 칸다하르의 205 아툴 ("영웅") 군단, 헤라트의 207 군단, 마자르 이 샤리프의 209 군단, 라슈가르가의 215 군단 등의 7개의 주요 군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ANA는 특수부대를 2007년부터 두고 있다. 아프간 국방대학교 (ADU)는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교육을 담당하여, 소속기관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군사관학교를 두고 있다.

1973년 12월 31일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1978년 9월 단교하였다. 2002년 1월 31일 외교관계가 재개되어 2002년 9월 주아프간 대한민국 대사관이 재개설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2004년 1월에 주한 아프가니스탄대사관을 개설하였다. 2021년 8월 대한민국 대사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는 1973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공산정권 붕괴 후 1993년부터 사실상 교류가 단절된 상태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21년부터 현재까지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된 나라이기도 하다.

13. 난민 문제[편집]

2021년 이후에 탈레반 정권이 장악하고 나서, 난민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관점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정확한 통계를 계산할 수 없다는 보장이며, 현대에도 계속 난민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14.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